김영춘 의원(왼쪽), 김부겸 의원
10조 원 이상의 국비가 투입될 영남권 신공항. 대구·경북·울산·경남은 경남 밀양을, 부산은 가덕도가 유치 적합 지역이라 주장하며 으르렁대고 있는 이 신공항 이야기는 199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부산시는 김해공항의 포화상태를 대비해 신공항이 필요하다는 논리를 부산도시기본계획에 처음 썼다.
하지만 김해공항은 그럭저럭 흘러갔고 신공항 논의는 뒤로 밀렸다. 10년 뒤인 2002년 중국민항기가 김해공항 북측 돗대산에 추락해 129명이 사망하면서 본격적으로 재논의되기까지 말이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후 2006년 신공항 검토 지시를 내렸다. 이렇듯 신공항 문제는 부산의 이슈였다.
새누리당 텃밭 전쟁으로 비화되기 시작한 것은 2007년 대선에서 경북 포항 출신의 이명박 전 대통령이 ‘영남권 신공항’을 약속하면서다. 김해공항 확장용이 아니라 유치 지역을 지정하지 않으면서 유치 가능성을 부산과 대구, 경북, 울산, 경남까지 넓혔다. 그리고 당시 5개 지자체장은 공동건의문을 채택했고 이 전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였다. 부산은 바다를 메워 공항을 만들어야 하는 가덕도를, 그 외 지역은 산을 깎아 건설하는 밀양을 선택하면서 들끓기 시작했다.
정치권이 가세했고, 10조 원 프로젝트에서 주변의 개발까지 해당 지역은 죽기 아니면 살기로 덤볐다. 2011년 3월 이 전 대통령은 전면 백지화를 선언한다. 얘기가 여기서 끝났다면 좋았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2012년 대선에서 신공항을 다시 확약했고,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6월 프랑스 파리공항공단엔니지어링(ADPi)에 용역을 맡겼다. 그 결과가 오는 25일 발표된다.
부산에선 가덕도신공항 유치가 무산되면 “민란이 일어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2014년 지방선거에서 서병수 부산시장은 신공항 유치에 “직을 걸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최근 부산시 공무원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 주변과 세종시 국토부 인근에서 진을 치며 관련 정보 수집에 혈안이 된 이유다. 하지만 평가항목이 무엇인지 가중치나 배점기준이 어떻게 되는지는 베일에 꽁꽁 싸여 있다.
대구는 밀양 신공항이 무산되면 “박근혜 레임덕은 TK부터 시작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까지 TK 출신 대통령이 연속 집권했음에도 어느 하나 나아진 것이 없다는 상대적 박탈감에서다. 지난 총선 당시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였던 조원진 의원이 “박 대통령이 선물 보따리를 풀어놓을 것”이라고 장담한 바 있어 대구의 기대감이 어느 때보다 높다.
상황이 이런 가운데 신공항을 두고 더불어민주당이 적극 나서면서 새누리당은 발을 동동 굴린다. 부산에선 김영춘 의원 등 더민주 소속 5명 의원이 신공항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고, 대구의 김부겸 의원은 국토균형발전을 위해 밀양이 적합지라 목소리를 높였다.
이를 두고 유치에 성공하면 더민주 덕으로, 실패하면 새누리당 탓으로 돌려 해당 지역의 민심을 더민주로 끌어오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더민주로선 결과에 관계없는 ‘꽃놀이패’란 얘기다. 유치 용역이 나올 때까지 정치쟁점화하지 말라는 박 대통령과 정부의 당부로 새누리당 소속 의원들은 옴짝달싹 못하고 있다. 만약 이명박 정부에서처럼 ‘없던 일’이 된다면 영남권 전체가 소란스러워질 수 있어 새누리당으로선 딜레마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셈이다.
이정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