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6년 K-1 히어로즈 라이트헤비급 챔피언을 차지한 추성훈. | ||
그런데 최근 한국에서도 추성훈을 곱지 않게 바라보는 시선이 부쩍 늘어났다. 우선 격투기 선수로서의 활동보다 연예 활동 비중이 늘어나는 데 대한 불만이 조금씩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마침 인터넷을 통해 ‘아키야마, 추성훈의 진실’이라는 작자 불명의 글이 떠돌기 시작하면서 추성훈을 둘러싼 각종 의혹들이 팬들의 불만을 업고 점차 확대되기 시작했다. 논란의 중심에는 추성훈의 초기 매니지먼트를 담당했던 박지일 씨(34)가 존재한다. 박 씨는 인터넷상의 글에서 ‘추성훈 신화’의 설계사로 소개되고 있다. 즉 박 씨는 추성훈의 현재 이미지를 기획하고 만들어냈지만 지금은 추성훈의 감춰진 진실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는 인물로 묘사된다.
박 씨를 수소문한 끝에 어렵게 연락처를 받아 통화를 시도했고 며칠 후 직접 그를 만나 그가 주장하는 논점을 되짚어 봤다. 박 씨는 추성훈이 그동안 일본 귀화를 결정한 이유로 알려졌던 용인대 학벌 문제나, 일본에서 재일교포로서 차별을 받아 한국에서 유도를 하기 위해 찾아왔다는 ‘추성훈 스토리’를 시작점부터 송두리째 뒤집어버리는 주장을 제기했다.
미리 언급했다시피 추성훈에 대한 국내 여론이 나빠지기 시작한 첫 계기는 경기에 대한 소극적 태도 때문이었다. 추성훈은 2007년 12월 31일 프라이드와 K-1의 합동대회였던 ‘야렌노카!’에서 미사키 가즈오와 경기 이후 부상으로 인한 휴식기를 가지면서 한국에서 각종 연예 활동을 통해 인지도를 높였다. 하지만 본업인 격투기는 단 두 경기, 그것도 약체만을 상대로 한 싱거운 경기를 펼쳤다.
거기에 ‘추성훈은 약한 상대만 고른다’라는 대회 주최사 FEG(현 라이츠닷컴) 총괄프로듀서 다니카와 사다하루의 비난 발언은 추성훈에 대한 비판 여론을 가시화시키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
이에 대해 최근 추성훈의 초기 매니지먼트를 담당한 것으로 알려진 박지일 씨는 이유가 있었다고 설명한다. “원래 추성훈은 FEG에서 처음부터 약한 상대를 붙여주며 키워준 선수다. 일본 격투기계에서 ‘악마’가 되고 나서는 외국인 강자와 싸우길 원하는 FEG와 달리 ‘약한 악마’는 존재할 수 없다는 이유로 자신이 이길 수 있는 상대만 선택한 것이다.” 한번이라도 지면 상품성이 떨어지는 것을 스스로 알았기에 패할 우려가 큰 경기는 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내 격투기잡지 <무진>의 김기태 편집장(33)은 “프로 선수로서 자신의 몸값을 지키기 위해, 계약 종료를 앞둔 시점에서 승률에 신경 쓰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더구나 일본 격투기 무대에서 선수가 상대 결정 과정에서 주최 측과 교섭을 벌이는 것은 일상적인 일이다. 다만 선수에 따라 좀 더 힘을 쓸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사실 FEG가 그런 뻔한 시비를 걸었던 것도 결국 재계약을 위한 하나의 압박 카드로 볼 수 있다. 그저 비즈니스 상의 줄다리기일 뿐”이라며 큰 의미를 둘 문제는 아니라는 입장을 보였다.
추성훈이 일본 귀화를 결심한 것은 용인대 학벌에 의한 편파 판정과 그로 인해 조인철의 벽을 넘어서 국가대표가 될 수 없었던 상황이 이유였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박지일 씨는 그렇지 않다고 잘라 말한다.
“용인대 파벌? 분명히 존재하지만 추성훈은 그 피해자가 아니었다. 윤동식이라면 모를까. 용인대 파벌을 문제 삼은 것은 이후 영화를 준비하면서 이야기를 갖다 붙인 것이다. 2001년 아시아선수권대회에 추성훈은 2진이지만 이미 국가대표로 출전했다. 당시 대표 선정은 대한유도회 김정행 회장의 직권에 의한 것이었다. 오히려 추성훈은 재일교포라는 포지션 덕분에 한국에서도 혜택을 봤다. 더구나 2002년 아시아게임을 앞두고 조인철은 은퇴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2진이었던 추성훈이 국가대표로 발탁될 확률은 다른 어느 때보다 높았다. 그런데 추성훈은 조인철과 우열을 가릴 수 있는 선발전에 나서지 않았고, 결국 귀화를 택했다.”
그렇다면 추성훈이 귀화를 선택한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무진 김기태 편집장은 두 가지 가능성을 거론했다. 하나는 우선 추성훈이 자서전에서 밝힌 대로 태릉선수촌에 적응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긴키 대학의 자율적인 운동 스케줄에 익숙했던 추성훈은 단기 집중형 훈련을 좋아한다. 지금도 각종 연예 활동을 병행하지만 하루에 4시간의 집중 훈련은 빼먹지 않는다. 부산시청팀에서도 자기가 주도해서 훈련 분위기를 바꿔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태릉은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에 잠들 때까지 정해진 훈련 스케줄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 추성훈으로서는 유도, 그리고 운동 자체가 싫어질 정도로 괴로웠다고 한다. 또한 선수촌 내에서 용인대 파벌과의 신경전도 있었다고 한다. 결국 다시는 선수촌에 돌아오지 않는다는 각서를 쓰고 나왔다. 그 얘기는 곧 한국에서 더 이상 국가대표가 되기를 포기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추성훈이 유도를 하기 위해서는 귀화밖에 남은 길이 없었다.”
▲ 일본 대표 추성훈이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서 한국대표 안동진에게 심판 판정승을 거뒀다. 연합뉴스 | ||
박지일 씨도 “추성훈은 한국 방식, 팀스포츠 문화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이것은 재일교포나 용인대 문제를 떠나 한 인간으로서의 문제였다”고 지적했다.
추성훈은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금메달 획득 후 <일요신문>과의 단독 인터뷰(543호 참조)에서 일본으로 귀화한 진짜 이유를 묻는 질문에 대해 “국내 유도계의 텃세가 아니라 내 실력이 안 됐다. 세계선수권자였던 조인철을 이길 만한 실력이 안 됐다. 조인철이 은퇴하면 그 자리는 내 차지라고 생각했지만 한국 유도는 뿌리가 깊었고 선수층이 두터웠다”며 텃세 때문이 아닌 실력 차이 때문에 귀화했다고 말한 바 있다. 또한 안동진 선수와의 결승전 결과를 놓고 심판 판정에 불만을 토로하는 국내 유도 관계자들이 많다는 지적에 대해선 “대체적으로 심판 판정에는 큰 무리가 없었다”고 설명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