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이 맞아야… 지난 2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임채정 위원 장(가운데)과 간사단이 논의를 하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지난 3일 서울 종로구 도렴동 95-1 정부종합청사 별관에 마련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4층 기자실에선 정순균 인수위 대변인의 짤막한 발표가 있었고 초등학교 교실을 연상케하는 기자실에 빼곡히 앉아있던 1백50여 명의 기자들 사이엔 강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정 대변인 발표 내용 요지는 ‘앞으로 인수위원에 대한 개별 취재를 일절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일부 기자는 “기자들을 축사에 모아놓고 사육을 하겠다는 것이냐”고까지 했다.
지난해 12월30일 현판을 내걸고 새해 2일 본격적인 업무에 착수한 인수위는 당초 언론사간 취재 경쟁 과열을 우려해 인수위원 접촉 시간을 오전, 오후 각 1시간씩으로 제한했다. 그나마 개별 위원이 아니라 6개 분과 간사위원으로 취재 대상까지 한정했다. 하지만 이 같은 제한적 취재가 허용된 2일 하루 만에 무용지물임이 증명됐다.
정부중앙청사 별관 외교통상부 건물 1층과 3~6층에 입주한 인수위 사무실 가운데 기자들의 ‘먹잇감’인 인수위원들이 있는 곳은 5층 일부가 전부다. 4층은 기자실과 대변인실이 차지하고 있고 6층은 당선자 집무실과 인수위원장실이 있다. 특히 6층 당선자실 입구 등에는 검색대가 설치되고 청와대에서 파견나온 경호요원이 곳곳에 배치돼 외부인의 출입을 철저히 통제하고 있어 기자들도 쉽게 접근이 허용되지 않고 있다.
그나마 지방에서 올라온 인수위원들에 대한 심야 취재도 간단치 않은 상황이다. 이들에 대해 인수위측은 인수위 부근에 오피스텔을 얻어주고 대학 수능시험 출제위원처럼 ‘합숙’을 시키고 있는 데다 이들의 합숙소 위치를 철저히 보안에 부치고 있기 때문이다.
아침 전화 취재 역시 임채정 위원장 특별지시로 대부분 불통이거나 간신히 통화가 돼도 “대답할 게 없네요”라는 매몰찬 내용외엔 들을 게 없는 실정이다. 2일 오전 11시 처음이자 마지막 자유 취재 시간이 되자 1백50여 명의 기자들이 5층 6개 분과위 사무실로 몰려들면서 각 방마다 20여 명의 기자들로 가득찼다.
쏟아지는 질문에 대부분 교수 출신인 인수위원들은 아직 단련되지 않은 듯 자기 생각과 대선 공약을 뒤섞어 내뱉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들의 발언이 ‘재앙’으로 변하는 데는 불과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았다. 저녁 7시쯤 주요 신문 초판이 배달되자 임채정 위원장 등 인수위측 인사들은 얼굴이 흑빛으로 변했다.
하지만 이 같은 방식 역시 대한민국 기자들의 역량을 과소평가한 것으로 판명됐다. 4일, 5일 계속해서 주요 신문 1면에는 인수위 관계자 이름으로 굵직한 기사들이 터져나오고 있어 인수위-기자간 전투는 기자들의 완승으로 끝날 가능성이 커졌다.
당초 청사 1층 입구 로비에 마련됐던 ‘민원센터’의 이름도 하루 만에 ‘정책제안센터’로 변경됐다. 당초 국민 여론을 수렴해 정책에 반영하겠다는 취지로 개설됐지만 ‘민원’이라는 이름 때문에 그야말로 온갖 개인적 민원을 제기하기 위한 사람들이 몰리면서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국민참여센터’가 위치한 3층에 마련됐던 특보실도 3일 단 하루 만에 방을 빼야했다. 염동연 정무특보, 이기명 후원회장, 이강철 조직특보 등 노 당선자의 핵심 측근 중 측근들을 위한 공간으로 마련됐으나 정작 이들은 당시 인수위로 발령조차 나지 않은 상황이었음에도 ‘책상’부터 차지하려다 제동이 걸린 것.
특히 노 당선자가 “청탁하다 걸리면 패가망신할 것”이라고 경고했음에도 인수위 당선자 비서실을 비롯해 실무진들에게까지 인사 청탁 전화가 쇄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고 실제로 인수위 주변엔 로비를 위해 모여든 민원인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인수위측의 강력한 제동으로 다소 줄긴 했지만 전화 청탁은 여전한 상황.
더욱이 인수위가 국민참여센터를 통해 새 정부 참여 인사를 추천받겠다고 하면서 걸려오는 전화의 절반 이상이 특정인을 헐뜯는 전화라고 한다. 노 당선자와 인수위 인사들간에 손발이 맞지 않은 상황도 속출하고 있다.
노 당선자가 지난 연말 계룡대를 방문해 ‘미국의 주한미군 감축’과 ‘미국의 북한 공격’ 가능성을 언급한 부분에 대해 이낙연 대변인이 ‘비보도’를 요청했다가 기자들로부터 거부당한 일이 있었다. 문제는 다음날 노 당선자가 신년 기자간담회를 하는 자리에서 이 대변인을 향해 “사회를 보지 말라”고 한 뒤 “어제 발언은 실수한 게 아니라 내가 작심하고 한 것”이라고 밝혀 이 대변인을 무안케 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15개 언론사에 대한 부당내부거래 혐의 등에 대해 부과했던 과징금 1백82억원을 취소키로 결정한 것에 대해서도 당초 인수위는 강한 유감을 피력하며 “경위조사를 철저히 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하지만 다음날 곧바로 정순균 대변인이 “더 이상 문제삼지 않기로 했다”고 한 발 물러섰고 노 당선자가 2일 인수위 간사단 회의를 직접 주재한 자리에서 “너무 성급했다”고 강하게 질책했다.
당료 출신 인수위 실무진과 정부측에서 파견나온 관료 사이에도 팽팽한 물밑 신경전이 감지되고 인수위원들 가운데 상당수가 교수 출신이어서 인수위 활동 종료 후 학교 복귀 문제를 놓고 고민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한 위원은 “역량을 인정받아 발탁이 돼 새 정부 국정의 기초를 놓는 데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은 좋은 일이지만 일단 정치권에 손을 담갔다는 점에서 학생들이 어떻게 받아들여줄지 의문”이라고 토로했다. 조은지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