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자 한 상자를 두고 유유히 사라지는 광고 속 보일 회장. 출처=컬럼비아
유머러스하면서도 엉뚱한 이 광고는 미국의 글로벌 아웃도어 브랜드 ‘컬럼비아(Columbia)’의 ‘테스티드 터프(Tested Tough)’ 광고 캠페인이다. 그리고 이 광고 속에 등장하는 노인은 다름 아닌 컬럼비아의 회장인 거트 보일(93)이다. 보일 회장은 이미 30년 넘게 자사의 광고 모델로 등장하고 있다.
1980년대부터 시작된 ‘테스티드 터프’ 캠페인은 컬럼비아의 상징이 됐을 정도로 이미 미국에서는 유명하다. 또 ‘완벽, 그 이상을 추구한다’는 회사의 기본 철학과 함께 보일 회장이 평소 직원들에게 입버릇처럼 강조하는 ‘완벽하지만, 더 잘 만들어라’는 뜻이 광고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여기에 더해 아들에게 입힐 수 있는 옷을 만드는 엄마의 마음도 담겨 있어 소비자들에게는 ‘믿고 구매할 수 있는 제품’이라는 인식을 심어줬다. 실제 1984년 첫선을 보였던 ‘테스티드 터프’ 시리즈 광고에서 보일 회장은 컬럼비아의 현 CEO(최고경영자)이자 아들인 팀 보일과 나란히 광고에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이 광고에서 보일 회장은 아들에게 안쓰러울 정도로 가혹하게 신제품 테스트를 시키는 ‘터프한 엄마’로 등장한다.
보일 회장은 아웃도어 브랜드 업계에서 눈에 띄게 성공한 자사의 광고 캠페인에 대해 “우리 회사가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제품의 혁신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브랜드를 각인시킨 것은 좋은 광고 덕분이다”라고 말했다.
보일 회장의 자서전.
포틀랜드는 산, 숲, 바다 등이 좋아 다양한 아웃도어 스포츠를 즐기기에 제격인 곳인 반면 비가 많이 오는 변덕스러운 날씨는 아웃도어를 좋아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기능성 의류를 절실히 필요하도록 만들었다. 이런 점을 잘 알고 있던 남편은 모자 외에도 아웃도어 의류로 사업을 다각화했다. 1960년 ‘컬럼비아 스포츠웨어 컴퍼니’로 사명을 바꾼 것도 이런 배경에서였다.
하지만 남편은 1970년 47세의 나이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사인은 급성 심장마비. 평범한 가정주부로만 살아온 보일 회장은 하루아침에 회사 일을 떠맡고 눈앞이 깜깜해졌다. 게다가 회사는 파산 위기에 처해 있어, 밀린 대출금을 갚기는커녕 집도 넘어갈 처지였다. 당시만 해도 여자 경영인은 전무하다시피 했기 때문에 거래업체는 못 믿겠다며 더 이상 거래하길 꺼렸고, 은행도 신용거래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보일 회장은 벼랑 끝에 선 심정이었다.
그러던 차 한 사업가가 회사를 인수하겠다는 뜻을 비쳤다. 그가 제시한 금액은 1400달러(약 165만 원). 터무니없는 액수에 자존심이 상할 대로 상한 보일 회장은 그 자리에서 제안을 거절했다. 그리고 죽기 살기로 일하겠다고 다짐했다. “죽치고 앉아서 하루 종일 운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보일 회장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보일 회장의 선천적으로 호탕하고 낙천적인 성격은 회사를 일으켜 세우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 곧 보일 회장은 아웃도어 의류에 초점을 맞추는 방향으로 사업을 전환하기로 했다. 보일 회장이 가장 주력한 것은 경험을 통한 제품 개발이었다.
직접 낚시꾼들에게 조언을 구해 개발한 낚시 조끼는 오늘날 흔하게 볼 수 있는 주머니가 많이 달린 낚시 조끼의 표본이 됐다. 그리고 1975년에는 업계 최초로 ‘고어텍스’로 만든 아웃도어용 재킷을 개발했다. 지금은 흔하지만 당시 고어텍스는 생소한 소재였고, 이로써 컬럼비아는 고어텍스를 이용해 재킷을 생산한 첫 번째 회사로 기록되었다.
보일 회장은 ‘터프한’ 이미지로 떴지만 실은 훨씬 다정하다고 한다. 출처=컬럼비아
1980년대 들어 이른바 ‘보일 엄마’ 광고 시리즈가 대박을 치면서 급성장한 컬럼비아는 1998년 기업공개를 통해 나스닥에 상장됐다. 2014년을 기준으로 총수익은 21억 달러(약 2조 5000억 원)를 기록하고 있다. 100세를 바라보는 나이에도 여전히 활기차고 정력적이며, 또 열정적인 보일 회장은 지금도 매일 회사에 출근해 업무를 보고 있으며, 모든 회계 내역을 점검하고, 직접 서명을 한다.
광고 속에서는 냉혹하고 무섭게 등장하지만 실제 보일 회장을 만난 사람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보일 회장 역시 “나는 광고 속에 등장하는 것처럼 그렇게 고약하진 않다. 나는 그보다는 훨씬 다정하고, 키도 크고, 금발이다. 그리고 더 날씬하다”라고 말한다. 보일 회장 특유의 익살과 재치가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익살스럽고 재치 넘치는 광고가 탄생하게 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