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잠이 부족한 직장인들은 흔들리는 전철 안에서든 직장에서든 잠시 라도 틈만 나면 졸게 된다. 야근과 철야는 생체리듬을 깨기 때문에 가능하면 피해야 한다고 의사들은 입을 모은다.우태윤 기자 | ||
최근 연구에서는 습관적인 야근과 암같은 질병의 발생율 사이의 상관관계를 밝힌 분석들이 발표되고 있다. 암 발생의 직접 원인까지는 아니더라도 건강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는 데는 대다수 의학자들이 동의하고 있다.
하지만 현대산업사회에서는 야근이나 철야교대근무 등 밤과 낮의 경계를 넘나들어야 하는 직종의 근무자들이 많다. 야근이 불가피한 경우 건강에 미치는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법도 알아봤다.
2002년 덴마크의 코펜하겐 암연구소가 유방암 환자 7천여명의 전력과 생활습관을 1964년까지 소급해 추적한 결과를 발표했다. 이 조사에서는 직업을 갖고 일을 했던 환자들 가운데 야간 교대근무 기간이 6개월을 넘어서면 유방암 발병률이 증가하기 시작해 위험성이 평균적으로 50% 정도 높아졌다는 분석결과가 나왔다.
미국 프레드 허친슨 암연구소는 야근 경험이 있는 여성환자들을 조사한 결과 주기적으로 야근을 한 기간이 3년 이상인 여성은 그렇지 않은 여성에 비해 유방암 발병률이 60% 높다는 결과를 내놨다. 하버드 의대가 최근 발표한 암환자 분석통계에서도 역시 야근이 결장암, 직장암, 대장암 발병률의 증가와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오래 지속되는 잦은 야근이 건강에 악영향을 준다는 것은 거의 의심할 바 없는 명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최근 암발생율과의 상관관계를 밝힌 연구들은 그 악영향이 생각보다 훨씬 심각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야근이 건강을 헤치는 가장 큰 원인은 사람에게 필요한 정상 패턴의 야간수면을 불가능하게 한다는 데 있다. 이것은 개인적인 이유로 밤잠을 제대로 자지 않는 습관이 있는 사람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야근과 불규칙한 수면은 체내 호르몬 체계를 교란시켜 건강을 해치는 큰 원인이 된다. 밤에 제대로 잠을 자지 않으면 이 시간대에 분비되어야 할 멜라토닌 등 호르몬이 제대로 분비되지 않아 결과적으로 암에 대한 저항력이 떨어진다.
멜라토닌은 수면 조절뿐 아니라 면역체계를 강화하는 역할도 한다. 멜라토닌은 암도 막아내는 호르몬으로 알려져 있지만, 밤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면 본래의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멜라토닌은 뇌 깊숙이 위치한 송과선에서 분비되어 숙면을 유도하는 기능도 함께 한다. 아침에 해가 뜨면 뇌의 시상하부에 있는 ‘시신경교차상부핵’이라는 생체시계가 빛을 감지하여 ‘송과선’에 신호를 보내게 되고 잠잘 때 분비되는 수면 호르몬인 멜라토닌 분비량이 급속히 줄어든다. 그러므로 일단 송과선이 빛을 감지하게 되면 계속 잠을 자고 있다 해도 뇌의 각성도가 높아 사실상 깨어있는 상태와 같게 된다. 밤에 못잔 잠을 낮에 보충한다 해도 피로가 가시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야근 등 이유로 수면 시간이 불규칙한 사람들에게 암 발병률이 높다는 통계들은 아직까지는 연구의 시작에 지나지 않는다.
고려대 안암병원 정신과 서광윤 교수는 “야간 불면과 암 발병의 직접적 인과관계를 단정지을 수 있는 명확한 입증자료는 아직 없다”면서도 충분한 연관성은 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을지병원 수면클리닉 김의중 교수는 “모든 암의 원인 요소로 스트레스는 거의 대부분 포함된다. 만성적인 불면이나 불규칙한 수면, 수면 부족으로 인해 면역체계 및 기능이 손상되고 호르몬 등 내분비 체계가 교란되는 사례를 부분적으로 보고하는 논문들도 종종 있다. 따라서 부적절한 수면이 암 발병에 적어도 간접 영향을 끼치는 것은 인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유방암과 대장암은 선진국에서 가장 흔한 암이다. 유방암의 경우 우리나라 여성들에게서도 위암 다음으로 높은 비율을 보이고 있으며 대장암은 남녀 함께 최근 10년 사이 가장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는 암이다.
지금까지는 이들 암이 육류와 지방을 많이 섭취하는 서구식 식사, 운동부족으로 인한 비만이 최대의 원인인 것으로 여겨져 왔다. 부적절한 수면과 암 발병의 연관성에 대한 주장은 비교적 최근에 제기되기 시작했지만 기타 다른 질환까지도 유발할 수 있다는 주장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서울시는 보건 관련 단체와 함께 지난 1년간 외국인 노동자 5천1백10명을 대상으로 건강검진(혈액검사 소변검사 엑스레이 피부질환검사)을 실시한 결과 전체의 24.7%가 간기능장애, 고혈압, 신장질환, 고지혈증, 당뇨 등 성인병 증세를 갖고 있다고 최근 발표했다.
각종 성인병은 대체로 영양 과다와 불규칙한 생활습관 등이 첫째 원인이지만 이번 조사에서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전반적으로 폭식과 폭음, 잦은 야근, 수면 부족, 운동 부족 등 불규칙한 생활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불규칙한 생활습관도 주요 원인이 됐을 것으로 지적됐다.
뿐만 아니라 각종 음식물과 스트레스 등으로 손상된 위벽도 밤사이에 복구되고, 콜레스테롤과 칼슘 대사도 주로 밤에 활발하게 일어난다. 아이들의 키가 자라는 시간도 주로 야간의 수면중이다.
성장호르몬은 동맥경화를 막아주고 지방을 분해해 뱃살이 늘어나지 않도록 하며 근육량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는데, 역시 주로 분비되는 시간은 야간의 수면시간이다. 특히 잠들고 40∼60분 정도 지나 깊은 수면에 들어가 있을 때 가장 활발하게 분비되기 때문에 숙면을 취할 수 없는 조건하에서 선잠을 자는 일이 일이 많아지면 이들 기능에도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농경사회에서는 해가 뜨고 지는 것과 맞춰 자고 일어나는 생활이 가능하지만, 현대 산업사회의 조건은 그렇지 않다. 병원근무자 군인 경찰 경비업체 등 야간 근무가 필수적인 업종, 항공 철도 버스 택시 등 대중교통 운행 등 교대근무가 필수적인 업종, 제조업 서비스업 등 야근이 잦은 업종 등에서는 야간 근무를 피할 수가 없다.
야근이나 교대근무를 피할 수 없다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는 수밖에 없다.
우선 잠을 푹 자는 데는 빛을 차단하는 것이 첫번째 조건이다. 밤에 일하고 낮에 자야되는 경우라면 먼저 어두운 장소를 택하는 것이 좋다. 잠자기 전에는 창에 반드시 커튼을 쳐서 빛이 들어오지 않도록 차단한다. 커튼이 어려운 경우는 눈가리개를 사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밤새 일하고 아침에 퇴근할 때는 선글라스를 착용해 밝은 빛을 피하는 게 좋다. 귀가해서는 바로 잠을 자지 말고 출근 직전인 오후에 잠을 자는 게 좋다. 밤에 출근한 뒤에는 조명을 최대한 밝게 해 낮과 같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렇게 해야 수면과 각성을 조절하는 생체시계가 야근에 적응하게 된다.
교대 근무는 낮번-저녁번-야간번의 시계방향 순서로 교대를 하면 좀 더 적응이 쉽다는 연구도 있다.
멜라토닌이 풍부한 음식을 먹거나 멜라토닌의 분비를 촉진하는 음식 등 수면을 유도하는 음식을 근무가 끝난 후 섭취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멜라토닌 함량이 높은 음식은 귀리 쌀 생강 토마토 바나나 등이고, 멜라토닌의 분비를 증가시키는 음식으로는 콩 견과류 치즈 칠면조 우유 두부 호박씨 등을 꼽을 수 있다.
멜라토닌이 면역력 강화와 항산화작용까지 하는 것으로 확인되면서 미국에서는 건강보조식품의 하나로 의사의 처방 없이 시판되기도 한다. 인간의 뇌에서 분비되는 멜라토닌과 야생식물 등에서 추출한 것은 성분 면에서 동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의사와 상의 하에 멜라토닌 보충제를 이용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잠자기 전 목욕을 통해 근육과 신경을 이완시키면 숙면에 도움된다. 하지만 물의 온도가 너무 뜨겁거나 냉탕과 온탕을 교대로 드나드는 온냉욕은 피해야 한다. 질긴 음식이나 수박 등 이뇨작용이 있는 과일과 맥주는 피하는 것이 좋고 칼슘이 풍부한 우유 등은 수면에 좋다.
윤은영 건강정보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