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7월29일 밤 경북 구미와 경남 밀양의 기온이 무려 30℃에 육박하는 기록적인 열대야 현상이 나타나는 등 사람들이 계속되는 무더위에 지쳐가고 있다. 사진은 한강시민공원에서 더위를 쫓는 사람들. | ||
당연히 피로가 풀리지 않아 이튿날 아침 일어나기 힘들고 피로가 누적돼 업무능률도 떨어진다. 더 위험한 것은 이 같은 열대야가 계속되면 고혈압 심장병 당뇨병의 만성질환자에게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한낮의 열기가 가라앉지 않은 여름밤의 열대야. 괴롭지만 슬기롭게 한밤의 열기를 견뎌낼 방도를 알아보자.
열대야란 하루 최저 기온이 25℃를 넘는 것. 즉, 하루 중 기온이 가장 낮을 때인 밤에도 25℃ 이상의 고온이 지속되는 것을 말한다. 하루 평균기온이 25℃ 이상이면서 최고기온이 30℃ 이상인 무더운 여름에만 생기는 현상이다. 장마가 끝난 뒤 강한 햇볕과 함께 고온다습한 북태평양 고기압이 발달했을 때, 밤에 복사냉각 효과가 감소하면서 주로 나타난다.
열대야 현상은 건물이나 사람이 많은 대도시일수록 더 심하게 나타난다. 빌딩이나 아스팔트 같은 인공구조물이 한낮에 뜨거운 열을 흡수해 두었다가 밤에 다시 뿜어내고, 사람이나 자동차 등도 많은 인공 열을 쏟아내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기 오염으로 생긴 이산화탄소가 공기 중에 떠있어 대기 밖으로 방출돼야 할 열기를 그대로 붙잡아두는 ‘도시열섬현상’ 즉 온실효과까지 열대야 현상을 부추긴다.
사람이 가장 쾌적하게 잠들 수 있는 기온은 섭씨 20도 정도. 하지만 이보다 높은 온도가 지속되면 체온을 조절하는 뇌속의 온도조절 중추가 체온을 낮추기 위해 흥분상태를 지속함으로써 편안한 수면을 방해받게 된다. 잠을 깊이 자는 렘(rem)수면의 시간이 그만큼 줄어 수면부족을 초래하는 것이다.
수면부족 상태가 계속되면 건강에 나쁜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처음에는 두통 소화불량 같은 가벼운 장애를 느낄 뿐이지만, 계속되는 수면부족은 면역력 저하를 가져와 각종 질병에 걸릴 위험이 높아지게 된다.
“정신적으로 불안, 초조, 집중력 곤란 등의 증상도 생기고 점차 습관적인 수면장애나 심한 경우 우울증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고 고려대 안산병원 수면장애센터 신철 교수는 설명한다.
실제로 여름에는 열대야, 휴가(특히 해외여행) 등 평소의 신체리듬을 방해하는 요소가 많아 수면장애를 호소하는 환자들이 늘어난다. 원래 정신질환이 있는 환자들은 증상이 악화되기도 한다.
더위 외에 스트레스나 불규칙한 생활습관 등도 숙면을 방해하는 요소다.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으면 코티졸이라는 각성 호르몬이 분비된다. 때문에 스트레스를 잘 풀지 못하고 마음에 쌓아두는 사람이나 집중력이 많이 필요한 직업을 가진 경우에는 다른 사람보다 더 열대야로 인한 고통이 커질 수 있다.
면역기능이 약한 노인이나 어린아이도 주의해야 한다. 당뇨나 갑상선 기능항진증, 심장병, 폐질환, 정신질환 등이 있는 사람도 열대야에 노출됐을 때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체온 상승 속도가 빨라 심장에 압박감을 느낄 수 있다.
숙면을 방해하는 카페인이 많은 커피나 청량음료를 많이 마셔도 잠이 잘 오지 않는다. 보통은 잘 모르고 마시지만 녹차나 홍차 드링크제 초콜릿 등에도 카페인 성분이 들어 있다. 반면 우유나 상추, 양파 등에는 숙면에 도움을 주는 물질이 들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호박이나 호두, 차조기 등도 숙면에 좋은 식품이다.
각성을 유도하는 니코틴이 들어 있는 담배도 숙면의 적. 술 역시 금물이다. 흔히 술을 마시면 잠이 잘 온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강남성모병원 정신과 김정진 교수는 “알코올 성분은 일시적으로 수면을 유도하기는 하지만 깊은 수면은 방해한다. 또 차츰 더 많은 양을 마셔야만 잠을 잘 수 있게 되어 건강을 해친다”고 말했다.
열대야에 숙면을 취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규칙적인 생활습관과 여름밤을 즐기려는 여유가 중요하다. 을지대학병원 수면클리닉 유제춘 교수는 “규칙적인 생활은 인체가 항상성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어 무더운 여름밤에도 생체리듬의 균형을 흐트러지지 않도록 해준다”고 말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실내온도를 수면을 취하기에 좋은 온도인 20℃ 정도로 맞추고 잠들기 1∼2시간 전에 미지근한 물로 샤워를 하는 것이다. 샤워를 하면 체온이 내려갈 뿐만 아니라 사람을 각성시키는 교감신경이 진정돼 쾌적한 상태에서 잠이 온다.
이때 너무 찬물로 샤워를 하면 오히려 중추신경이 흥분되고 피부 혈관이 일시적으로 수축됐다가 확장되면서 오히려 체온이 올라가므로 주의한다.
숙면에 좋은 체조나 운동 같은 것도 있을까. 특별한 운동이 좋다기보다는 초저녁에 20∼30분간 자전거 타기나 산책 등 가벼운 운동을 하면 숙면을 취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심한 운동이나 수면 직전의 운동은 오히려 수면을 방해한다. 운동으로 높아진 체온은 5시간 정도 지나야 정상 체온으로 돌아오기 때문에 심한 운동을 하면 잠들기가 더욱 어렵다.
늦은 밤 음식 섭취는 삼가야 한다. 자기 직전에 음식을 먹으면 신체는 소화를 시키느라 몸에서 열이 더 나기 때문이다. 잠자기 전 수박이나 청량음료 등 수분을 너무 많이 취하는 것도 좋지 않다. 몸 속만 일시적으로 식힐 뿐 체온에는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열대야로 잠을 설친 다음날에는 당연히 낮잠이 오기 마련이다. 낮잠은 자지 않는 것이 좋지만 자더라도 30분 이내로만 자야 한다. 졸리다고 낮잠을 오래 자면 생체리듬이 깨져 또다시 제 시간에 잠을 못이루는 불면증의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잠을 청한 후 15분 내에 잠이 오지 않으면 거실로 나와 음악감상, 독서, TV 시청을 하면서 몸을 식힌 후에 다시 잠을 청하는 것이 좋다. 이때 빨리 잠을 자야 한다는 조바심보다는 “이러다 보면 곧 잠이 오겠지”라는 느긋한 생각을 갖는 것이 좋다. 음악, 독서, TV 등의 내용이 너무 재미있거나 자극적인 것은 중추신경을 오히려 각성시켜 수면에 방해가 된다. 편안하고 지루한 내용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의 수면장애가 2주 이상 계속된다면 수면클리닉을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 수면다원검사 등 필요한 검사를 통해 원인을 찾아 치료해야 한다.
송은숙 건강전문 프리랜서
도움말/강남성모병원 정신과 김정진 교수, 고려대 안산병원 수면장애센터 신철 교수, 을지대학병원 수면클리닉 유제춘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