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억 인구를 보유한 중국은 한류 최대 시장이다. 온 나라가 아니라 하나의 성에서만 활동해도 한국 활동보다 수익이 나은 경우가 많다. 특히 예능을 좋아하는 중국인들에게 K-예능은 꽤 잘 먹히는 브랜드였다.
그 결과 SBS <일요일이 좋다> ‘런닝맨’은 포맷이 정식 수출되고, 원조 ‘런닝맨’ 출연진은 하나같이 스타덤에 오르며 중국 곳곳을 오가며 팬미팅을 갖고 있다. 황치열은 중국판 <나는 가수다>에 출연한 후 상상하기 힘들 정도의 인기를 얻었다. 이쯤되면 과거의 ‘아메리카 드림’을 잇는 ‘차이나 드림’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중국은 이런 상황을 좌시하지 않고 있다. 공산주의 국가인 터라 중국에서 부를 축적한 이들이 이 돈을 외국으로 갖고 가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갖가지 규제가 생기며 중국 시장에서 한국 예능의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다.
그 포석으로 중국의 방송 정책과 심의를 총괄하는 국가신문출판광전총국(廣電總局)은 7월 1일부터 중국으로 수입되는 외국 콘텐츠에 대한 본격적인 제재를 시작했다. 외국의 콘텐츠를 통째로 수입해 방송하는 것은 물론이고, 외국의 콘텐츠를 바탕으로 리메이크하는 것에도 제동을 걸었다.
중국판 ‘런닝맨’인 ‘달려라 형제’ 홈페이지 캡처.
중국의 위성방송TV들은 프라임 시간대로 분류되는 오후 7시 30분∼10시 30분에 외국의 콘텐츠를 기반으로 만든 프로그램을 1년에 두 편까지만 방송할 수 있다. 또한 새롭게 론칭된 프로그램은 1년에 한 편만 편성할 수 있고, 그마저도 방송 첫 해에는 프라임 시간대에 편성할 수 없다. 자국 콘텐츠 보호를 명목으로 해외 콘텐츠가 중국 시장에 연착륙하는 것을 막겠다는 복안이라 할 수 있다.
이 여파는 이미 피부로 느껴진다. 예능 한류의 선두주자였던 ‘런닝맨’을 리메이크한 저장위성TV <달려라 형제>는 시즌4까지 방송돼 큰 성공을 거뒀다. 원작자인 SBS 역시 적잖은 저작권 수입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올해 안에 시즌5를 제작해 송출하려던 저장위성TV는 이번 규제가 발효되면서 시즌5의 편성을 내년으로 미뤘다. 이미 시즌4가 방송돼 운신의 폭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7월 14일 발표된 ‘2016년 2분기 중국 방송국 예능 시청률 톱10’에 따르면 <달려라 형제>를 방송하고 있는 저장위성TV는 기존 1위였던 후난위성TV를 제치고 시청률 1위로 도약했다. 2014년 첫 선을 보인 <달려라 형제> 시즌1은 1% 시청률을 기록했으나 시즌2는 5%까지 치솟았고 이후에도 평균 3%대를 유지하고 있다. 중국에서 프로그램 성공의 기준을 ‘1%’로 삼는 것을 감안하면 <달려라 형제>의 파급력을 가늠할 수 있다.
이런 사실은 한국 언론을 통해서도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하지만 중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연예기획사들은 이런 보도 자체를 부담스러워한다. 중국 측이 이를 일일이 체크하기 때문이다.
한 연예기획사 대표는 “중국이 가장 싫어하는 기사 뉘앙스는 ‘일은 왕서방이 하고 돈은 한국인이 번다’는 것”이라며 “이런 보도가 많아지고 한국 내에서 중국을 좋은 돈벌이 수단으로 볼수록 중국의 장벽을 높아진다. 나날이 상승하는 드라마 판권 금액이 공개될 때마다 제작사들이 이를 부인하는 것도 중국의 눈치를 보고 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여기서 파생되는 문제가 표절이다. 한국 콘텐츠를 정식 수입하면 규제에 걸릴 수 있으니, 표절 후 ‘자체 제작 콘텐츠’로 둔갑시키는 것이다. 중국 제작사 입장에서는 한국에 저작권료를 지불하지 않아도 되고 중국 정부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니, 그들에게는 일석이조인 셈이다.
SBS 파일럿 예능 ‘심폐소생송’ 표절 시비에 휘말린 중국의 ‘명곡이었구나’.
<명곡이었구나>는 4명의 ‘노래 깨우는 자’가 원곡자를 모르는 상황에서 1절의 노래를 부른 뒤 현장 200명 관객의 투표를 통해 ‘노래 깨우기’ 여부를 결정한다. 120표가 넘는 표를 얻으면 원곡자가 등장해 남은 노래를 부르고 잊힌 노래를 다시 깨우는 포맷이다.
이는 <심폐소생송>이 ‘노래 깨우는 자’로만 바뀌었을 뿐, 청중단 200명 중 120표 이상을 넘겨야 한다는 규칙이나 구성이 사실상 <심폐소생송>과 판박이다.
이에 제작사 코엔미디어 측은 “장수위성TV의 <심폐소생송> 표절로 인한 권리 침해를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며 “정당한 판권 구입 후 <명곡이었구나-명곡을 건지다>를 제작·방송할 것을 장수위성TV 측에 공식 요구한다”고 밝혔으나 중국 측은 요지부동이다.
앞서 중국 측은 한국 유명 예능인 <슈퍼맨이 돌아왔다>와 <히든싱어>, <안녕하세요> 등을 무단으로 표절해 빈축을 샀다. 중요한 건 중국 측이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 정부가 외국, 특히 한국 콘텐츠 수입을 규제하는 상황에서 콘텐츠 표절에 대해 시정을 요구할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최근 한반도의 사드 배치를 놓고 한중 관계가 악화되고 있어서 향후 문화 콘텐츠 교류의 폭은 더욱 좁아질 것이란 잿빛 전망도 나오고 있다. 또 다른 외주제작사 관계자는 “중국 측의 러브콜이 줄어든 것이 피부로 느껴진다”며 “게다가 한국의 PD와 작가 등 제작인력 등을 직접 사가서 자체 제작하려는 움직임이 거세지고 있어 한류의 수명이 단축되는 것 같다”고 우려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