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심 100%’ 룰 불리? 미지수, ‘윤과 대립각’ 어려울 것 전망도…차기 경쟁자들 장외 견제구
한동훈 전 원장은 총선 다음날인 4월 11일 참패 책임을 지고 비대위원장직에서 사퇴했다. 한 전 위원장은 “국민의 뜻을 준엄하게 받아들이고 저부터 깊이 반성한다”며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한 책임은 오롯이 저에게 있다”고 밝혔다. 이어 앞으로 계획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야 국민의 사랑을 되찾을 수 있을지 고민하겠다”며 “특별한 계획이 있진 않고, 어디서 무엇을 하든 나라 걱정을 하며 살겠다”고 말했다.
당초 정치권에서는 한 전 위원장이 총선이 끝난 후 한동안 정치권과는 거리를 둘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다. 미국 출국 가능성도 거론됐다. 하지만 한 전 위원장은 총선 기간 ‘미국 유학’에 대해 “저는 뭘 배울 때가 아니라 공적으로 봉사할 일만 남아있다”며 “끝까지 공공선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약속을 드린다”고 선을 그었다. 한 전 위원장은 사퇴 이후에도 한국에 남아 칩거에 들어갔다.
한 전 위원장의 잠행은 길지 않았다. 비대위원장직 사퇴 닷새 만인 4월 16일 비대위 활동을 했던 비대위원들과 만찬을 가진 사실이 알려졌다. 5월 3일에는 비대위원장 비서실장을 지낸 김형동 의원을 비롯해 당 사무처 당직자 20여 명과 식사 회동을 했다. 이어 공동선대위원장이었던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과 5월 12일 서울 모처에서 저녁식사를 함께한 것으로 전해졌다. 두 사람이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는 확인되지 않지만, 전당대회 당대표 선출 관련 얘기가 오갔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목격담도 흘러나오고 있다. 5월 3일 SNS에 한 전 위원장이 서울 강남구 도곡동 자택 인근에서 편안한 옷차림으로 통화하며 걷고 있는 뒷모습이 올라왔다. 11일에는 한 전 위원장이 양재 한 도서관 열람실에 앉아 책을 읽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정치권에서는 한 전 위원장이 당권 도전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반응이 나왔다. 여권 한 관계자는 “정치인의 발언과 행동은 모두 정치적으로 해석된다. 계속 대중에 모습을 드러내고 소식을 알리는 것은 당권 행보를 밟겠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당분간 정중동 행보를 보일 것으로 점쳐졌던 한 전 위원장이 전당대회 출마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것은 그가 처한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조국혁신당은 22대 국회 개원 즉시 ‘한동훈 특검법’을 발의하겠다고 공언했다. 특검 대상으로 ‘검찰의 고발사주 의혹’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취소 항소심 고의 패소 의혹’ ‘한동훈 자녀 입시비리 의혹’ 등이 포함돼 있다.
뿐만 아니라 서울경찰청은 한 전 위원장 딸의 ‘허위 스펙’ 의혹 사건을 수사심의위원회에 회부하기로 했다. 앞서 경찰은 관련 고발 사건에 대해 ‘무혐의’ 결정을 내리고 불송치로 사건을 종결지은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 전 위원장이 마냥 뒤로 물러나 있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한 전 위원장의 위기는 야권 공세뿐 아니라 윤석열 대통령과의 틀어진 관계도 영향을 미쳤다. 한 전 위원장은 4월 19일 윤 대통령 오찬 회동을 제안 받았지만, 건강상 이유로 참석하기 어렵다고 거절한 사실이 드러났다.
윤 대통령 역시 5월 9일 가진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한 전 위원장과의 관계를 묻는 질문에 “한 전 위원장은 정치 입문 기간은 짧지만, 주요 정당의 비대위원장 겸 총괄선대위원장으로 총선을 지휘했기 때문에 정치인으로 확고히 자리매김했다고 생각한다”며 “앞으로 정치인으로서의 길을 잘 걸어 나갈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원론적인 답을 내놨다. 여권에서는 둘의 관계가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야권 관계자는 “한 전 위원장이 ‘윤 대통령 황태자’로 알려졌을 때는 특검법이 통과돼도 거부권이 행사되리라 자신이 있었을 거고, 경찰도 수심위를 여는 데 고심이 깊었을 것이다. 그런데 윤 대통령과 갈등을 빚으면서 방어막이 사라졌다. (당대표 출마를 통해) 스스로 방어막을 쳐야 한다고 생각했으리라 본다”고 전했다. 이어 “여당과 한동훈 전 위원장은 이재명 대표의 당대표 출마를 ‘방탄용’이라고 비판해왔다. 그런데 한 전 위원장이 자신에게 쏠리는 사법리스크를 당대표직으로 막으려 하면 ‘방탄 출마’라는 똑같은 지적을 받을 수 있다”고 꼬집었다.
정가에선 한 전 위원장이 전당대회에 출마하면서 ‘비윤’ 기치를 내세울지에 관심이 모아진다. 앞서 야권 관계자는 “윤 대통령은 취임 3년차에 벌써 레임덕 조짐을 보이고 있다. 여당에서 차기 대권을 노리는 정치인은 지지율 낮은 인기 없는 현직 대통령과 각을 세워야 한다. 한 전 위원장도 결국 윤 대통령과 대립할 것”이라고 점쳤다. 친윤 진영에서 한 전 위원장 당대표 출마 가능성에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관건은 국민의힘 전당대회 룰이 개정되느냐다. 국민의힘은 지난 전대를 앞두고 규정을 개정, ‘당원 투표 100%’로 당대표를 선출한다. 하지만 총선 참패 후 그 비율을 조정해 국민 여론조사를 반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앞서 원외 조직위원장 160여 명은 전대 룰을 ‘여론조사 50%·당원투표 50%’로 바꿔야 한다고 요구하기도 했다(관련기사 민심에 물어봐? 국민의힘 ‘전대룰 공방’ 황우여 비대위 묘수 찾기).
친윤계는 이번 전대를 현행 ‘당원 100%’ 경선으로 치러야 한다는 입장이다. ‘찐윤’ 이철규 의원은 “전대 룰 개정은 차기 지도부의 몫”이라며 전대 룰 변경에 반대 목소리를 냈다. 전대 룰 개정은 당헌·당규 개정이 필요한데, 임시 지도체제인 비대위가 아닌 당원들의 선택을 받아 선출된 차기 지도부가 이를 결정해야 한다는 논리다.
친윤계의 이런 기류 밑바탕엔 한 전 위원장에 대한 견제가 숨어있다는 분석이다. 윤 대통령 핵심 지지층이 주를 이루는 당원들만 투표할 경우 한 전 위원장의 선출 가능성은 낮다는 판단이다. 또한 룰 변경이 없으면 당초 예상됐던 6월 말~7월 초에 전대가 열릴 가능성이 높은데, 이 경우 한 전 위원장의 총선 패배 ‘책임론’이 유효할 것이라는 계산도 있다.
친윤계 입장처럼 당원 투표 100% 규정이 한 전 위원장에게 불리할지는 미지수다. 에이스리서치가 뉴시스 의뢰로 지난 5월 8일부터 9일까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의힘 대표 적합도’에서 한 전 위원장은 26%를 기록, 28%의 유승민 전 의원와 각축을 벌였다. 하지만 국민의힘 지지층을 대상으로 한정했을 때는 한 전 위원장 적합도가 48%로 가장 높았다. 12%로 2위를 기록한 나경원 당선인과도 4배 차이를 보였다(여론조사의 자세한 사항은 여론조사기관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또 다른 야권 관계자는 “김기현 전 대표가 선출됐던 전당대회 때는 용산 대통령실의 당내 그립감이 최고조였다. 그래서 유승민 나경원 안철수 등 유력 후보를 주저앉히고 대통령실이 원하는 후보를 당대표에 앉힐 수 있었다. 그런데 총선 참패 이후 윤 대통령과 친윤계가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당원과 의원들이 용산의 의중을 들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정치권에선 친윤계가 태세를 전환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현실적으로 한 전 위원장 외에 대안이 없다는 이유다. 또 한 전 위원장이 윤 대통령을 상대로 강한 비토 목소리를 내긴 힘들 것이란 말도 나온다. 실제 이철규 의원은 5월 14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 인터뷰에서 한 전 위원장 출마론에 대해 “공직에 나가든, 당직에 출마하든 그건 오로지 본인의 선택”이라며 “왜 제3자가 나가지 말라고 압박하느냐”고 했다. 그동안 한 전 위원장 출마에 대해 부정적인 발언들이 주를 이뤄왔던 것과는 미묘하게 달라진 스탠스다.
민주당 한 당선인은 “정치권에서 윤 대통령과 한 전 위원장이 갈등을 일으켰다고 하지만, 한 전 위원장이 윤 대통령을 향해 제대로 비판을 한 적이 있었나. 그저 말을 제대로 듣지 않았다, 반목하는 분위기를 풍겼다 뿐”이라며 “두 사람은 운명 공동체다. 검찰에서 함께 일했고, 윤 대통령 취임 이후에는 법무부 장관과 비대위원장 등 요직을 거쳤다. 윤 대통령 실정에 책임이 자유로울 수 없다. 제대로 각을 세울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전 위원장 출마가 수면 위로 떠오르자 잠재적인 차기 경쟁자들이 장외에서 견제구를 날리기 시작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5월 16일 한 전 위원장 전대 출마에 대해 “문재인의 사냥개가 되어 우리를 지옥으로 몰고 간 애 밑에서 배알도 없이 또 정치하겠다는 것이냐”며 “당 대표 하나 맡겠다는 중진 없이 또다시 총선 말아먹은 애한테 기대겠다는 당이 미래가 있겠느냐”고 맹비난했다.
오세훈 서울시장 역시 5월 9일(현지시각) UAE 아부다비에서 가진 동행기자단 간담회에서 “이번 선거는 프레임 전쟁에서 졌다”며 “여당이 ‘이·조(이재명·조국) 심판론’ ‘운동권 심판론’을 해서 야당의 정권 심판론 프레임에 스스로 걸어 들어갔다”고 한 전 위원장의 총선 전략을 비판했다.
국민의힘 한 관계자는 “전대 출마는 한 전 위원장 본인만이 알 것이다. 하지만 지금 출마를 전제로 많은 사람들을 접촉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금의 정치 환경은 선거에서 졌다고 일선에서 물러나는 게 아니다”라면서 “그를 정치 초보라고 평가절하 하는 분위기가 있긴 하지만, 비대위원장으로 총선을 진두지휘했던 경험을 무시하기 어렵다. 총선 책임론을 두고도 보수 진영에선 한 전 위원장보다 윤 대통령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더 높다”고 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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