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픽=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
최근 작고한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을 비롯해 박정구 금호그룹 회장, 최종건 SK그룹 창업주와 그의 동생인 최종현 전 SK그룹 회장, 아들인 최윤원 전 SK케미칼 회장 등이 모두 폐암으로 쓰러졌다. 삼성그룹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에 이어 이건희 삼성 회장도 폐암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은 바 있다.
이 중 이건희 회장만이 유일하게 완치된 상태로 활동을 하고 있다. 이 회장의 경우에는 폐에서 암세포가 시작된 것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암세포가 처음 시작돼 폐 주위 림프절로 전이된 상태로 다른 폐암보다 예후가 좋은 편이라고 한다.
건강관리에 신경을 쓰는데도 재벌총수들이 폐암에 잘 걸리는 이유는 뭘까.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폐암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것은 이미 상식. 피우지 않는 사람에 비해 평균적으로 13배나 정도나 높다. 삼성서울병원 호흡기내과 권오경 교수는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CEO들이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과도하게 담배를 피워 물거나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만큼 직접 또는 간접 흡연에 많이 노출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간접 흡연자도 비흡연자에 비해 1.5배 정도 폐암에 걸릴 확률이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만큼 주의해야 한다.
그렇다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최고의 의료진을 선택해서 원하는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재벌총수들이 폐암에 속수무책으로 쓰러지는 것은 왜일까. 폐암의 생존율이 평균 15% 미만으로 다른 암보다 훨씬 낮기 때문이다.
물론 암세포를 빨리 발견할수록 생존율은 높다. 2000년 미국에서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수술·항암치료를 했을 경우 종양 크기가 3cm 이하인 1기는 5년 생존율이 50~80% 정도로 좋은 치료성적을 보인다. “국내에서 발표되는 폐암 치료성적도 선진국에 비해 전혀 뒤지지 않으며 오히려 좋은 결과를 보이는 경우도 있다. 국내 의료진의 수술 수준이 높아졌고, 암세포만이 갖고 있는 특징을 공격해서 파기하기 때문에 부작용이 현저히 적은 표적치료약물이나 방사선요법도 발달돼 있다”는 것이 을지대학병원 흉부외과 김길동 교수의 설명이다.
하지만 수술이 가능한 1, 2기와 3기 초기 일부 폐암 발견확률은 현재 20%에도 이르지 못한다. 2기에 이르면 30~40%로 떨어져 뒤늦게 3기에 발견하면 5~20%로 뚝 떨어진다.
폐암의 증상이 있어서 병원을 찾은 환자라면 가슴 X-ray와 가래검사로 폐암을 조기 진단할 수 있다. 하지만 증상이 없을 때는 정기 검진만으로는 폐암의 조기 진단이 매우 어려운 편이다. 가슴X-ray로는 1cm 이내의 조기 폐암을 찾아내는 것이 매우 어렵다. 발생 위치에 따라서는 몇 cm 이상 상당히 진행된 폐암을 놓치는 경우도 있다. 작고한 코미디언 이주일씨가 종합검진의 가슴엑스선촬영검사에서 정상이었지만, 몇 개월 만에 폐암 진단을 받은 경우다.
최근에는 저선량 CT(컴퓨터 단층촬영)라는 검사방법을 많이 사용한다. 일반 CT보다 방사선 양이 5분의 1로 적은 저선량 CT로 기존 가슴엑스선촬영검사로 찾아내지 못하는 폐암세포를 조기에 찾아낼 수 있다. 혈관주사를 통해 조영제를 주입하지 않아도 되고 검사시간도 짧으며 아프지 않은 것도 장점이다. 비용은 10만원 선이다.
▲ 최근 정세영 박성용 회장 등 유명 기업인들이 잇따라 타계하면서 사망원인인 폐암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폐암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는 ‘저선량 CT’ 촬영장면. | ||
“만약 직업적으로 미세한 석면이나 종이가루, 비소, 크롬, 니켈 등에 많이 노출되는 경우에도 요주의 대상이다. 이럴 때는 6개월에 한 번 정기검진을 받는 게 좋다”는 것이 삼성서울병원 호흡기내과 권오경 교수의 조언이다.
이처럼 폐암 발병 가능성이 높은 고위험군에 속하는 사람이 흡연을 하면 폐암 위험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보통 폐암의 90% 정도는 흡연과 관련돼 있고 나머지 10%만 직접 관련이 없다. 담배를 피우다 끊은 사람도 폐암에 걸릴 수 있다. 담배를 피우는 과정에서 파괴된 유전자가 회복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폐암이 걱정된다면 담배부터 멀리해야 한다. 오랜 흡연으로 만성폐쇄성 폐질환이 생긴 경우에는 애써 조기에 폐암을 발견하더라도 수술을 받을 수 없는 경우가 있다. 폐활량이 크게 줄어 수술을 견뎌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이든 어른이든 간접흡연에 노출되는 것도 피해야 한다. 특히 어렸을 때 간접흡연은 폐가 성숙하기 전이므로 폐세포에 심한 손상을 준다.
석면이나 종이가루 등 미세먼지가 많은 작업환경에서는 마스크를 쓰고 물을 뿌려가며 일하는 등 나름대로의 안전대책을 세워야 한다.
균형 잡힌 식사를 하면 다른 암도 마찬가지지만 폐암 예방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된다. 여러 가지 식품을 고루 섭취하되, 야채와 과일을 충분히 먹도록 한다. 비타민 A·C·E 등의 항산화 성분이 항암효과를 발휘한다. 비타민 D가 폐암 예방에 좋다는 최신 연구도 있다. 햇볕을 많이 쬐거나 비타민 D 섭취가 많은 사람의 폐암 수술 후 5년 생존율은 72%로 높았지만, 겨울에 수술을 받거나 비타민 D가 부족한 그룹은 생존율이 29%에 그쳤다고 한다.
평소 면역기능을 키우는 데는 적당한 운동, 긍정적인 사고방식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 스트레스를 지나치게 많이 받으면 암세포를 공격하는 NK세포 등의 면역세포의 숫자가 현격하게 줄고, 활동성도 크게 떨어지므로 주의해야 한다.
송은숙 건강 전문 프리랜서
도움말=삼성서울병원 호흡기내과 권오경 교수, 을지대학병원 흉부외과 김길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