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0일 인수위 국민제안센터 개소식에서 연설 하고 있는 노 당선자.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지난해 12월30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출범을 계기로 새 정부의 국정운용의 비전을 수립해 나가는 과정에서 보수 언론과 재계, 일부 정부 관료 등 이른바 ‘반(反) 개혁세력’의 공세가 예견했던 것 보다 훨씬 전방위적-조직적-지능적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결과다.
노 당선자측은 특히 새 정부의 이념-정책-인적 기반 등 모든 분야에서 펼쳐지고 있는 이들의 반발을 초반부터 제어하지 못할 경우 정권의 핵심기반인 개혁 지향 국민여론이 등을 돌릴 수 있다는 위기감에 사로잡혀 있다.
이 때문에 보수 기득권 세력의 반발 정도에 관계없이 대선 과정에서 내건 각종 법적-제도적-인적 개혁조치를 오는 2월25일 노 당선자의 대통령 취임 및 내각 출범 이전부터 이행에 들어가 새 정부 초반부터 ‘개혁 저항’을 정면돌파해 나간다는 구상이다.
노 당선자의 한 핵심측근은 “대선 승리 이후 한동안 위기감 속에 사태를 관망하던 일부 보수언론과 재계를 중심으로 인수위 출범을 계기로 새 정부에 대해 조직적인 저항에 들어간 것으로 판단된다”며 “특히 이들의 공세는 새 정부의 정책방향에 대한 의도적인 왜곡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권 핵심부의 사상-도덕적 기반 와해를 목표로 하고 있어 이에 대한 적극적인 대처가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노 당선자측은 우선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 보수 언론들이 일부 인수위원들의 ‘입’을 빌어 재벌개혁 등 새 정부 개혁정책의 ‘급진성’과 ‘불안감’을 부각시켜 보수층의 결집 및 중간세력의 보수화를 부추기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이들 언론들은 ▲대기업 구조조정본부 폐지 유도 ▲최고경영자(CEO), 최고재무책임자(CFO) 분식회계 또는 허위공시시 형사처벌 ▲재벌 총수 및 친인척 보유 비상장 회사 주식 현황 공표 등 재계가 민감하게 반응할 사안들에 대해 인수위원 개인 의견을 의도적으로 인수위 입장인 것처럼 보도해 노 당선자측과 재계를 이간질하고 있다는 것이 노 당선자측의 분석.
노 당선자의 한 공보분야 측근은 “일부 언론의 경우 담당 데스크가 미리 기사의 틀과 방향을 짜 놓고서는 인수위원들에게 의도한 코멘트를 유도하는 사례가 허다한 것으로 확인됐다” 며 “특히 재벌정책과 관련해 몇몇 기사를 내보낸 뒤 ‘새 정부가 국내 굴지의 S그룹을 표적으로 재벌개혁을 할 것’이라는 내용을 보도한 것을 보고는 그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었으며 급기야는 노 당선자가 8일 이에 대한 입장을 표명하기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당선 이후 언론개혁에 대해 이렇다 할 언급이 없었던 노 당선자가 보수 언론의 개혁 필요성을 새삼 절감하며 대응방안을 적극 강구키로 한 것도 이때부터다. 노 당선자는 당장 8일 공정거래위원회의 15개 언론사에 대한 과징금 취소조치에 대해 인수위에 감사원 감사를 요청하도록 지시했다.
노 당선자측은 또 일부 전경련 관계자를 중심으로 한 재계의 새 정부 개혁정책에 대한 계속된 ‘도발’도 좌시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노 당선자측은 손병두 전경련 부회장이 각각 지난 4일과 7일 언론 인터뷰와 공개 토론회를 통해 ▲상속증여세 과세에 완전포괄주의 도입 ▲총액출자제한 유지 ▲구조조정본부 해체 등 노 당선자 핵심공약에 반박하는가 하면 “재벌개혁에 앞서 정부부터 개혁하라”며 일갈한 데 대해 불쾌감을 표시한 바 있다.
여기에 김석중 전경련 상무의 “인수위의 목표는 사회주의”라는 내용의 미국 <뉴욕타임스> 보도가 이어지자 전경련측에 진상 파악과 ‘합당한 조치’를 요구하는 등 정면대응에 나섰다.
정순균 인수위 대변인은 “김 상무가 ‘사회주의란 표현을 한 적이 없다’며 <뉴욕타임스>가 발언 내용을 왜곡한 듯이 주장했지만 그의 발언이 실수가 아니라 다분히 의도적이라고 판단하고 있으며 김 상무는 전경련의 임원으로서 조직의 입장을 대표하는 목소리로 볼 수 있다는 것이 인수위 입장”이라며 “전경련에 이번 사태에 대한 진상규명과 그에 따른 합당한 조치를 요구하며 이는 노 당선자의 입장이 반영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 당선자측은 노 당선자가 직접 새 정부의 재벌개혁이 장기적, 점진적, 자율적으로 진행될 것임을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재벌의 이익을 대변하는 전경련측이 계속 문제삼고 나선 데 대해 매우 격앙된 상태.
한 측근은 “노 당선자는 서청원 한나라당 대표가 ‘노무현 정권은 좌파정권’이라고 한 데 대해 ‘한심한 일이지만 그쪽에서 한두 번 그런 것도 아니니 너무 발끈말라’고 했지만 김 상무 발언에 대해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반드시 책임을 지게 해야 할 것’이라고 격노했다”며 분위기를 전했다.
정부 부처에 만연한 ‘개혁 기피’ 움직임에 대해서도 노 당선자측은 “수술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정리해가고 있다. 특히 일부 부처의 경우 “노무현 정부가 현 정부의 연장선상에 있는 만큼 급격한 변화는 없을 것”이란 전제하에 노 당선자의 핵심 공약에 대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인수위측에 공공연히 밝혀 관계자들을 격분하게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노 당선자측은 정부 부처의 이 같은 ‘현실 안주’에 대해 노 당선자가 직접 강력경고하는 한편 총리 인선 등 내각 구성과 각 부처 고위직에 대한 ‘개혁인사’를 적극 검토중이다.
노 당선자는 지난 11일 “정부에서 온 보고서를 보면 공약에 나온 정책에 대해 마치 의견으로서 결론을 먼저 제시하는데 이런 것은 적절치 않다”며 “의견을 냉정하게 객관적으로 내줘야지 우리 부처는 찬성, 반대한다는 것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며 최종적인 결정은 나와 나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사람들이 결정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노 당선자는 또 개혁을 두려워 하는 정부내 분위기가 의외로 심각하다는 판단에 따라 당초의 ‘개혁 대통령-안정 내각’ 구상을 바꿔 ‘개혁 총리’를 앞세워 정부 내에도 개혁 기풍을 진작시키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이와 관련, 노 당선자는 12일 총리 인선에 대해 “국민여론이 압도적으로 개혁적이고 청렴한 인물을 원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여러 사람을 찾고 있다”며 고건 전 서울시장 ‘내정설’을 부인하는 듯한 입장을 밝혀 눈길을 끌고 있다.
인수위 주변에서는 당선 직후 한동안 민주당 개혁을 최우선 과제로 설정하고 나머지 분야 개혁은 시간을 갖고 차근차근 진행할 계획이었던 노 당선자의 입장이 최근 들어 변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는 데 주목하고 있다.
이 때문에 노 당선자가 정계, 재계, 언론계 내 보수 기득권 세력의 저항과 정부내 반(反) 개혁적 분위기가 노골화되고 있는 것을 계기로 ‘전방위-동시 개혁’쪽으로 전략을 수정해 새 정부 출범 이전부터 ‘개혁 대 반(反) 개혁’ 전선하에서 양측간 일전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박영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