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패류 중에서도 상어 참치 옥돔 등 육식성 어류의 수은 함량이 높아 주의해야 한다. 사진은 드라마의 한 장면. | ||
우리나라 사람들의 혈중 수은 농도는 미국·독일 사람보다 평균 4~6배나 높다. 환경부와 국립환경과학원이 지난달에 발표한 ‘유해물질 실태조사’ 결과에 따른 것이다. 2007년 8월부터 2008년 4월까지 8개월에 걸쳐 18세 이상 성인 남녀 2342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국민 전체의 혈중 수은 농도가 L당 평균 3.8㎍(마이크로그램, 100만분의 1g)이었다. 이 같은 농도는 0.58㎍인 독일보다 6.6배나 높은 수준이다. 미국보다는 4배 높았다. 미국은 16~49세 여성 평균치(0.82㎍) 자료만 있어 한국 여성 평균치(3.27㎍)와 비교했다.
사람의 중추신경계에 영향을 미치는 수은의 미국 환경보호청(EPA) 권고기준은 5㎍이고, 독일 인체모니터링위원회(HMB)는 15㎍으로 정해 놓았다.
이번에 밝혀진 우리나라 사람들의 평균 혈중 수은 농도는 두 나라 권고기준보다는 낮은 편이다. 하지만 몸속에 지속적으로 쌓일 경우 중독증으로 이어져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 조사에서는 특히 해안 인접 지역 주민들의 체내 수은 농도(3.95㎍/L)가 일반 지역(3.04㎍/L)보다 높았다. 더욱이 조사대상의 4.9%는 독일 기준치를 넘는 양의 과다한 수은이 검출되기도 했다.
이처럼 혈중 수은 농도가 높은 것은 수은에 오염된 어패류 등 식품이 주된 원인이다. 참고로 우리보다 어패류 섭취량이 많은 일본은 일부 조사에서 혈중 수은이 18.2㎍까지도 검출됐다. 때문에 환경부는 현재 4대강을 중심으로 어패류의 수은실태조사를 진행 중이다.
이번 검사에서는 소변 중의 수은 농도도 함께 검사했는데, 0.47μg/g_crea(소변 지표물질인 크레아티닌으로 농도를 보정한 값)으로 나타나 외국에 비해 약간 낮거나 비슷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소변 중의 수은 농도는 생활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수은에 노출되는 것이 원인이다. 예를 들어 수은이 들어간 형광등을 버리면서 깨뜨리면 기체 상태로 들어 있는 수은을 들이마실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 몸속에 수은이 조금씩 쌓이면 어떻게 문제가 될까. 우선 수은이 피부와 접촉하면 피부염이 생기고 호흡기, 소화기 등을 통해 인체에 침투하면 80% 정도는 간, 신장 등에 고스란히 쌓여 뇌의 기능을 마비시킨다. 이로 인해 위장이나 신장이 나빠지고 행동, 성격이 변하거나 시력·청력 장애 등이 나타날 수 있다. 특히 태아, 유아에게 더 치명적인 문제를 일으킨다. 전문가들은 저농도의 수은에 노출된다 하더라도 무력감이나 피로, 소화불량, 식욕부진, 체중감소 등이 나타난다고 주의했다.
그렇다고 질 좋은 단백질과 지방의 보고인 동시에 심혈관 질환 예방, 성장 촉진 등에 좋은 어패류를 무조건 피할 필요는 없다. 거의 모든 어패류에는 미량의 수은이 들어 있지만, 대부분은 어패류를 통해 섭취하는 정도로는 건강상 위험을 일으키지 않는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영양의 균형을 고려한 선에서 적당히 어패류를 먹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다만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환경보호청(EPA)에서는 임신 가능성이 있거나 임신 또는 수유 중인 여성, 영유아의 경우 일부 종류의 어류를 피하고 수은 함량이 적은 어패류를 섭취하도록 권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서울대 보건대학원 백도명 교수팀이 지난해 “엄마와 아이의 몸속 수은 농도가 비례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임신 중에 엄마의 수은이 아이에게 전달되고, 아이가 태어난 뒤에도 비슷한 식사를 하기 때문이다.
백 교수는 “다랑어 등 큰 생선보다는 불포화지방산이 충분히 들어 있으면서도 수은 함량이 낮은 고등어, 꽁치 등 작은 생선을 먹는 것이 좋다”고 밝혔다.
수은의 함량이 높은 어류는 상어, 황새치, 참치, 왕고등어, 옥돔 등 육식성 어류. 우리나라에서는 이와 관련해 아직 정확한 가이드라인이 없지만, 일본에서는 수은의 1일 섭취허용량을 50kg인 사람의 경우 24μg을 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
몸속에 수은이 덜 쌓이도록 예방하는 비결은 없을까. 다음의 방법들을 실천해보자.
첫째, 금연한다. ‘유해물질 실태조사’에서는 수은뿐만 아니라 납, 카드뮴 등의 중금속 농도도 함께 조사했는데, 이들 중금속은 모두 생활환경에 관계없이 흡연자가 비흡연자보다 비해 높았다.
‘수은세상’이라는 웹사이트를 통해 수은에 관한 정보를 주고 있는 이태규 교수(연세대 화공생명공학과)는 “담배 한 개비를 피울 때마다 수은이 6.57~15.83ng이나 발생된다”며 흡연의 해악에 대해 소개했다.
둘째, 성분과 효능이 부정확한 건강식품을 삼간다. 검증이 안 된 건강식품이나 영양제 등도 삼가는 것이 좋다. 수은이나 카드뮴 등의 중금속에 오염된 식품을 재료로 만든 것이라면 건강을 지키기 위해 먹는 건강식품이 오히려 건강에 해가 된다.
셋째, 환기는 정오~3시 사이에 한다. 도심지역에서 대기 중 수은 오염을 피해 환기를 시키려면 정오부터 오후 3시 사이가 가장 좋다. 국립환경과학원이 서울 5개 지점에서 수은 농도를 시간대별로 측정한 결과, 정오부터 오후 3시 사이의 농도가 가장 낮고, 밤 9시부터 높아지기 시작해 자정 때 가장 높았다. 낮시간대에는 활발한 대기혼합으로 공기 중의 수은 농도가 희석되기 때문이다.
넷째, 마늘·양파를 자주 섭취한다. 식품 중에서는 양파, 양배추, 달걀, 마늘처럼 유황 성분이 많은 식품이 체내의 수은 배출을 돕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마늘의 효과가 뛰어나 마늘 속 유황성분은 몸속에 있는 수은과 결합해 몸 밖으로 끌고 나간다.
신선한 채소, 과일에 많은 비타민 C가 체내에 축적된 수은을 배출시키는 데에 효과가 있다는 임상 결과도 있다. 고신대 가정의학과 최종순 교수팀은 “수은이 정상범위인 1.5ppm을 초과한 57명을 대상으로 하루 2g씩 두 차례 비타민 C를 3개월 복용하도록 했더니, 비타민 C를 복용하지 않은 그룹과 비교해 약 3.6배에 해당하는 0.383ppm의 수은이 감소했다”고 밝혔다.
다섯째, 수은 제품은 조심조심 다룬다. 특히 어린아이가 있는 가정에서는 수은 온도계, 형광등, 건전지 등을 만지기 쉬운 곳에 두지 말아야 한다. 예를 들어 형광등 안에는 수은이 기체 형태로 들어 있기 때문에 깨뜨리면 수은을 들이마시게 된다. 깨지지 않도록 주의해서 지정된 형광등 수거함에 버려야 한다.
만약 직업상 수은에 많이 노출되는 경우에는 미리 중독되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 한다. 수은중독이라는 진단을 받아도 통증조절 등의 대증요법만 가능할 뿐 몸 안에서 수은을 빼내는 근본적인 치료법이 없기 때문에 더 이상 쌓이지 않도록 한다. 중독이 의심될 때는 종합병원의 산업의학과나 가정의학과를 찾아 혈액이나 소변, 모발검사 등을 받도록 한다.
송은숙
건강전문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