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식 때 즐겨먹는 삼겹살 등 탄 음식은 위점막을 지속적으로 손상시킨다. | ||
건강보험공단이 내놓은 2007 지역별 의료이용 통계 자료를 보면 위암환자 증가율도 전년 대비 10%로 대장암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그런데 최근 위암의 전전단계인 ‘장상피화생’ 환자가 늘고 있다는 보고가 나와 주목을 끈다. 이는 위암이 발병할 가능성이 있는 잠재적 환자들이 그만큼 많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강남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 김지현 교수팀은 3년간 내시경 검사를 받은 이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장상피화생’ 환자가 2006년 146명에서 2008년 441명으로 3배 이상 급증했다고 밝혔다.
젊은 층의 증가 추세도 두드러졌다. 보통 장상피화생은 50대 이상, 중년층 이후에 많은데, 이번 조사에서도 50대 이후 환자가 많았다. 하지만 50대 이상 환자는 2006년 86.3%에서 2008년 77.3%로 줄어든 것과 달리 30~40대 환자는 2006년 13.7%에서 2008년 22.7%로 증가했다.
이에 대해 김지현 교수는 “장상피화생 환자의 증가는 젊은 층의 위암 발병 위험이 점차 증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며 “위암이 매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지만 식생활 개선 등 예방 노력이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젊은 층의 위암 발병률이 급증하는 추세다. 한 대학병원의 자료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08년 사이 20~30대 위암환자가 50% 이상 증가했다.
위암은 위염이 만성화돼 위 점막이 얇아지고 주름이 생기는 ‘위축성 위염’, 위축된 위 점막에 장 점막의 상피세포가 생기는 ‘장상피화생’, 위 점막의 표층 부분에 암과 비슷한 세포가 생기는 ‘이형성증’의 단계를 거쳐 발병한다.
▲ 장상피화생(왼쪽)에서 진행성 위암(오른쪽)으로 진행된 환자의 내시경 사진. | ||
이 과정에 가장 많이 관여하는 것이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균이다. 하지만 헬리코박터 균에 감염되지 않은 사람에게도 유발될 수 있고 나이가 많으면 요주의 대상이다. 또한 짜거나 매운 음식, 음주, 흡연, 폭식, 다이어트 등 원인이 다양하다.
문제는 장상피화생이더라도 별다른 증상이 없어 모르고 지내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소화액을 분비하는 위 점막이 장 점막으로 변하면서 소화액 분비가 줄어들고 소화불량 증상이 나타날 수도 있지만 심하지는 않다. 위산과다로 인해 위장장애가 있는 환자는 위산 분비가 줄어들면서 오히려 증상이 호전되기도 한다.
때문에 대부분의 환자들은 내시경 검사를 받은 후에야 ‘장상피화생’이라는 진단을 받게 된다. 내시경 검사를 해보면 위 점막의 소화액 분비선이 없어지고 작은 돌기가 생기며 붉은 색의 점막이 회백색으로 변해 있다.
그렇다면 장상피화생 환자는 모두 위암이 되는 것일까. 다행히 그렇지는 않으므로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위암 발생 위험도가 약 10~20배 정도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으므로 ‘장상피화생’이라는 진단을 받은 경우에는 정기적인 검사를 통해 변화를 체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심한 장상피화생이라면 1년에 1회 정도 내시경 검사를 받는 것이 좋다.
“위축성 위염으로 고생하다 이미 장상피화생으로 진행된 경우, 절반 이상의 환자들이 원래의 세포로 복원되지 않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때문에 예방 노력이 중요하고, 위암의 경고 신호로 받아들여 위장건강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것이 김 교수의 조언이다.
장상피화생이나 위축성 위염이 있을 때는 우선 식습관부터 바꿔야 한다. 젓갈이나 장아찌 등은 적게 먹고 김치도 싱겁게 담근 것이 좋다. 생선 역시 소금으로 짭짤하게 간한 것보다는 지나치게 짜지 않은 것을 고른다. 짠 음식은 위 점막을 지속적으로 손상시켜 염증을 만든다. 맵고 자극적인 음식, 탄 음식, 훈제음식도 가급적 피해야 한다.
담배는 지금부터라도 끊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남녀 식생활이 큰 차이가 없음에도 위암 발생률이 남자가 2배 가까이 높은 것은 남성의 흡연율이 여성보다 높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담배에는 무려 69종의 발암물질이 들어 있다. 술은 절제하기 힘들 때는 금주한다.
매끼 식사를 통해 위암 발생을 억제하는 신선한 채소와 과일은 충분히 먹도록 한다.
또한 식사를 규칙적으로 하고 위에 부담이 되지 않도록 소식을 하는 것이 좋다. 식후에는 위에 음식물이 오래 머물지 않도록 가벼운 운동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 식사 후에 바로 눕거나 자는 버릇도 빨리 고친다.
위암의 진행과정에 관여하는 헬리코박터균에 감염되어 있는 경우에는 항생제로 치료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장상피화생 환자가 모두 제균치료를 하는 것은 아니고, 제균치료를 받는다고 해서 장상피화생이나 위축성 위염이 반드시 호전되는 것도 아니다. 헬리코박터균에 감염돼 있지는 않지만 자극적인 음식, 폭식, 음주, 흡연 등에 의해 위축성 위염이나 장상피화생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크고 작은 스트레스를 잘 다스리는 지혜도 필요하다. 스트레스를 적게 받고 쉽게 풀어버리는 태도가 위암 예방에 좋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원광대 김종인 교수가 위암 환자와 100세 이상 초고령자의 생활요인을 비교한 결과, 위암 환자의 경우 스트레스를 자주 받는 비율이 69%로 장수자(8.5%)의 8.2배에 달했다. 또한 장수 노인들은 스트레스를 뛰어넘거나 빨리 잊으려고 애쓴 반면 위암 환자는 자신의 스트레스를 남의 탓으로 돌리고 화가 나 짜증을 내는 경향이 높았다고 한다.
송은숙 건강전문 프리랜서
도움말=강남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 김지현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