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지난 9월 30일 국회 대표실에서 누운 자세로 단식농성을 이어가던 모습.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9월 23일 국회 본회의에서 정세균 국회의장이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해임 건의안을 상정해 의결한 직후 새누리당 지도부는 투쟁의 향방을 논의했다. 1인 릴레이 피켓시위, 장외투쟁, 총리공관 항의방문, 신문과 방송 광고, 현수막 설치, 언론 인터뷰 집중 등등 할 수 있는 모든 방안이 거론돼 조율하는 과정을 거쳤다. 실제 이날 논의된 다수의 투쟁방법은 현실화됐다.
문제는 이 대표였다. 본인 스스로가 단식투쟁 가능성을 열었던 것이다. 이 대표를 뺀 대다수 지도부가 적극적으로 반대했다. 친박과 비박의 구분도 없었다. 당 지도부 만류의 논리로 “집권여당 대표의 단식은 유례가 없다” “경제나 민생이 명분이 아니라 장관 해임건의안 의결로 단식에 나서는 것은 명분으로서 약하다” “해임건의안은 당 대 당 문제가 아니라 원내의 문제로 단식투쟁에 나서려면 원내대표가 해야 한다” “단식투쟁에 나설 몸 준비가 돼 있지 않다” 등이 제시됐다.
이 대표는 고집을 부렸다. 그는 일요일이었던 9월 25일부터 당 대표실 내에서 단식에 들어갔다. 열린 공간이 아니라 언론이 요청해야만 단식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이례적인 비공개 단식이었다. 그를 좋아하지 않는 쪽에선 단식 첫날부터 “쌀음료 몰래몰래 먹는 것 아니냐”는 비아냥거림이 나왔다. 친박계 핵심으로 통하는 지도부 중 한 명은 이런 말을 들려줬다.
“재야 인사들이 장기간 단식에 나서면서도 평온한 모습을 보일 수 있는 것은 단식돌입까지 몸을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대표의 결정은 즉흥적이어서 거의 대다수가 만류했다.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걱정도 있었지만, 빨리 타올랐다가 식어버리면 사람 꼴도 우리 당도 우습게 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컸다. 그런데 이 대표가 고집을 부리니 원…. 워낙 똥고집이다.”
당 대표의 단식투쟁 속에서 당이 간만에 결집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초반부는 성공적이었다. 국회 본회의장 앞 로텐더홀 1인 시위의 첫 주자로 김무성 전 대표가 나서며 비박계가 동조했다. 계파 구분 없이 초재선 의원들은 총리공관에서 ‘뻗치기’에 나섰다. 하지만 사달은 9월 28일, 이 대표의 단식 나흘째 나타났다. 이날 지도부는 전국의 열렬 당원들을 국회로 불러 ‘정세균 사퇴 관철 당원 규탄 결의대회’를 국회 본청 앞에서 진행하려 했다. 1500명가량이 모였다. 하지만 이 대표가 등장하면서 결집은 느슨해지며 뜨악한 표정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나는 단식을 계속할 테니, 여러분은 국정감사에 들어가 국회를 정상화하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이를 회상하며 비박계 한 중진 의원은 목소리를 높였다.
“국회의장 사퇴라는 목표를 걸어놓고 나선 투쟁 아닌가. 사퇴는 고사하고 사과 한 마디 안 했는데 당 대표가 느닷없이 무장해제하라고 하니 난리가 났다. 그래서 긴급 의총이 소집되고 투쟁을 계속하라고 한 것 아니냐. 집권당의 결단과 그 추진력이 고작 나흘이라면 내가 지지자라도 지지 철회할 것 같았다. 의원들이 모여서 그랬다. 이렇게 접으면 고비 고비마다 우리 당이 야당에 휘둘리고 번번이 질 것이라고 말이야. 지금도 삼삼오오 만나면 이 대표 성토장이 된다.”
두 번째 사달은 이 대표의 단식 철회와 국회 정상화 발표 날을 두고서 나타났다. 2일 낮 김재원 청와대 정무수석이 대표실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면서 당 일각에선 “설마 오늘 단식을 끝내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됐다. 불과 이틀 전인 30일에도 김 수석은 박근혜 대통령의 ‘단식 중단’ 메시지를 전달한 뒤 돌아갔다. 당 관계자는 “지도부는 이 대표가 단식을 중단하더라고 모양새 있게 가기를 원했고 그 뜻을 전달한 것으로 안다”며 “그런데 최악의 수를 뒀다”고 했다.
당 지도부 이야기를 종합하면 단식 중단과 국회 정상화까지의 시간표는 이랬다. ‘정세균 국회의장이 호주에서 열릴 믹타(MIKTA) 국회의장회의에 참석하려면 적어도 3일에는 출국해야 하니 이 대표는 그때까지는 단식을 계속한다→당은 국회 정상화를 내팽겨치고 출국한 정 의장을 성토하며 ‘상종 못 할 사람’으로 프레임해 막판 총공세에 나선다→이 대표는 국회 정상화의 물꼬를 틀 당사자가 사라졌기 때문에 스스로 단식의 족쇄를 푼다→하지만 병원으로 가서도 하루 정도는 단식의지를 보여주며 결기를 호소한다.’
당 고위 관계자는 “이 대표가 단식을 하루 이틀 더 버티고 우리는 국감에 복귀하면 대표는 할 수 없다는 듯 정상화를 결정하는 것이 그나마 좋은 모양새였다”며 “조금 더 참을 수 있었다면 정 의장이 굽히고 들어왔을 것이란 한탄이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고 귀띔해주기도 했다.
일각에선 2일 김 수석의 등장은 이 대표의 요구에 의한 것이란 해석도 적잖게 내놓는다. 청와대 쪽에선 “30일 김 수석이 이 대표를 만나고 와서 청와대 내부에선 이 대표가 정신적 육체적으로 단식을 더 하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는 말이 확 퍼졌다. 당 지도부에서도 “이 대표로선 단식철회의 명분이 필요했고 그나마 친박을 지지하는 자기 편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김 수석이 다시 예방해 박 대통령 뜻을 재전달하는 모습을 보였던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 대표가 단식에 나선 직후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호남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박 대통령이 ‘장하다’ 한마디 하면 단식을 풀 것”이라고 예언했던 것이 그대로 현실화하면서 이 대표를 얕잡아 보는 시각이 더 커졌다는 말도 있다.
지난 2일 긴급 의원총회에선 이 대표 리더십을 성토하며 친박 비박의 갈등이 최고치에 오를 뻔했다. 친박계가 국회는 정상화해도 정 의장을 향한 투쟁은 계속하자는 ‘투트랙’ 전략을 제시하자 비박계가 당 지도부의 전략 부재 리더십을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의사진행발언 신청자가 우후죽순 손을 들던 찰나 친박계 좌장인 서청원 의원이 뒷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만하면 됐습니다. 그만합시다.”
8선의 당의 어른이 서둘러 끝을 내면서 이 대표를 향해 흐를 뻔했던 해임안 2라운드는 종결됐다. 특히 이 대표가 병원의 만류에도 영남권 수해현장으로 달려가자 “서번트 리더십이 아니라 자기 돋보이려는 리더십만 펼친다”는 비아냥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다. 친박계에선 “이 대표가 당내 지도부의 이야기보다 너무 저쪽(BH)의 말만 들으려해 내부에서도 성토가 대단하다”고 전했다.
이정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