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수회담 통해 ‘불통’ 이미지 변화 시도…홍준표와 연합, 여권 전체의 리더로 입지 다질 듯
#윤석열, 변화로 승부수
용산 사정에 밝은 여권 인사들은 윤석열 대통령이 4·10 총선 참패 충격에서 빠르게 회복, 다시 일어서기 위해 소매를 걷어붙이고 있다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박근혜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 댓글 수사 항명 파동으로 좌천을 겪은 바 있고, 문재인 정부 때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 수사를 두고 청와대와 정면충돌했다가 고초를 겪은 경험도 있다. 때문에 위기를 극복하는 데 있어서는 ‘오뚝이’라는 게 윤 대통령을 잘 아는 사람들의 한결같은 진단이다.
4월 23일 대통령실에서 열린 대통령 비서실장 이취임 행사에 참석했던 홍철호 신임 대통령실 정무수석도 이런 분위기를 직접 밝혔다. 홍 수석이 “대통령께서 (총선 참패 탓에) 의기소침해 있을 줄 알았는데, 대통령실에 와서 보니 당당한 모습에 놀랐다. 이런 것이 리더의 모습이라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고 다른 참석자들은 전했다.
대통령실 전·현직 근무자들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자신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국민들에 ‘불통’ 이미지가 심어졌다고 판단, 이 부분부터 완전히 뜯어고치겠다는 결심을 내비친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은 바로 이런 자세를 실천했다. 4월 22일 국민의힘 정진석 의원을 대통령실 비서실장에, 홍철호 전 의원을 정무수석에 임명을 발표하면서 윤 대통령은 여러 가지 파격을 선보였다. 기자들과 직접 만나 인선 배경을 설명하고 문답의 시간까지 가진 것. 윤 대통령이 출근길 도어스테핑을 중단한 지 1년 5개월 만이다.
윤 대통령은 “(여)당과의 관계뿐 아니라 야당과의 관계도 더 좀 설득하고 소통하는 데 주력을 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국정운영이나 소통방식에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를 생각 중이냐’는 질문에 “대외적인 것보다 우리 용산 참모들에게 앞으로 이제 메시지라든지 이런 것을 할 때 평균적인 국민들이 좀 이해하고 알기 쉽게 그렇게 해달라는 뜻”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지난 2년 동안 중요한 국정과제를 정책으로써 설계하고 집행하는 쪽에 업무 중심이 가 있었다”며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정책은 이제 세워져 있기 때문에 지금부터는 국민들에 좀 더 다가가서 더 설득하고 소통하겠다”고 덧붙였다.
특히 윤 대통령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만나자”고 제안했다. 자신의 얘기를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야당 대표의 말을 듣겠다는 낮은 자세도 내비쳤다. 윤 대통령은 앞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 대표와의 회담 의제에 대해 “내가 이재명 대표를 용산으로 초청했기 때문에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려고 초청했다기보다 이 대표 이야기를 좀 많이 들어보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은 야당은 물론, 한식구들을 향해서도 낮은 자세를 연이어 보이고 있다. 윤 대통령은 4월 24일 총선에서 낙선하거나 공천 받지 못한 국민의힘 의원들을 청와대 영빈관으로 초청해 오찬을 함께했다. 이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나의 부족함을 깊이 성찰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참석자들이 전했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의 변화를 확실히 체감시키는 일정을 구상 중이다. 윤 대통령은 소통력 측면에서는 여러 장점을 갖고 있다는 게 주변의 한결같은 평이다. 실제 윤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2022년 9월 9일 서울 중구 명동성당 내 무료급식소를 찾아 직접 앞치마를 두르고 재료를 손질해 김치찌개를 끓였다. 앞으로 이런 모습이 많이 늘어나고 낮은 자세가 지속되면 대통령 지지율이 올라갈 것이라는 게 여권의 예측이다.
대통령실 출신 한 정치권 관계자의 말이다. “심각한 북한의 핵위협에 대응하는 한·미·일 안보 협력체제 구축 과정에서 대일 관계 개선 등 임기 초반 좌고우면하기 어려운 과제가 많았다. 그러다보니 대중적 인기 확보 전략에 얽매이기 힘들었다. 친화력이 좋은 성격이고 위기를 극복하는 뚝심이 있어 윤 대통령이 이제부터 무섭게 달라질 것이다.”
#정치구조 읽어냈나
변신 중인 윤 대통령은 여권 전체 리더로서의 입지도 다잡을 것으로 보인다. 아직 임기 2년도 지나지 않은 현직 대통령인 만큼 권력을 빠르게 회복해나갈 것이라는 관측이다.
국민의힘이 조만간 비대위를 출범시키고 전당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윤 대통령이 차기 당권·대권 주자들과의 관계 형성을 통해 여권 전체에 대한 통합적 힘을 축적해나갈 전망이다. 한국 정치사를 봤을 때 차기 대선주자들은 ‘대통령의 힘’이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
이명박 대통령 임기 말 당권을 쥔 뒤 대권에 도전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사정이 달랐지만, 거의 모든 정부에서 대통령과 각을 세웠던 인물들은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다. 대통령 권력이 당선으로 직결시킬 정도의 힘에는 못 미치지만, 낙선으로 이끄는 영향력은 갖고 있기 때문이다.
현직 대통령과 척을 졌다가 대망론을 접었던 대표적 인물이 고건 전 총리다. 노무현 정부 첫 국무총리로 기용됐던 그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 기간인 2004년 3월 12일부터 5월 14일까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기도 했다. 그는 2004년 5월 국무총리에서 물러난 뒤 차기 대선 출마를 꿈꿨고, 구체적 대선 플랜 실행에 착수하자 당시 여권 주자들 가운데 지지율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대선을 코앞에 뒀던 2007년 1월 불출마를 선언했다. 정치권에서는 노무현 당시 대통령의 ‘비토 정치’를 결정적 이유로 든다. 고 전 총리가 참여정부에 대한 비판을 통한 ‘차별화 전략’으로 대선 가도를 달리자, 노 대통령은 고 전 총리에 크게 불리한 결정타를 날리면서 강하게 발목을 잡았다. 노 대통령이 2006년 12월 21일 고 전 총리를 참여정부의 첫 국무총리로 기용한 것을 두고 ‘실패한 인사’라고 직격한 것. 고 전 총리 측은 즉각 “고 전 총리에 대한 평가는 국민의 몫”이라며 반박했지만 이미 치명상을 입은 뒤였다.
이런 가운데 윤 대통령과 대선 후보 경쟁을 벌였던 홍준표 대구시장의 움직임이 주목받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의 관계가 틀어진 것으로 보이는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난타하면서 윤 대통령 쪽에 바짝 다가서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는 것.
홍 시장은 4월 18일 자신의 SNS에 한 전 위원장을 겨냥 “윤석열 정권 황태자 행세로 윤 대통령 극렬 지지세력 중 일부가 지지한 윤 대통령의 그림자였지 독립변수가 아니었다”며 “황태자가 그것도 모르고 자기 주군에게 대들다가 폐세자가 되었을 뿐이고, 당내외 독자 세력은 전혀 없다”고 쏘아붙였다.
이어 4월 22일에는 “나는 친윤이 아니어도 나라의 안정을 위해서 대통령을 흔드는 건 반대한다”며 “대선이 아직 3년이나 남았고 지금은 윤석열 정부에 협조하고 바른 조언을 해야 나라가 안정적이 된다”고 윤 대통령을 또 다시 옹호했다. 실제 윤 대통령과 홍 시장은 지난 16일 4시간에 걸친 만찬 회동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향배는 어디로
국민의힘 내부에서 총선 참패 책임을 용산 대통령실로 돌리면서 “용산이 나서면 안 된다”는 여론도 제법 강하다. 하지만 “그러면 대안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뚜렷한 대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한동훈 전 위원장을 다시 내세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인사들도 적잖지만, 최근 복수의 여론조사에서 총선 패배 이후 한 전 위원장의 지지율은 급락했다.
임기가 3년이나 남은 현직 대통령이 결국 결자해지 방식을 통해 여권 전체의 지지율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여론이 다시 세지는 조짐이다. ‘친윤’으로 통하는 이철규 의원이 22대 국회 국민의힘 첫 원내대표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것도 이 연장선이다.
이 의원은 원내대표 출마여부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지만, 최근 자신이 영입했던 인재들을 중심으로 연달아 조찬 회동을 하는 등 보폭을 넓히고 있다. 이 의원은 모임 성격에 대해 “인재영입위원장으로서 소임을 마무리하는 것뿐”이라는 입장을 내놨지만, 주변에서는 차기 지도부 입성을 위한 움직임이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국민의힘 한 전직 의원은 “이번 총선 참패 책임론을 윤 대통령이 피해갈 수 없는데 대통령제라는 통치 구조를 감안한다면 결국 앞으로의 해결책도 용산의 역량이 좌우할 수밖에 없다”며 “이런 생각을 용산이 하고 있을 것이고 여당도 이 구조 하에서 낮은 자세로 국민에게 다가가며 원팀의 모습을 보이는 게 현 상황에서 최선의 위기 극복책”이라고 평가했다.
최경철 매일신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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