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월 8일 부산에서 열린 한나라당 대선 예비후보 2차 정책토론회를 마친 이명박 후보가 지지자들에게 둘러싸여 인사말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 ||
문제는 두 주자 간의 사생결단식 싸움이 결국에는 경선 후 대선 정국의 화약고가 될 정계개편으로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서서히 거론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한나라당에 몰아치고 있는 경선 후폭풍에 따른 정계개편 시나리오를 추적해봤다.
최근 한나라당 지도부는 ‘김대업식 정치공작에 이번만은 속을 수 없다’며 범여권의 네거티브 공세에 강력하게 대응해 나갈 ‘공작정치 저지 범국민투쟁위원회’를 출범시킬 예정이었다. 하지만 출범 대회 성격을 둘러싸고 박근혜 전 대표 측에서 “우리보고 여당과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는데 무엇을 규탄하라는 말이냐”며 행사불참을 주장하는 강경론이 우세해지면서 문제가 꼬였다. 이를 본 이 전 시장 측에서 “규탄대회 불참 자체가 여권과 공조를 드러내는 것”이라며 맞불을 놓자 당 지도부도 당황해하고 있다. 한나라당의 한 초선 의원은 이에 대해 “강재섭 대표 체제가 그렇지 않아도 강력한 카리스마가 없는 상황에서 ‘기계적 중립’에 얽매여 양 캠프를 적절하게 컨트롤 할 힘이 없기 때문에 앞으로 이런 현상은 계속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무기력한 상황을 지켜보는 한나라당 관계자들은 우려와 한숨소리를 쏟아내고 있다. 한 당직자는 이에 대해 “그동안 후보 검증 공방의 후유증 문제가 여러 번 제기돼 캠프 간 자제를 호소했지만 양쪽은 마주 달리는 기관차처럼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최근 당 분위기는 ‘이러다가는 경선이 제대로 치러질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팽배해 있다. 그리고 경선이 예정대로 끝나더라도 과연 패자가 그 결과를 흔쾌히 받아들이고 합심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비관적인 전망이 훨씬 많아졌다. 사실 지금의 양 캠프는 이름만 같지 완전히 다른 정치세력같다”라고 말했다.
사실 한나라당 일각에서는 최근 들어 특정 후보가 불참하는 ‘절름발이 경선 개최설’과 ‘경선 결과 불복설’이 끊임없이 당내에 떠돌고 있다. 뿐만 아니라 경선이 예정대로 치러지더라도 그 후유증이 결국에는 필연적으로 정계개편까지 부를 것이라고 전망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런 조짐은 이미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친박 의원인 곽성문 의원은 “만약 (경선에서) 박 전 대표가 (이 전 시장에게) 지면 (나는) 더 이상 국회의원 못한다. 어떻게 ‘장돌뱅이’ 밑에서 일을 하느냐”고 말한 것으로 〈오마이뉴스>가 보도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이 전 시장 측근인 정두언 의원은 곽 의원 등 박 전 대표 측의 특정 의원들을 겨냥해 “내년 총선에 출마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고 받아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대운하 보고서를 둘러싼 정두언 의원과 유승민 의원 간의 논쟁도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러한 감정 싸움의 골이 이미 한도를 넘은 것이 아니냐며 경선 후 정계개편의 가능성을 점치는 사람도 하나둘 나타나고 있다.
첫 번째 시나리오는 이 전 시장이 주도하는 정계개편이다. 정치전략 전문가 A 씨는 “이 전 시장은 지난해부터 8개월여 동안 지지율 1위를 유지해왔다. 그런데 최근 들어 후보검증 공방과 한반도 대운하 논란 등으로 박 전 대표와의 지지율 차이가 접어드는 추세다. 그동안 끄떡도 하지 않던 ‘이명박 대세론’에 이상 징후가 감지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급격한 패턴 변화가 없고 박 전 대표의 후보 검증문제도 아직 남아있기 때문에 지지율의 대변동 가능성은 높지 않다. 그럼에도 만약 지지율 1위를 유지했던 이명박 전 시장이 주도하는 정계개편이 일어난다면 그 폭발력이 매우 클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 전 시장이 주도하게 될 정계개편의 시나리오는 어떤 게 있을까. 정치권에서는 이 전 시장이 경선 전까지 계속 후보검증 문제로 시달리다가 지지율이 정체되거나 역전될 경우 심각한 네거티브 노이로제에 빠져 특단의 정치적 선택을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아직은 그 가능성이 희미한 시나리오에 불과하지만 먼저 경선 전 정계개편 가능성에 대해서 살펴보자. 이 전 시장은 평소 여의도식 공작정치를 개혁해야 한다고 외쳐왔다. 그런 만큼 그가 후보 검증의 네거티브 피해자로 전락할 경우 자신의 정치 생명을 걸고 경선 불참을 선언하는 경우다.
이렇게 될 경우 현행 선거법상 경선 후보로 등록한 사람은 대선에 출마할 수 없기 때문에 이 전 시장은 본선에 참가할 수 없다. 선거관리위원회는 그런 상황이 발생하는 것에 대해 “어디까지나 가정에 기초한 얘기이지만, 그런 사태가 벌어진다면 한나라당 당헌 당규에 의해 결정할 일이다. 어느 후보 일방이 불공정 경선을 주장해 시시비비가 가려지지 않는다면 법정 다툼으로까지 가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이 경우 경선 자체에 대한 합법성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 문제는 달라진다. 이 전 시장이 법정 다툼을 통해 한나라당 후보가 아닌 제3의 후보로서 본선에 참가하는 방법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가능성은 매우 낮다. 우선은 검증에도 불구하고 이 전 시장의 지지율이 급격히 떨어지거나 또 그 결과 경선에서 패하는 상황을 상정할 단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 올 초 이회창 전 총재를 방문한 이명박 후보. | ||
정치권에서는 오히려 경선 후의 정계개편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경선에서 이 전 시장이 승리하고도 그동안의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거나 박 전 대표 측이 이를 받아들이지 못할 경우 양측이 갈라서는 상황도 나올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이 전 시장이 패할 경우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현재 판세를 토대로 경선이 박빙의 승부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당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그동안 대세론을 유지하던 이 전 시장이 무너지면 그것은 곧 힘의 진공상태를 의미한다. 한나라당은 패닉 상황에 빠질 수 있다. 박 전 대표가 본선에서 이 전 시장보다 경쟁력이 없다고 판단, 또 다시 대선에서 질 것이라는 패배주의가 당을 휩쓰는 상황까지 올 수도 있다. 그런 상황이 오면 당은 급격하게 혼란에 빠질 수 있다. 이 전 시장을 밀었던 상당수 의원들도 동요하게 될 것이다. 박 전 대표를 대선 후보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세력들로부터 정계개편 가능성이 흘러나올 것이다”라고 밝혔다.
실제로 이 전 시장을 지지하는 한 재선의원은 “후보 검증을 두고 이렇게까지 시달리다가 낙마하게 될 경우 그 상황을 만든 박 전 대표를 어떻게 따를 수 있을 것 같은가. 사람의 탈을 쓰고 그렇게 할 의원은 많지 않을 것으로 본다. 나 또한 자신이 없다. 정치적 선택을 심각하게 고민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념적으로도 이 전 시장을 지지하는 의원들이 박 전 대표의 강한 보수성을 따르는 일이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이 전 시장이 주도하는 정계개편에 반응하며 이탈하는 의원들이 많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정치권에서는 아이디어 차원에서 경선 뒤 이 전 시장이 주도할 가능성이 있는 정계개편의 밑그림이 나돌고 있다. 대선 후보로는 나설 수 없지만 정계 개편은 일어날 수 있다는 그림이다. 앞서의 전략전문가 A 씨는 “이 전 시장이 후보검증으로 피해를 입었지만 경선 결과에 승복하고 백의종군한다면 아무런 문제는 없다. 하지만 지금도 경선의 불공정 이야기가 계속 나오고 있기 때문에 경선 뒤 후유증은 매우 클 것으로 본다. 이에 근거해 이 전 시장이 네거티브 공작을 불식시키고 새로운 정치개혁을 이룬다는 명분을 내세워 신당 창당을 선언할 가능성이 있다. 자신은 대선에 불출마 하지만 보수세력 중 제3의 후보를 내세워 계속해서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한나라당이 분당될 가능성이 있다. 이 전 시장을 따르는 의원들의 숫자에 따라 이 시나리오의 성공 여부가 판가름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 전 시장 측에서는 이에 대해 “패배는 생각해본 적 없다. 그런 상황이 온다면 모두 짐을 싸야 되지 않을까”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이 전 시장이 신당을 창당한다면 누구와 손을 잡게 될까. 여기에는 이회창 전 총재 또는 손학규 전 경기도 지사 등이 그 파트너로 거론될 수 있다. 올해 초부터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명박 전 시장은 후보검증 때문에 낙마하고 박근혜 전 대표는 본선 경쟁력이 없어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이회창 전 총재를 국민들이 다시 찾게 될 것이다’라는 이야기가 퍼진 적이 있다. 이런 관점에서 이 전 시장이 ‘믿을 만한’ 이 전 총재 지지를 선언하면서 신당 창당을 할 수 있다.
또 다른 가능성은 이 전 시장 세력이 손학규 전 지사와 중도세력 대통합을 기치로 뭉치는 것이지만 그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는 않는다. 그런데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최근 한나라당의 집권 가능성에 균열이 나타나는 모습이 보이자 동요하는 한나라당 일부 의원들이 손 전 지사 캠프에 간간이 모습을 드러낸다는 목격담이 흘러나오고 있다. 후보 검증 과정에서 한나라당에 염증을 느낀 이 전 시장 그룹이 손 전 지사 측과 연합군을 형성해 반 박근혜 세력을 형성할 가능성은 충분하다”라고 밝혔다.
이명박 발 정계개편 시나리오에 대해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현재의 정치 구도로는 다소 무리한 해석일 수 있다. 하지만 이 전 시장으로서는 대권의 8부 능선까지 올라왔다가 실패하게 된다면 얼마나 뼈저린 아픔을 느낄 것인가. 그리고 그것이 후보검증과 관련된 공작 때문이었다면 그 충격은 매우 클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러한 시나리오는 박 전 대표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박 전 대표가 경선 완주를 한다 해도 경선 승복을 선언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특히 최태민 목사 문제 등 검증으로 치명상을 입을 경우 배신감을 느낀 박 전 대표가 경선 승복만 선언한 뒤 대선 과정에서 비협조적으로 나올 수 있다. 박 전 대표 역시 새로운 정당을 만들 수도 있는 것. 하지만 이런 가능성에 대해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박 전 대표의 경우 강한 보수이념 기반에 고정 지지층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정계개편을 주도할 만한 다이내믹한 변수가 별로 없다”고 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정치권에서 자주 회자돼온 손 전 지사와의 보수-개혁 연합이라는 틀을 만들 수 있지만 한나라당 이탈 세력이 손 전 지사와 정치적 연합을 하는 데 대해 부정적 시각이 상존한다. 한나라당을 탈당한 손 전 지사와 다시 손을 잡는 것에 대한 정치적 명분이 없고 ‘배신자’에 대한 당원들의 거부감도 뿌리 깊기 때문이다.
정치권 일각에서 떠도는 이러한 한나라당 경선 후 정계개편 시나리오를 거론하는 것이 아직은 이를 수도 있다. 그러나 전혀 가능성이 없다고 장담하는 사람도 없다. 만약 이 전 시장 또는 박 전 대표 세력이 손 전 지사 세력과 통합하게 된다면 2007년 대선은 순수 한나라당 대선 후보와 한나라당 이탈세력을 포용한 중도세력의 손학규 전 지사 그리고 친노 세력의 후보가 경쟁하는 3자 대결의 시나리오가 새롭게 그려질 수도 있다. 아직 대선은 6개월이나 남았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