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파니 세이무어
첫 연인은 16세 때 모델 에이전시 대표였던 존 카사블랑카스였다. 그는 당시 모델인 저넷 크리스티안센과 부부였는데, 존과 16세 소녀의 러브 어페어 이후 그들은 갈라지게 된다. 21세가 된 1989년, 그녀는 기타리스트인 토미 앤드류스와 결혼한다. 1990년에 아들 딜런이 태어났지만, 그해 두 사람은 이혼한다. 다음 연인도 뮤지션이었다. 바로 ‘건스 앤 로지즈’의 리드 싱어인 엑슬 로즈와 연인이 된 것. 스테파니는 ‘Don‘t Cry’나 ‘November Rain’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하며 애정을 과시했으나 결국 그들도 오래가지 못한다.
스테파니 세이무어가 21세 연상인 피터 브랜트를 사귀기 시작한 건 이때부터다. 어릴 적부터 도널드 트럼프의 친구이며 예술 애호가이고 백만장자였던 브랜트는 당시 결혼한 상태였고 다섯 아이의 아버지였다. 하지만 딸뻘인 세이무어와 사랑에 빠진 후 20년 이상 살았던 조강지처를 버렸고, 1993년엔 세이무어와 브랜트 사이에 첫 아들인 피터 주니어가 태어난다. 그리고 1996년엔 둘째 아들 해리가, 2004년엔 딸인 릴리가 태어났다. 이후 2009년에 이혼 소송이 있었다가 다음 해 화해라는 해프닝이 있긴 했지만, 세이무어와 브랜트 부부는 큰 나이차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다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었다. 또한 세이무어는 세 아이의 엄마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 완벽한 몸매로 40대 중반의 나이에도 여전히 모델로 활동하고 있었다. 2000년엔 <폴락>에서 아티스트인 헬렌 프랑켄탈러 역을 맡아 배우에 도전하기도 했다.
문제가 된 스테파니와 아들 피터 주니어의 파파라치 컷.
하지만 2011년에 어느 파파라치가 찍은 사진 한 장은 그들 가족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세이무어는 세 아이와 함께 서인도 제도에 있는 프랑스령 섬나라인 생 바르텔레미로 휴가를 갔다. 해변에서 아이들과 재미있게 노는 장면이 사진에 찍혔는데, 그중 세이무어가 아들인 피터 주니어와 찍은 몇몇 사진은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두 사람은 키스를 하고 있었고, 엄마의 손은 아들의 허리에, 아들의 손은 엄마의 가슴 쪽에 있었다. 이외에도 두 사람의 스킨십이 담긴 몇 장의 사진이 더 있었고, 어떤 사진에선 수영복을 입은 피터의 하체 부분이 불룩하게 솟아 있어, 마치 발기라도 한 듯한 느낌을 주었다.
40대지만 웬만한 20대는 근접조차 할 수 없는 글래머러스한 모델 엄마와, 훈남 스타일의 18세 아들. 사람들은 그들이 연출해낸 끈적끈적한 분위기에 온갖 상상력을 동원했고, 스무 살 이상 연상 남편과 사는 세이무어에게 쌓은 욕구 불만이 혹시 근친적 로맨스를 통해 분출되는 건 아니냐는 억측마저 있었다.
해명이 이어졌다. 핵심은 “우리 집에선 일반적인 일”이라는 것. <오프라 윈프리 쇼>에 출연했을 때 세이무어는 “둘째 아들인 해리와 딸 릴리에게도 똑 같은 방식의 애정 표현을 한다”고 이야기했다. 피터는 좀 더 많은 이야기를 했다. “모든 가정에서 하는 엄마와 아들 사이의 평범한 애정 행동일 뿐”이라고 서두를 연 그는 “전후 관계를 무시하고 보면 충분히 의심할 만한 사진이다. 하지만 나와 내 남동생 그리고 여동생 우리 모두 엄마와 아주 가깝고 친하다. 엄마는 우리 모두를 자주 안아 주고 뽀뽀를 한다. 이건 그냥 친근한 의미의 행동이다. 나는 엄마의 행동에서 그 어떤 감정도 느끼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피터 주니어는 자신이 게이임을 밝힌다. 그러면서 페이스북을 통해 그때의 경험을 다시 한 번 떠올렸다. “해변에서의 키스에 대한 스캔들은 나의 가족에 대한 악독한 공격이었을 뿐만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큰 상처를 주는 일이었다. 나는 어릴 적부터 엄마와 매우 친밀한 관계였다. 엄마는 수시로 나를 껴안고 키스를 해주었고, 나는 엄마와 동생들과 항상 그런 방식으로 친밀함을 표현했다. 아마 세상의 모든 엄마들이 그렇지 않을까? 엄마와 나는 항상 친구와 같았고, 난 엄마에게 그 어떤 비밀도 없었다. 아마 우리의 관계가 조금 다르다면… 그건 나의 게이 섹슈얼리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후 피터 주니어는 엄마의 뒤를 이어 모델로 활동했지만 마약과 알코올 문제로 고통을 겪었다. 이것은 엄마였던 스테파니 세이무어도 겪었던 것. 한때 그녀는 이 문제로 남편에게 이혼 소송을 당했다가 화해한 적도 있었는데, 이후 꾸준한 치료와 가족의 힘으로 극복했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