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 후보가 19일 오전 경선 투표를 마친 후 자신의 승용차에 올라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 전 시장은 숱한 검증공세에 전략적으로 대처했다는 평이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길고 긴 경선 레이스에서 당 내외로부터 숱하게 검증공방에 시달려온 이 전 시장 입장에서 승리의 기쁨은 가늠하기 어려운 정도일 것이다. 결국 축배의 잔을 든 이 전 시장 측은 “예상대로의 승리였다”며 자축하는 분위기이지만 박근혜 전 대표의 추격전도 만만치 않았다. 경선 발표 얼마 전까지도 양 캠프는 서로 자신의 승리를 장담했을 정도다. 이 전 시장의 경선 승리 요인은 무엇일까. 검증 공방에 대처해온 그의 전략과 경선 승부수를 살펴봤다.
의혹에 적극적·전략적 대처
이명박 전 시장은 경선과정에서 수십 가지도 넘는 의혹 검증 공방에 시달려야 했다. 병역 문제, 땅 투기 의혹, 위장 전입, 출생의 비밀 등 대선주자로서 ‘겪어야 할’ 모든 사안에 대한 의혹이 불거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의혹덩어리 후보’라는 오명까지 들어야 했다. ‘자고나면 터지는’ 이 전 시장과 관련한 의혹 제기에 대해 박 전 대표 측은 “본선에서 필패할 후보”라며 공격했지만 이 전 시장은 전략적인 대처로 난관을 이겨냈다.
이 전 시장의 전략적인 대처법은 공격과 수비를 적절히 넘나드는 방법이었다. 바로 ‘신중한’ 공격과 ‘적극적’ 수비를 병행하는 것이었다. 지지율 1위 후보로서 내내 검증 공격을 받는 입장에 있었던 이 전 시장은 공격보다는 수비에 치중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기도 했지만 여권과 현 정권을 향해서는 날카롭게 맞받아치며 ‘탄압받는 주자’라는 이미지를 만들어 가기도 했다.
이 전 시장은 출생문제에 대한 의혹이 끊이지 않자 지난 7월 말 DNA 검사까지 자처해 이 문제를 해결했다. 이로서 ‘어머니가 일본인이고 둘째 형 이상득 의원과 배다른 형제라는 의혹’이 허위임을 밝혀낸 것. 당시 이명박 캠프 내에서도 ‘그렇게까지 해야 하느냐’며 이를 말리는 이들이 있었다고 한다.
캠프의 한 인사는 “후보 본인이 명쾌하게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는 의지가 강해 결국 말릴 수 없었다. 결국 의혹에 대해 분명하게 증명했고 의혹이 그야말로 단지 의혹이었다는 것이 다시 한 번 증명된 셈 아니냐”고 설명했다.
이 문제는 그대로 방관할 경우 이 전 시장이 본선 후보에 오르게 되더라도 또다시 제기될 수 있는 사안이었다. 이 전 시장은 DNA검사를 받는 적극적 대처로 오랜 의혹을 명쾌하게 해명한 셈이다. 동시에 검찰이 X레이사진 조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이 전 시장은 병역 비리 의혹에서도 벗어나게 됐다. 이후 이 전 시장은 이 사건의 조사 결과를 내세워 의혹 검증에 대해 강하게 맞섰다.
‘지지율 1위’ 포지티브 부각
반면 이 전 시장은 박근혜 전 대표에 대한 공격에는 다소 조심스런 모습을 보였다. 주로 ‘적극적’ 수비를 하면서 박 전 대표에 관한 의혹 제기에는 신중한 입장을 취했다. 특히 이른바 ‘최태민 보고서’에 대한 언급에는 좀 더 소극적이었다. 이 전 시장 측은 육영재단, 정수장학회, 영남대 문제 등에 관해 언급하면서도 경선에 임박하기까지 최태민 목사에 관해 구체적인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선 이명박 캠프 측이 수집한 ‘최태민 보고서’의 실체가 부족해서라고 분석하는 의견도 있지만 박 전 대표 측의 검증 공세를 네거티브 전략으로 몰아치며 이와 대비되는 포지티브 전략을 부각시키려는 작전이었다는 것이 캠프의 설명이다. 아무튼 이 전 시장 측은 “100% 확실한 자료가 아니라면 검증 요구를 하지 않을 것”이라며 “어느 정도의 자료가 있다고 하더라도 너무 치명적인 내용이라면 공개하지 않을 계획”이라는 입장을 내내 밝혀왔다. 의혹 제기를 하지 않는 행위 자체는 소극적이지만 박 전 대표에 관해 ‘치명적인 내용’이 있을 수도 있다는 암시를 풍기는 전략적인 발언이기도 했다. 이에 관해 한 정치 분석가는 “‘지지율 1위’ 후보로서 상대후보를 공격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역공을 받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자신에 대한 각종 의혹이 봇물처럼 터질 것에 주력해서 대비하는 방법을 택했을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이 전 시장은 평소 거침없고 편안한 언어구사로 크고 작은 화제를 만들어냈으며 구설수에 오르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조심’하는 박 전 대표와는 달리 이 전 시장의 ‘프리스타일’ 언행은 친화력을 높이는 데엔 효과적으로 작용한다. 대중연설회장에서도 박 전 대표에 비해 이 전 시장의 거침없는 화법이 분위기를 띄우는 데는 더 적절하다. 유머 한마디까지 대본에 적어서 연습하는 박 전 대표와 달리 이 전 시장은 현장상황에 따라 애드리브도 ‘날리는’ 편이다. 이 전 시장은 평소 농담 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한다.
그렇다보니 이 전 시장은 ‘말실수’도 자주 한다. 영화 <마파도2>에 출연한 중견배우들에 대해 “한물 살짝 좀 가신 분들”이라고 표현했다가 ‘사죄’를 해야 했고 ‘장애를 가진 태아 낙태 허용’ 발언으로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2004년 한 기독교 행사장에서는 “수도 서울을 하나님께 바친다”는 취지의 ‘서울시 봉헌’ 발언을 해서 한바탕 시끄러웠다.
장소와 시기에 적절하지 않는 언행으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으나 ‘현장을 통제하는’ 이 전 시장의 기업인형 카리스마는 강점으로 꼽히는 점이다. 이는 그가 CEO 생활을 오래하면서 몸에 밴 습관 때문이기도 하다. 이명박 캠프의 한 관계자는 “이 전 시장이 주로 직원들에게 ‘명령’하고 ‘지시’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TV토론보다 대중연설에 좀 더 강한 것 같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명박 캠프에서 TV 정책토론회 횟수를 줄이자고 주장했던 것도 이와 같은 이 전 시장의 특성 때문이었다. 하지만 대중연설회장에서의 호응도는 어느 대선주자보다 월등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세 대결에서 압도적 우위
이명박 캠프는 무엇보다 조직력에서 박근혜 전 대표를 앞섰다. 캠프 구성원들의 수나 사무실의 규모 등 인적, 물적 자원 등에서는 ‘압도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규모의 조직력을 내세운 이 전 시장 측은 각종 연설회 및 행사장에서의 인원 동원에도 한 발 앞섰다.
뿐만 아니라 전국의 사조직 수는 다 파악하지도 못할 정도라고 한다. 이들이 자발적으로 결성해 활동하기 때문에 캠프 내에서도 일일이 알 수 없다는 것. 하지만 이러한 사조직들도 대선주자들에게는 적지 않은 힘이 될 수 있다. 한 예로 이명박 전 시장을 초청해 지지 유도 발언을 해 폐쇄 명령을 받은 ‘희망세상 21산악회’는 회원 수가 무려 6만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밖에도 이 전 시장을 지지하는 자발적 조직이 전국에 60~70여 개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경선 전 각 도시를 돌며 열린 합동연설회장에서도 이명박 캠프의 조직 동원력은 힘을 발휘한 바 있다. 박 전 대표 측 지지자들과 몸싸움까지 벌어가며 양측이 마찰을 빚기도 했을 정도. 제주 연설회에서 처음 빚어진 충돌을 통제하기 위해 당 경선관리위원회가 ‘출입비표’까지 마련하는 해프닝을 겪어야 했다.
‘경제대통령’ 브랜드화 성공
결국 이 전 시장이 수많은 검증 의혹을 이겨내고 한나라당 대선후보가 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원인은 경제 콘텐츠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 전 시장은 대선후보가 되기 이전부터 일찌감치 ‘경제 대통령’이라는 브랜드를 만들고 이를 적극 알려왔다. 특히 그가 가진 ‘청계천 신화’는 국민들에게 이명박이 ‘대표성’을 갖고 있는 분야가 경제임을 내세우는 데 효과적이었다. 여기에 ‘한반도 대운하’ 공약으로 ‘청계천 신화’를 이어가는 경제 콘텐츠를 만들어낸 것 또한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한반도 대운하에 대해 실효성 논란 등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결국 경제를 논할 수 있는 인물이 이명박임을 강력하게 알려준 공약 아니었나”라고 평하기도 했다.
이 전 시장 측은 ‘경제 대통령’의 이미지를 계속해서 활용할 계획이다. 특히 남북정상회담 개최 이후 한반도 평화무드가 형성되면 국민들의 관심이 대북문제보다는 경제문제로 옮겨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또한 대북관계에서도 ‘경제협력’이 주된 이슈로 다루어질 것이므로 이 전 시장이 이 분야에 더욱 강점을 보일 수 있다고 자평하고 있다. 캠프 관계자는 “한나라당 경선도 끝난 시점에 정상회담이 이루어지면 범여권이 정국의 주도권을 갖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지만 결국 이번 대선의 관심사는 경제문제가 될 것”이라며 “이명박 후보가 범여권의 그 어느 후보와 대결하게 되더라도 비교우위에 있다”고 장담했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