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 박근혜 2차 범국민행동’ 분노문화제에서 시민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임준선 기자.
문화예술계는 지난 4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시국선언에 나섰다. 이날 ‘우리는 모두 블랙리스트 예술가다’ 예술행동위원회는 시국선언문을 통해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과 관련, 박 대통령의 퇴진과 문화행정 파탄의 책임자 처벌을 촉구했다.
예술행동위는 “최순실 게이트의 많은 비리와 전횡이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벌어졌다는 사실과 ‘문화융성’ ‘창초문화융합’이란 국가 문화정책의 슬로건이 사실상 최순실·차은택의 사익을 위해 기획됐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고 규탄했다.
이날 시국선언에는 7449명의 문화예술인과 288개 문화예술단체가 동참했다. 이들은 문화체육관광부의 전횡이 최순실 게이트까지 이어진 현 사태를 비판하며 긴급행동에 들어갈 예정이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는 지난 10월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지적된 내용이다. 국정감사에서는 지난해 청와대가 정치 검열을 위한 리스트를 작성해 문화체육관광부로 내려보냈다는 주장과 관련 자료가 등장했다. 9437명의 문화예술인의 이름이 오른 블랙리스트는 세월호 시국선언 및 세월호 정부 시행령 폐기 촉구 선언에 동참했거나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 박원순 서울시장의 지지선언을 한 인사들로 이뤄져 있었다.
이에 청와대는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사실이 아니라고 설명했다”며 블랙리스트의 실체에 대해 부인했으나, 이유 없이 정부 지원 대상에서 제외됐다는 문화예술인들의 증언이 줄을 이었다.
역사학계는 한국사 국정교과서에 최 씨가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을 제기하며 ‘최순실 교과서’ 의혹과 관련해 시국선언을 했다. 국정교과서를 주도했던 김상률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이 최 씨의 최측근이자 ‘문화계 비선 실세’로 알려진 차은택 씨의 외삼촌이라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역사학계 47개 단체 및 학회는 지난 1일 시국선언을 통해 “일방적 정책들이 정상적인 국정운영의 결과가 아니었음이 드러났다. 역사교육도 예외가 아니다. 박근혜 정권은 국정화 고시를 철회하라”고 주장했다.
한국사 국정교과서는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부인하는 ‘건국절’과 ‘근현대사 서술 분량 축소’ 등 논란 요소가 산재해 있어 추진과정에서부터 시민사회 및 역사학계의 반대에 부딪힌 바 있다. 그러나 교육부는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일정을 강행해, 오는 28일 현장 검토본이 공개될 예정이다.
지난해 12월 30일 한국과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 협상을 타결한 뒤 처음 열린 수요집회에서 위안부 피해 할머니가 눈물을 훔치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과 위안부 관련 단체들도 시국선언에 동참했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과 시민단체들은 3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박정희 정권은 1965년 한일협정으로, 박근혜 정권은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로 대를 이어 역사를 팔아먹었다. 꼭두각시 정부에 정권을 맡길 수 없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그 범죄를 깨끗이 씻어주려는 화해치유재단의 존재 이유는 처음부터 없었고 더 이상은 두고 볼 수 없다”며 화해치유재단의 해산을 촉구했다.
환경계는 지난 2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앞에서 ‘강원도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과 관련해 시국선언을 가졌다. 한국환경회의는 “시민사회가 그토록 반대했던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에도 최순실이 깊이 관여했다는 주장이 흘러나오고 있다. 지금까지 최순실의 국정개입과 농단을 고려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평창올림픽과 더불어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도 거대이권을 챙기기 위해 관여했을 가능성이 높다. 추진 당시 대통령의 의지가 남달랐고 행정절차에 있어 여러 문제점이 확인된 만큼 철저히 수사해 밝혀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당 의혹은 지난달 31일 이정미 정의당 의원에 의해 제기됐으며, 이에 환경부는 “케이블카 사업은 평창동계올림픽 개최 결정 이전에 이미 결정된 것”이라고 해명한 바 있다. 그러나 최근 최씨 일가가 평창올림픽을 통해 이권을 챙기려 했다는 정황이 드러나면서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에 최 씨가 개입했을 것이라는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은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과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이 주도한 사업이다. 환경파괴 문제로 시민사회의 반발이 잇따랐으나 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