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에 처음 나타난 생명체의 세포는 어떤 원소로 이뤄졌을까. 선뜻 대답하기 어렵다면 먼저 시 한 수 감상해보자.‘태초의 세포 하나를 만들기 위해/ 푸른 행성 지구는/ 그렇게 진화했나보다// DNA의 두 개의 나선을 붙들기 위해/ 150억년 전 빅뱅 지구는/ 그렇게 수소를 만들었나보다// 긴장과 초조로 가슴 조이던/ 기나긴 우주 진화의 갈림길에서/ 이제는 돌아와 지구에 정착한 자연의 레고 원자들이여.’
서울대 화학부 김희준 교수(55)는 교양과목인 ‘일반화학’ 수업을 들으러 온 학생들에게 ‘세포 옆에서’라는 시를 들려준다. “이 시에서 태초란 언제일까요? 빅뱅 때요? 빅뱅 때 세포가 살 수 있었을까요. 여기서 태초는 대략 40억 년 전쯤 되겠지요. 46억 년 전 지구가 생겨서 처음 3억∼4억 년 전은 세포가 살 환경이 안 됐으니까요.”
▲ 김희준 교수 | ||
러시아 전통 목각 인형으로 화학의 발전 과정을 설명하는 수업의 한 대목. ‘러시안 돌’은 뚜껑을 열면 같은 모양의 작은 인형이 계속해서 나오도록 만들어진 러시아 전통 인형. “이게 원자예요. 2백 년 전쯤 발견한 거죠. 이 안에 뭐가 있을까요. 뚜껑을 열고 싶어한 과학자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1백 년 만에 열 수 있었는데… 아, 전자가 나오는군요.”
로댕의 조각품도 김 교수의 교탁 위에 오르면 DNA의 구조 원리가 담긴 교보재가 된다. 김 교수는 사람의 두 손이 기묘하게 뒤틀려 맞잡고 있는 로댕의 ‘성당’이라는 조각품을 보여주며 ‘여러분 두 손 모양을 조각품처럼 만들어 보라’고 주문했다. 학생들은 이리저리 손목을 돌려보지만 쉽지가 않은 모습.
“그럼 이번엔 옆 사람과 함께 만들어보세요. 어때요? 잘 되지요. DNA의 ‘두 개의 나선형 구조’란 상호보완적이라는 특성을 갖습니다. 이게 바로 생명의 원리입니다. 40억 년 동안 생명이 이어질 수 있었던 이유지요. 혼자 잘난 척하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얘기죠.”
김 교수의 ‘원리 학습’은 수업 틈틈이 돌발 퀴즈로 평가가 이뤄진다. 퀴즈를 다 맞춘 학생에게 내려지는 상품은 화학 교양 도서 한 권. 쑥스러운 듯 책을 받으러 나온 학생에게 김 교수는 “대신 조건이 하나 있는데…”라며 운을 뗀다. 그리고는 웃는 얼굴로 종이로 만든 왕관 하나를 학생 머리에 씌워준다.
강의실에는 웃음소리가 터져 나오고 김 교수는 왕관 둘레에 적힌 주기율표를 설명한다. “여기 앞에 있는 별이 헬륨이고 정반대 뒤통수에 있는 원소가 탄소인데….”
김 교수는 이 같은 강의로 서울대 자연과학대학 우수 교육자상을 받기도 했다. 또 우수강의 시리즈를 제작중인 서울대 교수학습개발센터는 시리즈 첫 번째 강의로 김 교수의 강의를 녹화해 CD로 제작했다. ‘김희준 교수 이렇게 가르친다’는 제목의 이 CD는 10월 중순부터 서울대 교수들에게 배포되고 있다.
김 교수는 서울대 화학과 출신으로 미국 시카고대학에서 물리화학 박사학위를 받은 학자. 미 육군 네이틱연구소 책임연구원을 지낸 뒤 5년째 서울대 강단에 서고 있다. 같은 학부 허은영 교수는 김 교수 강의에 대해 “화학 수업을 통해 사물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상상력을 제공하는 강의”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학습 동기를 유발하기 위해서는 학생들이 학문의 중요성과 재미를 함께 느껴야한다는 생각에서 다양한 강의를 구상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 교수의 이 같은 의도는 한 학기 수강을 마친 학생들에게 정확하게 전달된 것으로 보인다.
학생들은 “평소 딱딱하고 고리타분하게 느껴졌던 화학에 대해 관심을 갖게됐다” “지금까지 들었던 과목 중에서 가장 흥미유발이 잘된 수업이었다” “인간의 모든 생활에 화학이 함께 하고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됐다”는 반응들을 수강 후기 방명록에 쏟아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