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건설이 대우조선해양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임준선 기자
지난 14일 안진회계법인은 대우건설의 올 3분기 회계감사 결과 ‘의견거절’ 결론을 밝혔다. 대우건설이 진행 중인 공사 상황과 관련해 충분한 근거를 확인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쉽게 말해 회사가 작성한 장부가 엉터리일 수 있어 믿지 못하겠다는 뜻이다.
대우건설은 2013년 12월~2015년 9월 분식회계 논란에 휩싸인 경험이 있다. 금융당국은 2년여에 걸친 강도 높은 감리 결과 20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금융당국은 또 대우건설 회계감사를 담당했던 삼일회계법인의 책임을 물어 외부감사인을 안진회계법인으로 교체했다.
그런데 안진회계법인이 감사를 맡은 지 채 1년이 안 돼 다시 문제가 드러났다. 공교롭게도 안진회계법인은 분식회계 사태를 겪은 대우조선의 외부감사인이기도 했다. 대우조선의 현재 외부감사인은 삼일회계법인이다. 안진회계법인이 대우조선에서 ‘뼈저린’ 교훈을 얻었다고 볼 만하다.
공통점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대우조선과 마찬가지로 대우건설도 산업은행 지배 아래 있다. 대우건설 지분 50.75%는 ‘케이디비밸류제육호’이며, 실질적인 최대주주는 산업은행이다. 대우조선의 회계부정도 현재 최고경영자(CEO)인 정성립 사장이 취임한 직후인 2015년 7월에 터졌다. 대우건설도 최근 박창민 전 현대산업개발 사장이 신임 CEO로 취임했다. 양사 모두 신임 사장 선임 일정이 지연되면서 낙하산 논란 등 여러 구설을 겪었다.
회계 관련 문제가 드러난 시점에서 경영이 본격적으로 악화되기 시작한 점도 꼭 닮았다. 대우조선의 분식회계가 시작된 시점은 2013년. 2012년까지 흑자를 내던 대우조선은 2013년 6563억 원의 적자로 돌아섰지만, 이를 2400여억 원의 흑자로 조작했다. 2014년도 8600억 원이 넘는 적자가 330여억 원의 흑자로 둔갑했다.
그런데 이 같은 조작의 흔적은 실제 돈의 흐름을 기록한 현금흐름표에 이미 나타났다. 영업활동 현금흐름은 2012년 9961억 원 순유출에서 2013년 1조 2000여억 원 순유출로 더 악화됐다. 2014년에도 5600억 원 이상의 현금이 영업활동으로 유출됐다. 번 돈보다 쓴 돈이 더 많았다는 뜻이다. 적자를 흑자로 둔갑시켰지만 자본총계는 늘지 않고 부채만 늘어난 것도 또 다른 증거다.
대우건설에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대우건설은 올 3분기에만 976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면서 누적 605억 원을 기록 중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의 1200억 원 대비 절반으로 줄었지만 여전히 흑자 상태다. 하지만 영업활동현금흐름을 보면 지난해 3분기까지 3820억원의 순유입에서 올 3분기까지는 1389억 원의 순유출이다. 영업에서 돈을 벌지 못해 실질적으로는 적자라는 뜻이다.
흑자가 지속되는 데 자본은 줄어들고 부채가 늘어난 점도 대우조선을 떠올리게 한다. 대우건설이 올 들어 9개월간 빌린 단기차입금은 4조 8000여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조 5000억 원가량 많다. 돈이 세면서 급전을 계속 더 빌리고 있는 셈이다.
다만 유동자산이 유동부채보다 많아 당장 유동성 위기를 맞을 상황이라 보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최근 1년 새 유동자산은 700억 원가량 줄어들고, 유동부채는 6000억 원 가까이 늘어 순현금 유출이 계속될 경우 유동성 위기에 빠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심지어 트럼프가 차기 미국 대통령에 당선 후 시중금리가 가파르게 오르고 있어 빚이 늘어나는 데 따른 이자부담은 더 커질 가능성이 크다.
윤석모 삼성증권 연구원은 “감사의견 거절로 전반적인 회계처리의 신뢰도에 타격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며 “연간 사업보고서의 감사의견이 나올 때(내년 3월 말)까지는 주가 약세가 불가피해 보인다”고 내다봤다. 백광제 교보증권 연구원은 “투자자 보호를 위해 투자의견을 보류한다”고까지 했다.
이선일 대신증권 연구원은 “2년간 강도 높은 감리를 받았기 때문에 그만큼 재무제표가 투명해졌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며 합리적인 생각이라고 판단한다. 하지만 이번 사태로 회계 관련 이슈가 또 불거졌다는 사실 자체가 당분간 더 부각될 수 있는 상황이다. 회사의 적극적인 소명이나 연간 재무제표에 대한 감사의견이 나올 때까지는 불확실성이 쉽게 해소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대우건설에 대한 의견거절이 대우조선 사태 이후 강화된 회계감사 기준 탓이라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올 3분기 말 분기보고서에 대해 회계법인의 지적을 받은 곳은 대우건설이 유일하다.
안진회계법인이 감사를 한 현대건설과 대림산업, 삼성엔지니어링, 한영회계법인이 감사를 한 GS건설, 삼일회계법인이 맡은 현대산업개발은 모두 지적사항 없이 무난한 평가를 받았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