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으로 트럼프가 당선되면서 헌대기아차와 정몽구 회장이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고성준 기자
재계 관계자는 “중국 등 신흥시장의 (자동차) 수요가 줄어드는 가운데 트럼프 당선은 현대차 주가 흐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현대차가 공을 들이고 있는 수소차와 전기차 등 친환경자동차도 트럼프가 ‘화석연료 사용을 장려하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에 판로 확대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인 11월 9일과 10일 현대차 주가는 각각 3.25%, 3.73% 하락했다. 증권가 일각에선 ‘현대차가 미국 현지 생산 라인을 갖춘 까닭에 관세 인상 영향이 미미할 것’이란 분석도 나오지만 시장 반응은 미온적이다.
대외 여건이 어려운 상황에서 현대차는 그룹 총수와 임원이 각각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돼 검찰 조사를 받는 등 내우외환에 직면했다. 현대차는 미르재단에 85억 원, K스포츠재단에 43억 원 등 모두 128억 원을 출연했다. 이는 삼성그룹 다음으로 많은 액수다.
공교롭게도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두 재단 설립을 앞두고 다른 재벌 총수들과 함께 박근혜 대통령을 독대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대해 현대차 관계자는 “모든 것을 최순실 사건과 엮어선 안 된다”며 “대가성 없이 전경련의 요청을 받고 모금에 동참한 것뿐”이라고 해명했다. 재계 다른 관계자도 “앞으로 수사 전개를 지켜봐야겠지만 현대차는 (몇몇 대기업과 달리) 최순실과 직접적인 접촉은 없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지금으로선 ‘피해자’란 시각이 우세하지만 향후 수사 방향에 따라 ‘피의자’로 전환될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앞서 검찰은 미르·케이스포츠재단 후원 및 대통령 독대 등과 관련해 정 회장을 참고인 신분으로 비공개 소환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현대차그룹 상장사 11곳의 영업외비용은 지난해 4조 1910억 원으로 2014년 3조 2090억 원에 비해 무려 30.6%가 늘었다. 영업외비용은 대출 이자, 투자자산 손실 등 상거래 이외 영역에서 발생한 지출로 기부-후원금과 같은 준조세 성격의 비용을 포함한다. 대통령과 그룹 총수가 독대한 7개 대기업 가운데 현대차의 영업외비용 증가폭이 가장 컸다. 현대차 관계자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차원에서 불우이웃돕기 등 좋은 일에 후원하고 있다”고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그러나 현대차는 청와대뿐 아니라 종교단체, 관변단체, 이익단체 등으로부터 연이은 ‘후원’ 압박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불교 조계종은 한전부지환수위원회를 발족하고 현대차가 사들인 옛 한전부지의 소유권을 주장하며 실질적인 보상을 요구 중이다.
현대차가 사들인 옛 한전부지 전경. 우태윤 기자
봉은사 총무국장 법원스님은 “당시 현대차와 한전 간 계약서에는 매각재산(한전부지)의 종전소유자(봉은사)가 이의를 제기했을 시 매수자(현대차)가 아닌 매도자(한전)가 책임지도록 돼 있는데 이에 따르면 현대차가 관련 거래의 위법성을 알면서도 계약을 강행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현대차는 “정상적인 입찰을 통해 부동산을 매입했다”며 계약 내용 등에 대해선 말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개발 허가를 내준 서울시나 원 소유자인 한전에 따져야 할 일이지 자신들과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현대차는 보수단체인 고엽제전우회로부터도 사실상의 후원 압박을 받았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 8~9월 정 회장의 한남동 자택 앞에 찾아와 “신형차 팸플릿 인쇄에 관한 일감을 달라”며 시위를 벌였다. 대기업 관계자는 “현대차로부터 인쇄물과 관련한 일감을 받을 경우 계약 규모만 최소 수억 원에서 수십억 원에 이를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대차 측은 “시위 몇 번 했다고 특정업체와 수의계약을 맺을 수는 없다”고 밝혔다.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도 올가을 현대차에 후원을 권유하는 편지를 발송했다. 현대차가 실제 후원에 응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현대자 관계자는 “매일 수십 수백 건의 후원 요구가 들어오는데 일일이 확인해 줄 수는 없다”고 전했다. 앞의 재계 관계자는 “(각 기업에) 후원을 요구하는 곳이 많은데 신의상 밝힐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경기가 갈수록 어려워지는데 걱정”이라고 말했다.
사실 기부·후원 요청을 받는 기업은 비단 현대차에 국한하지 않는다. 재계 1위 삼성을 비롯해 SK, LG, 롯데 등 어지간한 대기업은 늘 정부와 단체 등으로부터 후원 요청을 받는다. 그럼에도 현대차가 영업외비용이 확 늘어날 정도로 많은 요구를 받는 까닭은 무엇일까. 한 대기업 임원은 “수많은 기술과 협력업체 등으로 연결되는 자동차의 특성상 이해관계가 걸리는 곳이 많을 수밖에 없다”며 그 이유를 설명했다. 앞의 재계 관계자는 “현대차와 기아차로 국내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시피하는 탓에 정부와 유관기관의 요구를 거절하기 힘든 구조”라고 전했다.
그렇더라도 기부와 후원이 많다는 것이 문제될 건 없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북미시장에서 어려움이 예상되면서,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현대차가 딜레마에 빠질 우려가 제기된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