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기금운용본부 해외대체투자 기금 운용 세부 현황. 투자 종목에 대한 정보가 거의 공개돼 있지 않다. 국민연금기금운용본부 홈페이지 캡처
그런데 국민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국민연금이 국내 주식 투자 과정에서 수천억 원 이상의 평가 손실을 봤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국민들의 불신이 겉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손해를 볼 것을 인지했음에도 불구하고 투자 손실이 예상되는 대기업의 합병을 무리하게 진행시키는 데 국민연금이 찬성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 지난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이야기다. 당시 합병에서 삼성물산의 지분 가치가 과도하게 저평가되면서, 삼성물산의 최대 주주(11.02%)인 국민연금이 본 손실은 6583억 원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이 맡겨놓은 자산의 가치를 훼손하면서까지 대기업에 유리한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다.
여기에 국민연금의 지원을 받아 삼성물산 합병이 이뤄진 후, 삼성 측이 최근 ‘국정농단 사태’의 장본인인 최순실 씨(60·최서원으로 개명) 회사인 비덱스포츠(당시 코레스포츠)로 35억 원을 보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를 통해 최 씨와 삼성의 유착관계는 물론 손실을 무릅쓰고 삼성물산 합병에 가장 큰 역할을 한 국민연금 역시 ‘최순실 게이트’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마저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더욱이 이런 의혹이 제기되면서 지난 3일까지 국민연금의 주식 평가 손실은 2조 1471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나 국민연금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의 목소리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국민연금의 기금 운용을 통한 투자 현황과 그에 따른 전체 손실에 대해서 명확히 알 수 없다는 점도 국민들의 불신에 불을 지핀다. 실제로 국민연금은 특히 해외대체투자(부동산)에 따른 손실이나 이익에 대해서 비공개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보도자료를 통해 대대적으로 언론에 보도하는 경우는 해외 부동산 매각 등을 통해 거액의 차익이 발생했을 때뿐이었다. 예컨대 국민연금이 직접 밝혔던 2014년 영국 HSBC 타워와 지난해 미국 헴슬리 빌딩 매각은 HSBC 타워가 9600억 원의 수익을, 2015년 5월에 매각된 헴슬리 빌딩이 12억 달러에 팔려 약 2000억 원의 수익을 국민연금에 안겼다.
그러나 거액의 손실이 발생했거나 예상 외로 수익이 저조한 투자에 대해서는 함구하는 모습을 보였다. 실례로 국민연금이 2010년부터 2011년까지 리노베이션 금액을 포함해 총 5500억 원을 투입해 매입했던 프랑스 파리의 ‘오파리노 몰’의 투자 대비 배당 금액은 형편 없는 수준이었다. 2014년 <뉴스타파>의 보도를 통해 밝혀진 국민연금의 투자 실패는 국민연금이 5500억 원 투자금액 대비 2% 수준인 100억 원(756만 유로) 상당의 배당금액을 받았다는 사실로 드러났다. 이는 애초 위탁 운용사였던 락스프링이 제시했던 수익률 9.8%는커녕 국민연금의 해외부동산 투자 기준인 명목수익률 6.7%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뉴스타파>는 지적했다.
보도 이후 국민연금도 마지못해 이례적으로 해외 부동산 투자 현황 비공개 원칙을 깨고 오파리노 쇼핑몰의 저조한 실적을 인정했지만 “리노베이션을 통해 건물가치를 올리면 매각 차익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2016년 현재까지 오파리노 매각 이후 수익에 대한 보도가 이뤄지지 않는 것을 보면 아직 매각 차익을 기대할 수 있을 정도의 실적이 발생하지 않았거나 손실이 발생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일요신문>이 국민연금공단 측에 요구한 ‘이명박 정부~박근혜 정부 국민연금기금 연도별 자산배분 현황 및 수익률 추이’ 자료에 따르면 연도별 기금운용 총수익률은 2009년과 2010년에는 모두 10.4%였지만 2011년 2.3%로 급락했다. 2012년 7%로 어느 정도 수익률이 회복됐지만 2013년 4.2%로 내려갔고 2014년 5.3%, 2015년 4.6%를 기록 중이다.
4.6%의 수익률을 올린 지난해의 경우 가장 낮은 수익률을 보였던 것은 국내주식(1.3%)과 해외채권(1.5%) 부문이었고, 가장 높은 수익을 보인 곳은 대체투자(12.2%) 부문이었다. 해외부동산 투자는 대체 투자에 포함된다.
국민연금의 해외부동산 대체투자 규모는 2011년 6조 3000억 원에서 지난해 15조 5000억 원으로 매년 확대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분기 말 현재는 35조 5000억 원에 달하는 국민연금의 해외 대체투자 자산 중 부동산 비중은 49.6%(17조 6000억 원)에 이른다.
그러나 연내 미국의 금리 인상을 통해 해외 부동산 시장 열기가 사그러들 경우 국민연금이 보유하고 있는 해외 부동산 자산의 부실이 가속화될 수도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지난달 하나금융투자에 따르면 미국 상업용 부동산 가격지수(CPPI)가 지난 6월말 기준으로 192.79를 기록해 금융위기 이전 수준을 상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동산 매입 열기의 정점에 있는 가운데 냉각기에 접어들고 나면 이미 보유하고 있는 해외 부동산의 자산가치가 하락할 수 있다는 지적이 따른다. 환율에 따라 수익 차가 커지는 해외 자산의 특성상 환율 변동에 의한 매각 손실 등이 우려되는 부분이다.
사정이 이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국민들은 국민연금의 기금운용 현황과 해외 투자 손실에 대해 자세한 정보를 알 수 없어 국민연금에 대한 더 큰 불신을 낳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이미 공개시장을 통해 거래되기 때문에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하는 국내외 주식 부문에 대해서도 국민들이 알지 못하는 새에 수천억 원에 달하는 가치 손실을 일으켰는데, 공개되지 않는 부문에 대한 손실이나 투자 실패에 대한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국민연금공단 관계자는 <일요신문>과의 통화를 통해 “투자 과정에서의 가치 손실은 실제로 손실이라고 볼 수 없다. 주식이나 부동산 시장에서 변동성에 의한 자산 가치의 상승과 하락은 늘 공존할 수 있고, 손실을 보고 매각이 완료된 것이 아니라 여전히 국민연금이 보유하고 있으므로 향후 가치 상승을 통한 높은 이익을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해명했다.
이어 일부 투자 현황 정보 비공개 방침에 대해서는 철회하거나 개선할 수 없음을 밝히며 “특히 해외 부동산 거래와 관련해서는 계약상 조항 문제가 있어 비공개를 원칙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외부 공개가 어려울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