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의 한 중진 의원이 이회창 전 총재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 이후 던진 말이다. 이 의원을 조마조마하게 만든 것은 바로 이 전 총재의 얼굴빛이었다. 이 의원은 “겨우 평정심을 찾고 기자회견을 자청한 이 전 총재였지만 기자들이 자꾸 같은 질문만 하는 통에 흥분을 참지 못하고 얼굴이 붉어져 감정 섞인 발언이 터져 나올까 긴장했다”고 밝혔다.
이 전 총재의 얼굴빛을 변하게 만든 기자들의 질문은 바로 ‘비자금 모금 사실을 보고 받은 적이 있습니까’였다. 이날 총 다섯 명의 기자들이 질문을 했는데 그 중 네 명이 이 질문을 반복했던 것이다.
이 전 총재는 “내가 모든 것을 책임진다고 했는데 보고 받고 안 받고가 무슨 상관인가”라는 말로 직답을 대신했다. 그러나 같은 질문이 계속 나오자 이 전 총재는 “이미 내가 모든 것을 책임지겠다고 말했다”며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이 전 총재의 한 측근인사는 “(이 전 총재는) 명예의식이 무척 강한 분인데 본인이 ‘감옥까지 가겠다’고 밝힌 마당에 기자들이 자꾸 ‘보고를 받았나’라고 묻자 자존심이 구겨져 버린 것”이라 설명했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이 전 총재는 ‘책임지겠다’고만 말했지만 기자들의 의도는 ‘책임은 당연히 지는 거고, 보고 받았는지를 밝혀라’는 식이었으니 이 전 총재의 자존심이 상할 만도 했다”고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장에 있던 당의 한 관계자는 “이 전 총재에 대한 취재 경험이 많은 기자들이 일부러 그 양반 자존심을 건드려 ‘그래, 보고 받았다’란 식의 흥분 섞인 대답을 얻어내려 한 것 같기도 하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이날 모처럼 이 전 총재와 함께 한자리에 모인 이 전 총재 측근들도 난감해하긴 마찬가지였다. 이 전 총재의 한 측근인사는 “모처럼 다함께 모여 환담이라도 나누고 싶었지만 (이 전 총재가) 심기가 너무 불편해 보여 그럴 수도 없었다”며 “한나라당사에 ‘총재님’과 측근인사들이 함께 모일 날이 언제 또 올지 모르는데…”라며 아쉬움을 표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