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총리 시절에도 변함없이 하루 일과를 대중목욕탕에서 사우나를 하며 시작하던 어느 날. 목욕탕에서 샤워를 하고 있는데 고 전 총리를 유심히 쳐다보는 사람이 있었다. 시골손님인 그 사람은 고 전 총리를 아래위로 훑어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총리인 자신을 알아보고 그러는 것’이라고 생각한 고 전 총리는 그 시골손님에게 미소를 띠며 가벼운 목례를 보냈다. 자신이 고건 총리가 맞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이 시골손님은 싱글벙글 웃으며 고 총리에게 다가와 “아, 고건 총리하고 꼭 닮았네요!”라고 말했다. 현직 총리가 대중탕에 왔을 리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고 전 총리는 이 같은 일화를 얘기하면서 “공직을 물러난 요즘은 내가 목례를 보내지 않아도 사람들이 다가와서 인사를 한다”며 “나는 현직 총리에 있을 때는 ‘고건 총리를 닮은 사람’이었고 총리 퇴직 후에야 비로소 ‘고건 전 총리’로 인정받게 됐다”고 말했다.
김지훈 기자 rapi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