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건은 이번 박 대표 테러 사건과 비교가 되고 있다. 당시 검경은 “박 씨의 단독범행이며 배후 인물이나 공범은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발표했지만 야당인 한나라당에서는 “과연 정치적 배후 없이 박 씨 혼자만의 단독 범행이겠느냐”며 강한 의혹을 제기했다.
YS에게 테러를 가한 박 씨는 이북 출신으로 대학 졸업 이후 4·19와 63년 한일회담 반대투쟁에도 참가하는 등의 민주화 시위 경력도 갖고 있었다. 74년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이민 간 이후에도 계속 국내 정치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 그는 90년 민자당에 입당하는 등 YS와 교분이 있었으나, 민자당 전국구 공천에서 탈락하는 등 YS로부터 홀대를 받았다는 점에 불만을 가진 이후부터 ‘반YS’의 입장에 선 것으로 알려졌다.
박 씨는 99년 11월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으로 풀려난 이후에도 최근까지 쉬지 않고 시국 사건에 관심을 가진 채 단체를 결성해서 정치적 행보를 갖는 ‘참여정신’(?)을 발휘했다.
그는 2002년 1월 ‘한미범인인도협력위원회’라는 단체를 만들어“‘진승현 게이트’의 핵심인물인 김재환 전 MCI코리아 회장 등 미국으로 도피한 권력형 비리사범 검거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나서기도 했다.
그는 같은 해 11월 <부정한 대통령부터 구속하라>라는 자서전 성격의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이 책에서 그는 ‘김대중 대통령은 남로당 중앙위원’ ‘김대중 부부의 탐욕’ 등 YS보다 오히려 DJ를 강력히 공격하기도 했다.
가장 최근에 등장한 것은 지난해 12월. 이번에는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의 강력한 지지자를 자처하고 나섰다. 그는 황 전 교수의 배아줄기세포 연구 윤리 문제를 방영한 MBC
감명국 기자 km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