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해 첫 날인 1일 서울 삼청동 인수위 경제2분과 위원들이 2일부터 시작되는 정부 업무보고에 앞서 분과별 회의를 갖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
지난 2일부터 정부부처별 업무보고가 시작되면서 인수위의 하루는 더욱 숨 가쁘게 흘러가고 있다. 업무보고 후에는 대입정책 개혁, 기자실 복원, 신용불량자 사면 등 굵직굵직한 정책안들이 흘러나왔다. 업무보고 방식은 지난 16대 인수위와 달리 상당히 짧게 진행되지만 강렬했다. 벌써 두 개 부처는 폐지를 예고하기까지 했을 정도다. 이 정도면 이 당선인의 ‘불도저’란 지난 별명을 연상시킬만하다. 그만큼 인수위에는 이 당선인의 의지가 고스란히 스며 나오는 부분이 많다.
인수위가 자리 잡은 삼청동 한국금융연수원은 3층 본관 건물과 2층 별관 건물로 이뤄져 있다. 이곳에서 인수위는 별관 전체와 본관 건물의 일부를 사용하고 있다.
별관에는 기획·조정 분과, 정무 분과, 사회교육 분과, 법무행정 분과, 외교·통일·안보 분과, 행정실, 인수위 대회의실로 이뤄져 있다. 본관에는 총 6개의 룸을 빌려 2층에는 기자들을 위한 브리핑실과 기사송고실, 3층에는 경제1·2분과와 대변인실, TV·카메라 기자실이 자리 잡고 있다.
인수위원회의 출입 통제는 철저하다. 본관은 기존의 수강생들과 기자들 탓에 개방을 하고 있지만 별관은 아예 전체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인수위의 모든 회의는 별관에서 이뤄지고 있다.
박형준 기획조정위 위원은 한 기자가 사무실 내부 모습을 묻자 “하코방(빈민촌 허름한 집) 같다”고 표현했다. 책상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어 마치 판자집 쪽방을 연상시킨다는 것이다.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공간도 없고 소파도 없다. 심지어 행여나 일어날지 모를 정보유출을 우려해 쓰레기통도 치웠다.
인수위의 공식적인 하루 일정의 시작은 오전 7시 30분이다. 이 당선인은 서울시장 시절과 한나라당 대선 후보 시절에도 모든 회의의 시작을 7시 30분에 시작했던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인수위의 회의 시간 역시 7시 30분으로 당겨 잡은 것은 이 당선인의 지시였다고 한다. 이경숙 위원장이 주재하는 오전 간사회의는 김형오 부위원장, 이동관 대변인, 맹형규 기획 조정위원, 박진 외교통일안보위원, 정동기 법무위원, 강만수 경제1위원, 최경환 경제2위원, 이주호 사회교육문화위원, 사공일 국가경쟁력강화특위 위원 등의 참석 하에 1시간가량 진행된다.
인수위원들의 회의 시간이 이렇게 이른 시간이다 보니 나머지 분과 위원들이 인수위에 모습을 드러내는 시간 역시 상당히 이르다. 각 분과 위원과 사무직원들 역시 늦어야 7시 30분 이전까지는 모두 자리를 채우고 있는 것이다. 인수위 행정실의 한 관계자는 “간사단 회의가 7시 반인데 우리는 더 일찍 나와야 하지 않겠느냐”며 “늦어도 6시 쯤 출근을 하고 보통 11시에서 12시 쯤 퇴근을 한다. 일이 많으면 밤을 새울 때도 많다”고 말한다.
위원들 역시 마찬가지다. 기획조정위에 속한 한 위원의 보좌관은 요즘 전화를 받을 새도 없이 바쁜 일정을 소화해내고 있다. 인수위가 출범한 이후 이 보좌관과 전화통화를 시도할라치면 “회의 중입니다”라는 말만 되돌아온다. 게다가 인수위 근무자들에게는 휴일도 보장돼 있지 않다.
이 당선인이 지난 1일 금융연수원에서 열린 시무식에서 “두 달 동안 자신을 버려라”라며 인수위의 ‘노홀리데이’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또한 이 당선인이 이날 인수위원들을 직접 겨냥해 “제출하는 보고서에 혼을 담아라”고 말한 탓에 당초 인수위원들 사이에서는 이 당선인의 공약에 대한 공부 열풍이 분바 있다. 특히 이 당선인 캠프에 속해있지 않다가 인수위에 임명된 ‘외부인사’들 사이에서는 이런 열기가 더욱 거셌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공부 열기는 이 당선인의 “혼을 담아라”는 지시 때문만은 아니다. 이 당선인이 서울시장 인수위 시절에 인수위 분야별로 보고서를 모두 점검하며 그때그때 위원들의 성적표를 매겼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 인수위 첫 워크숍에 참석한 이명박 당선인. 국회사진기자단 | ||
박형준 기획조정분과위원은 “가장 압축된 시간에 효율적인 보고를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다”며 기간을 짧게 잡은 이유를 밝혔다.
부처가 업무를 보고하는 시간 역시 최대한 줄였다. 이동관 대변인은 “각 부처의 기획관리실장을 책임자로해서 핵심 국장과 일부 과장만 참석하게 슬림화하고 보고시간 역시 최대한 단축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 대변인의 말처럼 이주호 사회교육문화위원회 간사의 사회로 진행된 교육부 업무보고는 2시간 만에 끝을 맺었다. 다음날 이어진 국무총리실, 중앙인사위 등의 업무보고 역시 단시간에 끝을 맺었다. 국정홍보처 업무보고 시간이 그나마 가장 길었지만 2시간 50분 만에 모든 과정을 마쳤다.
그러나 시간이 짧아졌다고 해서 강도가 약한 것은 아니다. 교육부와 국정홍보처는 보고 중 인수위원들의 거센 질책과 강한 지적을 받아야 했다.
인수위에서 처음으로 실시한 지난 2일 교육부 업무보고 이후 이동관 대변인은 “오늘 분위기는 일방적으로 점령군처럼 지시와 질타, 주문하기 보다는 쌍방향으로 의사소통이 진행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교육부 측은 이 자리를 “인수위 측의 일방적인 호통과 질책만 가득한 자리였다”고 회상한다. 참여정부 교육정책에 대한 자화자찬성 보고가 그 주된 호통의 대상이었다. 교육부는 “학교 교육력 제고를 위해 공교육을 내실화했고 교육격차 해소 및 국제화와 정보화를 촉진시켰다”고 말했다가 “교육현실을 도외시한 발언”이라며 호통을 들었다.
교육부 업무보고 이후에는 인수위의 ‘점령군 이미지’ 논란이 불거져 나왔다. 지난 3일 인수위 간사단 회의에서 김형오 인수위 부위원장이 직접 나서 “업무보고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혼을 낸다거나 재보고를 시키거나 하는 일은 앞으로 없을 것”이라며 이런 논란을 잠재웠다. 이 위원장 역시 “업무보고 현장은 국정감사가 아니다”라며 “인격적 예우는 하면서 내용파악에 충실해야 한다”고 인수위원들에게 당부를 했다. 지난 3일 국정홍보처의 업무보고의 사회를 맡은 정동기 법무행정분과 간사는 애초에 “질책성 질문을 자제해 달라”고 인수위원들에게 당부까지 했다.
그러나 국정홍보처 업무보고에서는 더 강한 질책이 쏟아졌다. 국정홍보처 측이 “국정홍보시스템은 성공적으로 구축되었으나 언론과의 적대적 관계 형성으로 체감적 홍보성과가 미흡했을 뿐”이라며 “우리는 대언론 취재서비스를 개선해 선진화 취재방안을 만들었다”는 자화자찬을 계속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보고 후 맹형규 간사는 “보고를 보니까 언론과의 적대적 관계에 대해 반성이 전혀 없다”고 질책했고 이달곤 위원은 “홍보의 개념도 모르는 것 같다. 일방적 홍보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냐”며 질책했다.
인수위의 활동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가장 논란이 된 것은 인수위원들이 개인적으로 ‘설익은 정책’을 흘리는 것. 정부 조직개편이나 휴대전화요금 인하 등이 대표적이다.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취임식 참석도 같은 맥락이다. 이같은 설익은 정책이 마구 흘러나오자 이경숙 위원장은 ‘인수위는 말 하나하나에 책임을 지는 자세가 필요하다’며 제동을 걸었다. 이 당선인도 일부 발언 당사자를 질책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현 정부와의 불필요한 갈등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인수위가 열심히 일하는 것은 좋으나 지나친 욕심이나 초반 조급증으로 새 정부의 5년을 헤매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김장환 기자 hwan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