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희가 올해 2월 말에서 3월 초의 시기에 남편과 두 아이들과 함께 극비리에 미국에 망명했다. 정보를 알려준 것은 미국의 소식통이다. 김현희는 사건 재조사에 대한 ‘증언의 압력’이 망명의 동기라고 미 정보기관에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김현희와 그 가족은 신변안전을 위해 미 CIA의 보호하에 있다고 한다.
최근 몇 년 동안 한국에서는 대한항공기 폭파사건의 피해자 가족회 등을 중심으로 ‘사건은 국가안전기획부의 모략이었다’는 의혹이 불거져 나오고 있다. 이런 목소리를 듣고 2005년 2월부터 국가정보원 직원과 민간인으로 구성된 ‘과거사 진실 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진실위원회)가 사건의 재조사를 하고 있다. 김현희는 재조사 과정에서 증언을 요구받았는데 위원회의 요청을 거절하고 공적인 자리에 일체 나오려고 하지 않았다.
진실위원회의 오충일 원장은 “김현희에게 증언할 것을 몇 번이나 요청했지만 계속 거부당하고 있다. 올해 11월까지 조사기간이 아직 남아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해 설득하고 싶다. 우리들은 그녀의 증언을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진실위원회는 김현희의 증언을 얻기 위해 여러 가지 루트를 통해 약 10번의 면담을 신청했다. 김현희가 기독교 신자이기 때문에 목사 등의 앞에서 ‘신앙고백’이라는 형태로 증언을 얻으려고 했지만 김현희는 그 제안조차 거부했다고 한다.
실제로 2004년 2월에 북한에서 김현희에게 일본어 교육을 시켰다는 납치 피해자인 다구치 야에코 씨(북한 이름 이은혜)의 아들인 이즈카 고이치로 씨가 외교 루트를 통해 면회를 희망하는 편지를 그녀에게 보낸 바 있다. 그러나 정보기관이 편지를 전하려고 접촉하자 편지를 받는 것조차 거부했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김 씨의 망명설이 불거져 나온 5일 인터넷 매체인 ‘통일뉴스’는 “1987년 안기부(국정원의 전신)가 KAL기 폭파 사건을 87년 대선에 활용하려 한 문건을 입수했다”고 공개해서 관심을 모았다. 당시 전두환 정권이 이 사건을 통해 대선에서 노태우 후보가 당선되는 데 유리하도록 여론을 조성했다는 정부 문건이 처음 확인된 셈이다.
파문이 확산되자 정부의 한 관계자는 서둘러 “김 씨는 망명하지 않았으며 현재 국내에 있다”고 밝혀 <주간문춘>의 보도는 하루 만에 해프닝으로 끝나는 듯한 분위기로 바뀌고 있다.
국정원의 한 관계자는 6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김 씨의 망명은 절대 사실이 아니다. 그리고 김 씨는 이제 더 이상 국정원의 감시하에 있지 않고 일반인의 자유로운 신분이다. 우리의 관리 대상에서 벗어난 지 오래 됐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비록 김 씨가 관리 대상은 아니지만 망명설 보도를 접하고 확인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망명을 시도했다면) 모를 수가 없지 않나. 확인 결과 망명설은 사실무근이었다. 이는 확실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김 씨가 자신의 신분이 노출되는 것을 극도로 꺼려하는 상황인 점을 고려해볼 때 주변에 한국을 떠나고 싶다는 의사를 타진하는 정도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일 것”이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과연 김 씨가 자신의 망명설을 듣게 된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김 씨가 시간의 장막 뒤로 숨으면 숨을수록 그를 둘러싼 소문 또한 자꾸 ‘진화’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감명국 기자 km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