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같은 ‘한 지붕 두 가족’ 사태는 지난해 8•8재보선을 통해 당선된 마산 합포 지역구 김정부 의원과 김호일 전 의원 간의 ‘분쟁’으로 표면화됐다. 김 의원이 합포 지역구에서 당선됐지만 김호일 전 의원이 위원장 자리를 김 의원에게 물려주지 않아 김 의원이 한나라당 간판을 달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에다 지난해 대선 전에 한나라당에 입당한 민주당 ‘철새’ 의원들도 기존에 있던 지구당 위원장들과의 교통정리가 안돼 마찰음이 들리고 있다. 한나라당은 대선에서 패배한 뒤 중앙당은 중앙당대로 개혁의 진통을 겪고 있다.
하지만 하부조직인 지구당도 내홍에 휩싸여 허우적거리고 있다. 한나라당 지구당들의 ‘위험한 동거’ 실상을 들여다보면 지금 한나라당이 처한 상황을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한나라당은 전국에 2백27개의 지구당을 두고 있다. 이중 총선에서 당선된 현역 의원들은 모두 지구당의 위원장직을 겸하고 있다. 하지만 딱 한 곳은 현역 의원이 지구당 위원장을 겸임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8•8재보선에서 당선된 마산 합포 김정부 의원(61)이 그 장본인.
“한마디로 속이 뒤집어진다. 현역 의원이 지구당 위원장을 맡지 못하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지고 있다. 중앙당에서 물리적으로 해결하기보다 순리대로 해결하라고 해서 지금까지 참고 있다. 그리고 당에서 꼭 해결해주겠다고 해서 기다리고 있는 실정이다.”
▲ 마산 합포 지구당 위원장을 두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김정부 의원(왼쪽)과 김호일 전 의원. | ||
김호일 전 의원은 현행 당헌당규를 내세우며 지구당 위원장직을 물려주지 않고 있는 것이다. 김 전 의원은 “우리는 지난 2002년 2월20일에 지구당 개편대회를 통해 2004년 2월까지 지구당 임기를 보장받았다. 우리가 김정부 의원에게 위원장을 물려줄 아무런 당헌당규상의 의무규정이 없다. 만약 지구당 위원장을 바꾸려면 정기 전당대회를 통해 당헌당규를 바꾸지 않는 이상 현행 제도로는 교체가 불가능하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김 전 의원는 “지난 재보선에서 내 도움이 없었으면 그는 의원이 될 수 없었다. 그리고 16대까지만 의원직을 수행한다고 해서 도와준 것인데 이제 와서 위원장을 내놓으라는 게 말이 되나. 나는 한나라당 지구당 위원장으로서 내년 17대 총선에 당당하게 나갈 것이다. 더 이상 이론의 여지가 없다”고 잘라말했다.
이에 대해 김정부 의원은 “당연히 물려줄 자리인데… 현역 의원이 버젓이 있는데 당원이라는 이유만으로 지구당 위원장직을 계속 수행하는 것은 정치인의 양심에 관한 문제다. 물론 지금은 지역구 여론 관리를 잘해서 차기 총선 때 공천을 받으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한 고위 당직자는 올 3월에 전당대회가 개최되면 그때 가부간 결정이 난다고 했다.
서청원 전 대표는 당헌당규를 개정해서라도 현역 의원들에게 위원장직을 주겠다고 공개적으로 약속했다”고 맞서고 있다. 이 같은 양측의 팽팽한 대립으로 조용한 해결은 사실상 물 건너간 상태다. 김정부 의원은 마산 합포 지역을 대표하는 지역 의원이긴 하지만 정작 그 지역의 한나라당 당원들을 대표하지 못하는 아이러니에 대해 몹시 답답해하고 있다.
반면 김 전 의원의 경우 김 의원이 17대 총선 불출마의 약속을 어겼다며 서운해하고 있다. 그래서 이들은 지역의 각종 행사에서도 어색한 조우를 하고 있다고 한다. 김정부 의원의 경우 사무실 간판에 한나라당 이름을 쓸 수 없어 홍보전략에도 차질을 빚고 있는 실정. 이들의 ‘위험한 동거’는 당헌당규가 개정된 뒤에야 그 어색한 막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철새’ 의원들의 한나라당 입당에 따른 지구당 갈등도 적지 않다.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 소속 의원 7명이 한나라당에 입당한 바 있다. 이들과 기존 지구당 위원장들의 관계는 한마디로 ‘굴러온 돌과 박힌 돌’의 관계. ‘굴러온 돌’인 ‘철새’ 의원들의 입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강성구 의원(63•경기 오산•화성)과 박상규 의원(67•인천 부평갑) 등은 자신들의 당적변경에 대한 지역 여론이 좋지 않은 데다 성급하게 지구당 ‘접수’를 선언할 만큼 지역 관리도 탄탄하지 못하기 때문에 위원장직 인수에 조심스런 반응을 보이고 있다.
강 의원측은 “지금 지역구 활동만 열심히 하고 있다. 국회 의원회관에 잘 안보이는 이유는 신년 인사 때문이다. 국회가 시작되는 2월5일부터 활발히 활동할 것이다. 지구당 인수인계가 되어야 하는데 아직 중앙당도 추스르지 못했으니 지켜보고 생각해보겠다”고 밝혔다.
박 의원측도 “지금 큰 활동은 거의 하지 않고 있는 상태다. 기존 위원장이 있기 때문에 지구당 활동을 많이 자제하고 있다. 사무실에도 거의 나가지 않는다. 민주당 간판은 내렸지만 한나라당 간판은 아직 올리지 못해 걱정스럽긴 하다”고 밝혔다. 두 의원 모두 자신들의 지금 입지를 생각해서 ‘성급하게 지구당 문제로 갈등을 일으키고 싶지 않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원유철 의원(40•경기 평택갑)의 경우는 자신감에 찬 모습이다. 그는 위원장직에 대해 “순리대로 처리될 것”이라며 자신감을 내보이고 있다. “대선도 실패했는데 장기만 위원장에게 지구당을 얼른 내놓으라고 말할 처지가 아니다. 그래서 도리가 아니다 싶어서 일단 서로 ‘윈윈’하는 것을 모색해보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나는 현역 의원이라 위원장직 양보는 있을 수 없다고 본다. 중앙당 개혁안이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으니까 최종 결론이 나면 그것에 따르겠다. 내년 총선에서 맞붙으면 서로 부담이니까 머리를 맞대고 허심탄회하게 논의를 해보겠다. 위원장 내락을 받았는데… 순리대로 정리가 잘 될 것으로 본다.”
원 의원의 경우 현 지구당 위원장과의 ‘담판’에서 자연스럽게 위원장직을 차지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 차 있다. ‘굴러온 돌’의 이 같은 조심스런 입장에 비해 ‘박힌 돌’들의 반응은 한마디로 격렬하다. 중앙당의 ‘낙하산’ 인사에 자칫 그들의 자리가 위태로워질 수도 있기 때문. 더욱이 이들은 몇 년 째 재야에서 여의도행 티켓을 거머쥐기 위해 절치부심해왔다.
그래서 한결같이 “만약 그들이 지구당을 접수한다면 목숨을 걸고 막겠다. 한나라당 고위층도 맞아 죽을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장기만 위원장(56•경기 평택갑)은 “당에는 당헌당규가 있기 때문에 입당했다고 해서 현역의원이라고 지구당 위원장을 차지하고 그런 경우는 없다.
당헌당규에 따라 지구당 개편대회를 한다면 모를까 중앙당에서 당규를 개정해서 위원장을 바꿀 수는 없다. 그렇게 될 수도 없다. 민주당에서 입당했던 의원들은 자기들의 떳떳하지 못한 처신 때문에 지구당에선 말 못하고 3~4명이 몰려다니며 중앙당에 가서 ‘위원장직을 보장했으면 약속을 지켜야지’ 하면서 항의하는 것 같다. 하지만 당헌당규를 바꾸어서 전당대회에서 결의가 되면 가능하지만 지금은 거론자체가 안 된다. 그 사람들은 철새 정치인들이라 지역구민들조차도 외면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창현 위원장(63•경기 오산•화성)도 “지구당 위원장을 내줄 생각은 전혀 없다. 어떤 누구도 위원장을 해임할 권리는 없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한나라당 고위층은 맞아 죽을 것이다”고 강력하게 맞서고 있다.
또한 조진형 위원장(59•인천 부평갑)은 “지난 대선에서는 공동선대위를 구성해 이회창 후보를 열심히 지지했다. 지금으로선 지구당 위원장직에 대한 어떤 변화도 없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게 될 것이다”며 위원장직 유지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김본수 경기 용인을 지구당 위원장은 조금 느긋한 자세다.
김윤식 의원이 지난 1월28일 선거법 위반 혐의로 항소심에서도 당선무효에 해당하는 벌금 1천만원을 선고받아 의원직 상실 위기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김본수 위원장은 “지구당 위원장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김 의원이 벌금 1천만원 받은 상태라…. 하지만 위원장직에 관한 한 중앙당 처분에 맡기지는 못한다. 나는 지난 2000년부터 지역구 활동을 열심히 했기 때문에 양보할 의사는 전혀 없다”고 밝히고 있다.
한편 ‘철새 의원’ 중 가장 행복한 경우는 전용학 의원(52•충남 천안갑). 그는 지난 10월에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그런데 천안갑 지구당 위원장이었던 성무용씨가 6•13지방선거 때 천안시장에 당선되면서 위원장직이 공석에 있었던 것. 그 뒤 위원장직을 공모했지만 마땅한 인물이 나타나지 않아 계속 공석상태로 남아 있었다. 이 덕에 전 의원이 ‘지구당 무혈입성’에 성공할 수 있었다.
이런 ‘한 지붕 두 가족’ 사태에 대한 한나라당의 대응 방식은 당의 현재 모습과 너무나 닮았다. 한나라당 김영일 사무총장측은 “지금은 지구당 위원장 문제에 대해 논의할 겨를이 없다. 사실 이 문제도 상당히 급하긴 하지만 아시다시피 지금 한나라당에는 이 문제를 논의할 구심체도 없다.
당 정개특위 논의가 끝나고 지도부 구성이 끝나야 이 문제에 대해서도 해결할 여지가 있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지금 한나라당은 대선 패배 이후 선장을 잃고 표류하고 있다. 이 와중에 당의 근간인 일부 지구당도 덩달아 방향타를 잃고 떠돌아다니고 있다. 이것이 대선이 끝나고 두 달여가 지난 2003년 2월 한나라당의 현재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