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대선 때 부산 자갈치 시장 유세에 나선 노무현 당시후보. | ||
실제로 지난 대선 때 노 당선자는 자신의 정치적 장래를 PK지역 민심에 걸었다 해도 과장이 아닐 정도로 적극적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정가에선 노 당선자의 부산 경남 지역에 대한 ‘물밑 공략’이 다시 시작됐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이는 다분히 2004년 총선을 겨냥한 관측이다. 노 당선자가 지난 대선 때 약세라는 예상 속에서도 30%에 가까운 지지율을 이끌어낸 PK지역에서 여소야대 및 동서갈등의 돌파구를 찾으려 할 것이라는 예측. 즉 내년 총선 때 대선 지지율에 육박하는 PK권 의석 수를 차지함으로써 다수당의 입지를 확보하고 나아가 동서갈등 구도를 타개할 발판을 마련하려 하고 있다는 시각이다.
호남 기반의 민주당 간판으로 대선을 치른 노 당선자가 결코 쉽지 않은 PK 장벽을 넘기 위해 제일 먼저 꺼내든 카드는 바로 부산 출신 386세대 인사들이다. PK지역의 젊은 개혁 성향 인사들을 키우고 중용함으로써 지역 지지기반을 넓힐 것이라는 관측이다.
노 당선자의 이러한 ‘의중’은 최근 청와대 내정인사에서도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부산 재야법조 출신 문재인 변호사를 새 정부 민정수석에 내정한 데 이어 부산 386세대의 ‘얼굴’인 이호철씨를 민정수석실로 영입하는 인사가 그것이다.
문재인 내정자는 부산지역에서 노 당선자와 함께 인권변호를 해온 재야 동지로 노 당선자가 평소 존경의 뜻을 피력해온 인물. 또한 부산 법대 출신으로 노 당선자의 보좌관을 지냈던 이호철씨는 노 당선자가 개인적으로 깊은 신뢰를 보내는 ‘동생’이다. 특히 이씨는 지난 81년 부산학림사건(일명 부림사건)에 연루돼 구속된 뒤 당시 자신을 무료변론했던 노 당선자를 ‘인권변호사’로 변신케 한 주인공으로 꼽힌다. 노 당선자는 그를 ‘정신적 형제’라고 말할 정도다.
문 내정자와 이씨 모두 노 당선자와 불가분의 인연을 맺고 있지만 이들이 차기 정권의 개혁 틀을 짜는 핵심 요직에 발탁된 배경에는 이들 두 사람이 부산권에 깊이 뿌리내린 인물이라는 점도 고려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와 비슷한 관점에서, 대선 기간 에 민주당 부산지역 선대위를 이끌었던 조성래 변호사와 정윤재 부산사상지구당위원장의 행보를 주목하는 시선도 많다.
재야 시절 노 당선자와 함께 인권변론에 앞장섰던 조 변호사는 요즘 개혁에 동참할 지역 법조 인맥을 두루 다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노 당선자 보좌관 출신의 정윤재 위원장은 ‘부산의 노무현’이라고 불릴 정도로 노 당선자와 가까운 사이. 지난 96년 총선 때 부산 사상구에서 그 지역에서만 6선을 했던 서석재 전 의원(당시 한나라당 후보)과 맞붙어 석패한 전력이 있다.
▲ 왼쪽부터 조성래 변호사, 신상우 전 의원, 박종웅 의원 | ||
대신 조 변호사 등이 노 당선자를 위해 지역 인프라 구축에 적극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들이야말로 내년 총선 때 PK지역에서 ‘제2의 노풍’을 일으킬 예비 선봉장들인 셈이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노 당선자 지지를 선언했던 서석재 한이헌 이기택 신상우 김정길 전 의원 등과 전국구인 김기재 의원도 노 당선자의 PK권 주요 인맥으로 분류된다.
노 당선자의 PK 전략과 맞물려 이들 인사들의 물밑 움직임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지난 6•13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약세지역인 부산의 시장 후보로 나섰던 한이헌 전 의원은 새 정부 경제부총리 후보군으로 오르내리고 있다. 김기재 의원의 경우엔 내년 총선 출마를 대비해 지역구를 물색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또한 서석재 전 의원 등 일부 민주계 인사들과 노 당선자의 부산상고 선배인 신상우 이기택 전 의원 등도 내년 총선에서 부산 지역에 출마할 후보군으로 거론되고 있다. 이들 인사들은 노 당선자의 개혁성향과 배치되는 구시대 정치인으로 분류될 수 있는 약점도 있지만 거꾸로 부산의 ‘반 민주당’ 정서에 대한 완충 역할을 해낼 수 있는 인물들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김정길 전 의원의 경우 부산 지역에 인프라가 별로 없는 노 당선자와 지역 언론 및 상공인들과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세간엔 김 전 의원이 통추시절부터 맺은 노 당선자와의 남다른 인연으로 인해 새 정부 출범 이후 중용될 것이라는 설이 나돌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2000년 총선 당시 선거법 위반으로 벌금형을 받아 사면복권이 우선 필요한 김 전 의원은 현재 기대감보다는 신중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한편 노 당선자의 PK 공략과 관련해 부산/경남의 한나라당 인사들의 영입 여부도 관심거리다.
정가에선 지난 6•13 지방선거에서 영입설이 나돌았던 박종웅 의원, 그리고 노 당선자의 부산상고 후배인 권태망 의원 등의 영입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거론되고 있다. 현재 이들은 모두 “노 당선자측으로부터 영입 제안을 받은 적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정가에 보수주의대결집 등 정계개편 바람이 몰아칠 경우 이들의 행선지가 결국 노 당선자쪽이 되지 않겠느냐는 시각이 적지 않다.
이밖에 한나라당 부산지역서 개혁성향이 강한 D의원, A의원 등도 유사시 영입 대상으로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현재 노 당선자측이 추진중인 중대선거구제 논의도 부산권 정치인들을 긴장시키는 요소. 한나라당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실현 여부는 미지수지만 중대선거구제로의 전환이 이뤄지면 부산에서 3분의 1 이상 의석을 차지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게 민주당의 관측이다.
한나라당 개혁특위의 한 고위관계자는 “선거구제 전환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내년 총선에서 부산권 수성이 힘들어질 것은 분명하다”고 밝혔다. 노 당선자에게 PK출신 대통령이라는 지역 프리미엄이 생긴 데다 벌써부터 노무현 인맥들이 활발한 물밑행보를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