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월13일 오전 인수위 간사단과 회의를 하고 있는 노 당선자. 사진공동취재단 | ||
지난달 29일 문희상 대통령 비서실장 내정자는 노무현 정부 청와대 1기 인선 원칙으로 “충성심 내지 당선자의 뜻을 잘 아는 것이 인선의 우선 고려요인이 될 것”이라며 ‘창업형’ 인사를 예고했다.
문 내정자는 “군주엔 가신, 측근 등을 충성심 위주로 등용하는 ‘창업형’과 테크노크라트 위주로 기용하는 ‘수성형’, 이 두 가지를 섞은 ‘경장형’이 있다”고 율곡 이이의 ‘군주의 세 가지 유형론’을 인용하며, “첫 번째 인선은 창업형으로, 두 번째엔 수성형으로 하는 것이 일리가 있다”고 언급했다.
즉, 새 정부 첫 인선은 무엇보다 노 당선자와 가치관과 철학이 비슷하며 신뢰할 수 있는 인사들로 꾸려질 것이란 해석이다. 이 때문에 노무현 당선자의 핵심 인맥인 ‘통추’와 부산 재야 출신, 386 참모그룹 등 이른바 ‘노무현 사단’의 대거 기용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실제 대선 이후, 지금까지 발표된 노무현 당선자 인선에는 이들 ‘노무현 사단’의 직/간접적인 영향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노 당선자 인선에 영향을 미치는 그룹으로는 크게 김원기 정개특위원장, 유인태 정무수석 내정자를 중심으로 한 통추 그룹과 정대철 정동영 신기남 천정배 의원 등 민주당 신주류, 문재인 민정수석 내정자와 이호철씨 등 부산 재야출신그룹, 여기에 노 당선자 인선을 실무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는 신계륜 인사특보와 386 참모그룹이 있다.
이외에 인수위에 참여하고 있는 김병준 정무분과 간사 등 학자그룹과 인수위 외곽 염동연 이강철 특보 등 노 당선자 핵심인사들도 인사에 직/간접적으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22일 공식 활동에 들어간 문희상 비서실장 내정자는 이들 각 그룹의 의견을 조율하고, 전체적인 의견을 종합, 당선자에게 보고하고 결심을 받는 역할을 하고 있다.
줄잡아도 6개 내지 7개 그룹에서 노무현 제1기 인선 작업에 간여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노무현 당선자가 ‘창업형’ 인사에 치중하면서 주요 인선에 핵심측근들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고건 총리 내정 과정에 통추와 민주당 신주류 인사들보다 노 당선자 핵심측근들의 영향력이 컸고, 박주현 국민참여 수석 내정에는 노 당선자의 신뢰가 깊은 문재인 민정수석 내정자의 역할이 지대했던 것이 대표적인 예.
▲총리 내정 둘러싼 샅바싸움
고건 총리 내정 과정에는 적지 않은 진통이 있었다는 후문이다. 특히, 대선 이후 당권도전 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는 정대철 의원은 총리 내정 직전까지 김원기 정개특위원장을 총리에 임명해 줄 것을 노 당선자에게 여러 차례 간청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반해 노무현 당선자 진영에서는 ‘개혁 대통령-안정 총리’ 구도를 주장했고, 노 당선자도 측근 참모그룹의 주장에 힘을 실어줬다는 평가다. 특히, 고건 총리 내정사실이 하루 이틀 먼저 흘러나온 배경을 두고 당선자 주변 인사들이 고건 총리 내정을 기정사실로 만들기 위해 언론에 흘린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이밖에 신계륜 당시 당선자 비서실장과 정동영 의원 등 고건 전 서울시장과 연이 깊은 몇몇 민주당 신주류 인사들도 고건 카드를 적극 추천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부상하는 부산 재야출신 그룹
대통령 비서실장과 정무수석 내정 이후 노무현 당선자는 곧바로 문재인 민정수석을 내정했다. 본격적인 인선에 앞서 직접적인 조력을 구하기 위함이었다. 민정수석 내정 이전에 노 당선자가 적어도 다섯 차례 이상 문재인 내정자를 장시간 면담한 사실은 문 내정자의 비중을 짐작케 하고 있다.
문 내정자는 민정수석 내정 직후, 이호철씨 등과 서울 모처에 숙소를 정하고 본격적인 인선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박주현 국민참여수석의 깜짝 발탁은 문 내정자의 첫 작품이라는 데 인수위 관계자들의 의견이 대체로 일치하고 있다. 수석 내정에 앞서 박주현 내정자가 임명권자인 노무현 당선자의 직접 면접과정을 거쳤음은 물론이다.
▲ 왼쪽부터 문재인 내정자, 문희상 내정자, 신계륜 특보 | ||
다른 한편에선 노무현 당선자-문재인 민정수석 내정자-이호철씨로 이어지는 인선라인이 구축되면서 여타 인수위 관계자들이 배제되고 있다는 불만의 목소리도 나온다. 인수위 주변에서는 청와대 인선은 물론, 내각 임명과정에서도 문재인 내정자의 비중이 적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신계륜 인사특보 파워
문희상 비서실장 내정자는 지난달 22일부터 당선자 비서실장을 겸하며 공식적인 업무에 돌입했다. 한편, 당선자 비서실장으로 활동해 온 신계륜 의원은 노무현 당선자 인사특보로 당분간 노 당선자를 보좌하게 됐다. 당선자 비서실장에서 물러난 이후에는 인수위 사무실 인근에 별도 사무실을 내고, 인선자료를 챙기는 등 인사특보로서 업무는 계속 수행하고 있다.
신 특보는 문희상 실장 내정자가 공식 업무에 돌입하기 이전, 인수위에 참여하고 있는 인사들로부터 ‘희망 근무 부서’를 제출받는 등 청와대 인선작업에도 손을 댔다. 신 특보는 청와대 인선이 마무리되고, 제1기 내각이 출범할 때까지 인사특보로서 노무현 당선자를 보좌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적어도 인사에 관한 한 신계륜 특보의 영향력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문희상 내정자 막후 역할
공식 활동에 들어간 문희상 내정자는 노무현 정권 제1기 진용짜기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를 위해 문 내정자는 매일 아침 인수위에 참여하고 있는 노무현 당선자의 386 핵심 참모들과 회의를 갖고 있다.
386 참모들이 주로 취합한 인사파일 등 실무적인 자료와 인선에 대한 의견을 청취하고, 이를 토대로 다시 문재인 수석 내정자 등과 함께 인선 대상자를 거른 뒤, 최종적으로 노무현 당선자에게 보고, 결심을 받는 역할을 맡고 있다. 이밖에 문희상 내정자는 민주당 출신 인사들의 노무현 정권 참여에도 적지 않은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문 내정자와 더불어 당료 출신 인사들의 향후 거취문제를 조율하고 있는 이가 염동연 특보다. 염 특보는 인수위에 직접 참여하고 있지는 않지만, 새 정부 출범 이후 정부산하단체 인사에 대비, 당료 출신 인사들을 중심으로 인재풀 점검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386 참모그룹과 학자그룹
겉으로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노무현 당선자의 인선에 적잖은 영향을 미치는 그룹으로 386 출신 참모그룹이 꼽히고 있다. 이들 그룹이 주요 인선 대상자에 대한 기초자료 수집은 물론, 여론탐색 기능까지 담당하고 있다는 게 인수위 관계자의 전언이다.
문희상 비서실장 내정자와의 아침 회의에 참석하고 있는 이광재 서갑원 윤태영 팀장 등이 주요 386 참모들이다. 또 인수위에는 참여하고 있지 않지만, 이미 대선 기간부터 인선 작업을 주도했던 안희정 전 정무팀장의 역할도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밖에 김병준 정무분과 간사 등 인수위 학자그룹의 핵심인사들도 노무현 당선자의 인선과정에 안팎으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인사 둘러싸고 힘겨루기 양상
노무현 당선자의 인선작업에 다양한 세력권의 인사들이 참여함으로써 나타나는 부작용도 없지 않다. 고건 총리 내정에서와 같이 김원기-정대철 등 민주당 인사들과 노무현 당선자 측근인사들 간 힘겨루기 양상이 벌어지는가 하면, 박주현 수석 내정 과정에서와 같이 전격 발탁 인사에 따른 인선 잡음도 일고 있는 것.
특히, 5~6개 그룹에서 노 당선자 인선에 영향력을 행사하다보니, 독자적으로 인사를 추천하기보다는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그룹이 합세, 밀어붙이기식 인사를 할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또, 대다수 민주당 인사들이 소외되고 있는 현상도 부작용으로 지적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