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씨티은행은 오는 3월 8일부터 거래 잔액이 1000만 원 미만인 신규 고객 예금계좌를 대상으로 매달 5000원의 계좌유지수수료를 부과한다. 계좌유지수수료는 인터넷이나 모바일, 자동입출금기(ATM) 등 비대면 창구를 통해 거래하면 부과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국민은행의 창구거래수수료와 유사하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한 은행이 선도적으로 수수료를 인상하거나 신설하면 다른 은행이 따라가는 경우가 많다”며 “국민은행의 창구거래수수료 논의는 씨티은행의 계좌유지수수료가 신설됐을 때부터 예상했던 일”이라고 전했다.
KB국민은행은 최근 내부에서 창구거래수수료 도입을 논의하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국내 시중은행들이 앞다퉈 이런저런 명목의 수수료 신설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11월 금융감독원(금감원)이 전해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은행 수수료 조정 현황’에 따르면 국내 시중은행들은 2014년 1월부터 2016년 7월까지 82개의 수수료를 신설했고 78개 수수료를 인상했다. 반면 폐지된 수수료는 7개, 일시감면·인하된 수수료는 67개였다. 일시감면·인하된 수수료 67개 중 약 43%인 29개는 NH농협은행의 수수료였다. 농협은행 관계자는 “명절이나 전산작업 등을 할 때 이벤트성으로 수수료 일시감면을 많이 해왔다”고 설명했다.
이 기간 동안 4대 시중은행인 국민·신한·우리·하나은행(구 외환은행 포함)은 29개의 수수료를 신설, 28개 수수료를 인상했다. 반면 일시감면·인하된 수수료는 20개, 폐지된 수수료는 2015년 9월 폐지된 하나은행의 ‘보관어음반환수수료’ 1개뿐이었다. 이마저도 당시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이 통합하면서 수수료가 개편됐기 때문이다.
4대 시중은행에서 2014년 1월~2016년 7월 사이에 폐지된 수수료는 하나은행의 보관어음반환수수료 1개 뿐이었다. 박정훈 기자 onepark@ilyo.co.kr
은행이 수수료를 신설하거나 인상하면 고객들의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신설·인상을 강행하는 까닭은 수익성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은행들의 수수료 신설·인상이 실제로 수수료 수익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감독원 금융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국민은행만 수입 수수료 수익이 2015년 1~3분기 8095억 원에서 2016년 1~3분기 8102억 원으로 소폭 늘었을 뿐 다른 은행들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같은 기간 신한은행은 6452억 원에서 6015억 원으로, 우리은행은 6331억 원에서 6323억 원으로, 하나은행은 7053억 원(통합 전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의 수입수수료를 통합한 수치)에서 5149억 원으로 줄었다.
금융통계정보시스템은 수수료를 ▲수입수수료 ▲수입보증료 ▲중도해지수수료 ▲기타수입수수료 4개로 구분한다. 수입보증료는 지급보증에 따른 수입, 중도해지수수료는 적금 등 상품을 중도 해지할 때 받는 수수료, 기타수입수수료는 유가증권 대여료를 의미한다. 따라서 송금수수료, ATM 이용 수수료 등 통상적인 수수료는 수입수수료로 계산된다.
은행의 매출에서 수수료 수익이 차지하는 비중도 줄고 있다. 국민은행이 발표한 실적과 수수료 수익을 계산한 결과 국민은행의 매출에서 수수료가 차지하는 비율은 2015년 8.4%에서 2016년 7.3%로 1.1%포인트 줄었다. 같은 기간 신한은행은 7.2%에서 6.4%로, 우리은행은 8.6%에서 7.9%로 줄었다. 하나은행은 2015년 9월 외환은행과 하나은행이 통합해 2015년과 비교는 힘들지만 2016년 2.5%를 기록해 4대 시중은행 중 가장 낮은 수치를 보였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고객들이 모바일뱅킹 등 비대면 채널을 많이 이용하는 추세고 은행들도 비용이 많이 발생하는 창구거래 대신 비대면 채널 확장에 힘을 쏟고 있다”며 “비대면 채널에는 수수료 면제 조건을 많이 적용해 수수료 수익이 줄어드는 것”이라고 밝혔다. 시중은행 다른 관계자는 “예전에는 대기업 고객이 국내 은행만 이용했지만 최근에는 글로벌 은행과 거래량이 늘어 기업고객으로부터 받는 수수료가 많이 줄었다”며 “기업고객에서 나오는 수수료수익이 줄어 수익을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수수료를 인상하는 측면도 있다”고 전했다.
은행들의 창구거래에 대한 수수료 신설·인상은 서민 고객들에 직격탄이 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일정 금액 미만 계좌에 국한한다는 방침은 대놓고 서민 고객들의 주머니 돈을 요구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은행들은 고객들을 온라인 뱅킹이나 스마트폰 뱅킹을 유도하지만 온라인에 익숙하지 않은 노년층 등은 여전히 창구거래를 이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서민들은 각종 수수료 혜택에서 배제되고 어쩔 수 없이 은행창구를 이용하는 고객도 있다”며 “노년층 등 소외계층은 수수료 인상이 곧 가계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어 수수료 신설에 대해 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앞의 시중은행 관계자는 “점포 관리비나 창구 직원의 임금을 고려하면 지금 수준의 수수료는 밑지고 장사하는 수준”이라며 “수수료를 인상해서 큰돈을 벌겠다는 게 아니라 원가에 맞추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
해외은행 수수료 실태는? 국내 시중은행들이 수수료를 인상할 때 나오는 근거 중 하나는 해외 은행과 비교다. 국내 은행의 수수료가 해외은행 수수료에 비해 지나치게 저렴하다는 것이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은행도 기본적인 고정비가 있다”며 “은행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용역을 취하는 게 맞지만 국내 정서는 공짜 의식이 강한 게 사실”이라고 전했다. 한국금융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송금수수료는 500~3000원 수준인 데 비해 미국은 35달러(약 4만 원), 영국은 25파운드(약 3만 5000원), 일본은 648~864엔(약 6500~8700원)이다. 온라인뱅킹을 통한 송금수수료 역시 한국은 무료 내지 600원 정도의 소액을 부과하지만 미국은 17.5~25달러(약 2만~2만 8000원), 영국은 25파운드(약 3만 5000원), 일본은 216~324엔(약 2000~3200원)을 부과한다. 자기앞수표 발행수수료 역시 미국 10달러(약 1만 1400원), 영국 15파운드(약 2만 원), 일본 864엔(약 8700원)으로, 한국(0~500원)은 이들 은행의 20분의 1~45분의 1 수준이다. 그러나 소비자단체들은 국가에 따라 발생하는 비용이 달라 직접 비교는 어렵다고 말한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해외 은행과 국내 은행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품질이 다르고 자동화기기(ATM) 설치 비용조차 차이가 있다”며 “이를 무시한 채 가격만 비교하면 곤란하다”고 전했다. 강형구 금융소비자연맹 금융국장은 “수수료를 일방적으로 인상하는 것은 공급자 중심의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라며 “인상하기 전에 원가를 공개하고 충분한 사회적 논의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