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재고택 전경
[대전=일요신문] 육심무 기자 = 봄을 시샘하는 찬바람이 옷깃을 여기게는 하지만 나날이 더해가는 봄기운은 겨우내 움츠렸던 몸과 마음을 털고 나오라고 손짓하는 계절이다.
봄겨울과 봄이 교차하는 계절의 길목에서 가족들과 신체적으로 무리가 없는 고택을 찾아 선비의 기개와 사대부 명가의 음식을 맛보는 것도 힐링의 좋은 방법일 듯 싶다.
휴일 충청의 가볼만한 곳으로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교촌리에 자리한 중요민속문화재 제190호인 명재고택을 소개한다.
백의정승의 기개와 선조들의 아녀자에 대한 배려 및 건축 과학을 볼 수 있고, 먹방이 대세인 요즘 300년 묵은 간장 등 사대부 종가의 장맛도 볼 수 있다.
특히 단순한 관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숙박과 체험이 가능한 많지 않은 장소이다.
명재고택 전면
충남 논산시 노성면사무소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뒤로는 산줄기를 병풍으로 두르고, 앞에는 장방형의 커다란 연못이 있는 대문도 담장도 없이 마을을 향해 활짝 열린 전통가옥이이 있다.
감출 것이 없다는 백의정승의 자부심으로 담장을 두루지 않았다는 이 한옥은 현재도 후손들이 거주하며 300여년의 고고한 기품과 종가의 장맛을 이어오고 있다.
명재고택은 조선 숙종(재위 1674∼1720) 때의 유학자인 윤증(尹拯) 선생의 가옥으로 그의 호를 따서 명재고택이라 불린다. 소론의 수장으로 평생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서도 우의정의 벼슬을 받았는데 이 때문에 ‘백의정승’이라고 불리며 많은 이들로부터 존경을 받기도 했다.
명재고택(明齋故宅)은 윤증(尹拯, 1629∽1714) 선생이 살아계셨던 1709년에 아들과 제자들이 힘을 합쳐 지은것이지만 선생은 고택에서 4km 떨어진 유봉에 있는 작은 초가에서 살았고 그곳에서 돌아가셔서 명재고택의 ‘고’자를 옛‘古’가 아닌 연고‘故’자로 쓰고 있다.
임금이 18번이나 벼슬을 내렸으나 사양하고 검소와 나눔의 미덕을 실천하며 후학을 가르친 선생의 성품을 반영하듯 고택은 다른 사대부 집안의 가옥에 비해 겉모습이 소박한 편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곳곳에 현재의 건축가들도 감탄하는 과학적 설계와 배려가 숨어있다.
고택앞에 자리한 연못 안에는 자그마한 원형 섬이 있고, 그 안에 고택과 함께 300년의 세월을 보낸 배롱나무가 여름이면 붉은 꽃으로 자태를 뽐낸다..
연못
연못을 지나 앞마당의 섬돌을 오르면, 기단 위의 기품 있는 사랑채가 손님을 반긴다. 전면이 개방된 사랑채의 왼쪽으로 난 중문으로 들어서면, 안채가 나온다.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좌우가 대칭을 이루는 ‘ㄷ’자형 구조인데, 안채 앞에 사랑채가 있어 전체적으로는 ‘ㅁ’자형을 이룬다.
사랑채에는 미닫이와 여닫이를 접목한 문이 있는데, 4쪽 미닫이문을 열고 다시 열면 여닫이문처럼 열리는 독특하고 과학적인 양식이며, 조선시대 활용주의 정신이 함축되어 있는 구조적인 면과 배치 형태, 창호의 처리 등에서 기능성과 다양성을 엿볼 수 있다.
사랑채에서 안채로 넘어오는 길에는 벽이 있는데 문간에 벽을 설치한 것은 방문객이 여성들이 주로 생활하는 안채의 내부를 볼 수 없도록 배려한 것이다. 그러나 벽 아래에는 공간이 나 있어 안채 마루에서는 그 곳으로 신발을 보고 방문객을 미리 짐작할 수 있었단다.
안채 옆으로 곳간채가 있는데, 두 건물을 나란히 두지 않고, 북쪽으로 갈수록 좁아지도록 배치해 여름에는 남쪽에서 불어온 바람이 북쪽의 좁은 통로를 빠져나가기 때문에 그 속도가 빨라져 주변이 서늘해지고, 겨울에는 반대로 북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남쪽의 넓은 통로를 빠져나가면서 매서운 한기를 약화시킨다. .
초옥
덕분에 곳간채의 북쪽 끝 창고는 여름철에도 서늘해서, 이곳에 차갑게 보관해야 할 것을 둘 수 있었다. 사랑채는 큰사랑방을 중심으로 우측에는 대청이 있고, 좌측에는 누마루가 있다. 또 그 뒤로 작은사랑방과 안사랑방, 대문간이 이어진다.
명재고택에서 방문객들이 사용할 수 있는 객실은 안채의 건넌방과 사랑채의 사랑방 3곳이다. 누마루를 포함한 사랑채를 통째로 예약해 독채로 사용할 수도 있는데 사랑채 누마루에 앉아 있으면 연못과 그 너머의 마을과 앞산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마당 한쪽에는 초가 별채가 있고, 음향장비 드이 설치된 초연당(超然堂)도 있어 단체 모임이나 소규모 공연도 할 수 있다.
명재고택에는 향나무로 들러쌓인 샘이 있는데 향나무 뿌리는 물맛을 좋게한다는 속설이 있다.
장독대 항아리들
명재고택 옆마당에 늘어서 있는 수백개의 장독은 사대부 집안의 아녀자들의 살림살이 규모를 가늠케한다.
이 샘물로 담근 간장과 된장, 고추장 등 장류의 맛은 이미 전국에 널리 알려져 있고, 300년 넘은 교동 전독 간장은 요리와 식품기업 드라마에 빠지지 않는 단골 소재가 되기도 한다.
논산명재고택의 전독간장은 항아리채 전해져 내려오고 있어 전독간장이라 불려지며, 노서 윤선거(윤증의 부) 종가만의 전통비법으로 전수되는 명품이다. 교동이라는 명침은 노성향교가 고택 옆으로 이전해 오면서 향교의 동쪽에 있는 집이라는 뜻이며 전독간장은 300여년간 간장이 항아리(독)째 전해져 내려와 붙여진 이름이다.
장독대
교동 전독간장과 된장은 아직도 종부가 전통적인 방법으로 담가 일반에 판매되고 있으며, 교동 전독간장을 이용한 일명 궁중떡볶이라 하는 떡산적, 떡전골과 노성천에서 나는 게로 담근 간장게장도 미식가들이 단골로 찾는 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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