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은행은 지난해 11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현지 법인 설립 출범식을 열고 연내 베트남 법인 설립을 목표로 했다. 우리은행은 법인 설립 첫해 3곳, 이후 매년 5~7곳의 영업점을 신설할 계획을 갖고 있다. 우리은행은 현재 하노이와 호치민에 각각 지점을 한 개씩 갖고 있다.
우리은행 베트남 현지 법인 출범식. 오른쪽은 이광구 우리은행장. 사진제공=우리은행
KB국민은행도 베트남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윤종규 KB금융 회장은 지난달 초 웅우엔 쑤언 푹 베트남 총리를 만나 국민은행 하노이 사무소의 지점 전환 등에 대해 베트남 정부의 협조를 요청했다. 해외 사무소는 영업 기능 없이 현지 금융정보 조사, 업무 연락 기능만 수행해 영업수익을 내기 위해서는 지점 전환이 필수적이다. 국민은행은 베트남에 호치민 지점, 하노이 사무소, 2개의 네트워크를 두고 있다.
KEB하나은행은 현재 하노이와 호치민에 각각 지점 1개, 호치민 사무소 1개, 총 3개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현지 비은행 금융기관의 지분 인수, 합작투자 등에 대해 지속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내 시중은행들이 베트남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국내 시장이 포화 상태이고 베트남의 성장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기 때문이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국내 금융시장, 특히 은행은 포화 상태라서 더 확장될 여지가 없다”며 “미국, 유럽, 중국 등은 성숙기에 접어든 시장이라 동남아시아를 염두에 두고 있는데 특히 베트남의 개발 성장성을 높게 보고 있다”고 전했다.
‘포스트 차이나’라고 불리는 베트남은 동남아 시장의 선두주자로 꼽힌다. 국내 기관 등에서도 베트남 시장에 대한 관심이 높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는 지난 1월 12일 <2017년 베트남 경제, 부진 딛고 재도약 노린다>란 리포트를 통해 “베트남 통계청의 집계 결과 2016년 한 해 동안 신규 설립된 기업 수는 역대 최대치인 11만 1000여 개였으며 잠정 휴업 상태에 있었던 2만 6000여 개 기업도 사업활동을 재개했다”며 “베트남 기업평가 전문기업인 베트남 리포트사가 베트남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조사 참여 기업의 95%가 향후 2년간 사업 규모를 확장하거나 확장할 계획이 있다고 응답했다”고 전했다. 베트남의 GDP도 해마다 6% 이상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베트남은 한국의 3대 수출 시장이기도 하다. KOTRA에 따르면 2016년 상반기 기준 대 베트남 수출 규모는 151억 7800만 달러(약 17조 5500억 원)로 중국 583억 7900만 달러(약 67조 7080억 원), 미국 343억 3100만 달러(약 39조 8170억 원) 다음이다. 앞의 시중은행 관계자는 “중국 현지 은행의 힘이 워낙 세졌고 경제성장률도 예전 같지 않다”며 “베트남은 국내 기업이 진출하는 규모에 비하면 금융 산업의 노하우가 부족해 국내 은행들에 기회의 땅이라 불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은행의 베트남 진출에 대해 우려의 시선도 있다. 국내 은행의 해외 진출 후 영업·사업에 실패한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2008년 카자흐스탄 센터크레디트은행(BCC) 지분 41.9%를 9541억 원에 인수하며 카자흐스탄에 진출한 국민은행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카자흐스탄 진출 직후 글로벌 금융위기 등의 영향으로 카자흐스탄 화폐 가치가 폭락한 것. 현재 국민은행이 보유한 BCC 지분의 가치는 1000원으로 떨어져 사실상 9541억 원 전액을 잃었다. 비단 BCC 사례가 아니더라도 상당수 국내 은행의 해외법인이 적자를 보고 있다.
은행권은 국내 은행들이 베트남에서 안정적인 수익을 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현지화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시중은행 다른 관계자는 “국가마다 특유의 금융환경이 있는데 시중은행들이 국내 금융환경을 그대로 해외에 적용하려고 했던 경우가 많았다”며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현지에 녹아내려 현지은행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신한은행은 베트남 현지화에 성공한 은행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사진은 신한은행 본점.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금융권에서는 베트남 현지화에 성공한 은행으로 신한은행을 꼽는다. 신한은행은 2009년 현지 법인인 신한베트남은행을 설립해 현재 18곳의 네트워크를 갖고 있다. 신한베트남은행은 2015년 565억 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한 데 이어 2016년 1~3분기에도 362억 원의 순이익을 올렸다. 신한은행에 따르면 신한베트남은행의 네트워크와 순이익 모두 베트남에 진출한 외국계 은행 중 1위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신한베트남은행 고객의 90%는 베트남인이며 교민이나 국내 기업만 상대해서는 이 정도 수익을 낼 수 없다”며 “국내에 있는 상품을 그대로 베트남에 옮겨가는 게 아니라 베트남 현지에 맞는 상품을 개발하고 현지에서 사회공헌활동도 꾸준히 하는 등 현지화에 힘써온 결과”라고 전했다.
각 은행 역시 베트남 현지화에 힘쓰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를 위한 은행들의 자세는 조금씩 다르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법인 설립을 통해 현지에 가까워지려 하고 있다”며 “현지 금융기관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단계적인 현지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고 전했다.
국민은행과 하나은행은 법인 전환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현지 기업과 네트워크를 구축해 현지화를 해나가는 게 목표”라면서도 “아직 법인 전환에 대한 계획은 없다”고 전했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한국계 은행 경쟁 현황, 베트남 당국의 인·허가 입장 등을 고려해 당장 법인화 계획은 없다”며 “현지 특화상품 개발을 통한 현지인 마케팅 강화 등 현지 손님 증대에 더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내 은행들이 베트남에 눈독을 들이자 신한은행은 베트남 시장 수성이라는 숙제가 생겼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지금까지 베트남 현지에서 잘 해왔고 선점이라는 강점을 갖고 계속 영업해 나가겠다”며 “앞으로 경쟁이 시작되겠지만 신한베트남은행이 닦아 놓은 현지화 역량이 하루아침에 따라잡히진 않을 것 같다”고 전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