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경기 의정부지방검찰청 고양지청은 서울 지역의 경찰서장인 A 총경을 뇌물수수 혐의로 입건했다. A 총경은 지난해 경기 지역의 일선서에서 근무할 당시 부하직원이었던 경감으로부터 승진 청탁을 받고 금품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금품을 건넨 것으로 의심되는 경감은 당시 경위였는데 올해 초에 경감으로 승진했다. 검찰은 이 경감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이 기각해 영장 재청구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고, 이 경감의 직위해제도 논의되고 있었다. A 총경 역시 입건되면서 경찰서장직을 수행하기 어려워진 상황이다.
경찰 내부에서는 “A 총경은 평소 청렴하기로 유명한 경찰인데 이번에 검찰 수사대상이 된 데에는 검경 수사권 조정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이철성 경찰청장의 측근이라는 점이 작용한 것 같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이에 검찰 관계자는 “영장 재청구 등 진행상황에 대해서는 말할 수 있는 부분이 없지만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와는 전혀 상관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문제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이철성 경찰청장이 강력하게 추진하던 수사구조 개혁의 일환이었다. 이 청장은 지난해 기자간담회에서도 “기본적으로 수사와 기소가 분리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수사구조 개혁과 관련해 검찰과 대립할 생각도 없고 검경의 갈등이 아니라 서로 논의해서 합리적인 대안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경찰청은 지난 2003년 수사권 독립안을 주장하며 수사제도개선팀을 만들었다. 수사제도개선팀은 수사권 조정에 관한 법률적 검토와 연구, 국회 대응 업무 등을 맡아 왔고, 지난 2011년에는 경무관이 단장을 맡는 수사구조개혁단으로 확대되기도 했다.
형사소송법 제196조 1항에는 ‘수사관, 경무관, 총경, 경정, 경감, 경위는 사법경찰관으로서 모든 수사에 관하여 검사의 지휘를 받는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 헌법 제12조 3항에는 ‘체포·구속·압수 또는 수색을 할 때에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하여야 한다’라고 언급된다. 현행법상 경찰은 수사를 진행할 때 검사의 지휘를 받으며, 검찰이 수사권을 갖고 있는 것이다.
대선 시기가 다가올 때마다 대선 주자 역시 앞다퉈 검찰 개혁을 위해 검경 수사권이 조정돼야 한다고 주장하곤 했다. 장미대선을 앞두고 있는 이번 대선주자들 역시 경찰의 수사권 독립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히며 경찰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수사권과 기소권 모두를 검찰이 가진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며 “경찰이 수사권을 독립적으로 가져야 수사의 주체로 자부심을 갖고 일할 수 있으며 검찰의 비리와 잘못을 제대로 수사할 주체가 생기게 된다”고 밝혔다. 이재명 성남시장 역시 검찰 부패의 개혁을 위해 검경 수사권을 조정해 권력을 상호 견제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은 바 있다.
검사 출신인 금태섭 민주당 의원이 검찰의 수사 지휘권을 축소하는 내용의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한 지방경찰청에서도 수사관들을 대상으로 ‘경찰수사 내부혁신’을 주제로 한 강연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황운하 경찰청 수사구조개혁단장은 “검사의 독점적 수사구조는 적폐를 양산한다. 검찰의 수사지휘권을 폐지하고, 검찰은 기소만 담당하도록 개혁해야 한다”며 “경찰은 인권친화적으로 수사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국민 신뢰를 얻으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검찰이 만든 프레임인 검찰과의 밥그릇 싸움으로 보여지면 안 된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강연회에서 경찰들은 검찰의 부조리를 보여주는 영화 <더 킹>을 관람하기도 했다.
한편 지난달 23일 전남의 한 경찰서장인 B 총경도 개인비리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검찰의 경찰 고위간부를 상대로 한 ‘표적 수사’라는 우려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B 총경은 지난해 의료계 불법 리베이트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의약품 도매업자로부터 수백만 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B 총경을 먼저 조사했던 경찰은 혐의가 없다고 판단했지만 검찰이 추가 조사를 진행해 체포했다. 경찰이 경찰을 조사하는 경우도 드물지만 경찰이 무혐의 판단을 내린 이후 검찰이 수사를 진행하는 것 역시 이례적이다.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다른 지역 내 지방경찰청 소속 경찰들 역시 긴장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지방청 소속 경찰관은 “조용히 지켜보고만 있는데 표적 수사로 생각된다”며 “검찰 내에서 총경급 이상 경찰들에 대한 자료 수집과 기자들에게도 경찰 비리 제보를 구하고 있다는 소리가 들리고 있다 직원들에 대한 자료수집을 지시했다는 말도 들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경찰 비리가 어제 오늘일은 아니다. 지난 1월에는 박건찬 경찰청 경비국장의 업무수첩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청와대가 경찰 인사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업무수첩 11개 쪽을 입수한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수첩에 적힌 인물들 가운데 김양제 경기남부경찰청장과 구은수 전 서울경찰청장, 채한철 전 서울경찰청 차장도 인사청탁을 한 것으로 추정되는 인사에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최영지 기자 yjcho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