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암 이응노미술관 이지호 관장
[대전=일요신문] 육심무 기자 = 대전의 대표적인 미술 브랜드로 자리매김한 고암 이응노 미술관이 개관 10주년을 맞아‘동아시아 회화의 현대화 : 기호와 오브제’를 주제로 국제전을 11일 개막해 6월 18일까지 진행한다,
또 12일에는 국내외 석학들을 초빙해 ‘한국-대만-일본 동양회화의 현대화’를 주제로 국제학술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수묵추상으로 동양화를 서양 미술계에 각인시킨 이응노 화백은 식민 지배와 한국전쟁 등 우리 민족의 시대적 아픔은 물론 이데올로기 대립의 희생양으로 평가되는 동백림 사건으로 2년6개월의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그의 작품에는 그가 살아온 시대의 아픔과 미래에 대한 희망과 통찰 등 시간적인 흐름과 충청과 나아가 한국의 아들로 태생적으로 함께하는 운명적인 공간이 작품에 새겨져 있다. 이응노 미술관 개관 10주년을 즈음해 이지호 관장에게 이응노 화백의 이모저모와 기념 전시회 등에 대해 물어봤다.
- 먼저 이응노 화백에 대해서 간략히 설명해 주신다면.
이응노 화백은 1904년 충남 홍성에서 태어나 1922년 해강 김규진 문하에 들어가 문인화를 배우며 미술의 길로 들어서 1924년 21살이 되던 해 제 3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청죽(晴竹)’으로 입선했습니다.
1935년 일본 남화의 대가인 마쓰바야시 게이게쓰의 덴코화숙(天香畵塾)에서 수학했으며, 가와바타미술학교(川端畵學校)와 혼고양화연구소(本鄕洋画硏究所)에서 동·서양회화를 공부하고 1945년 귀국한 후 왜색 청산을 통한 한국미술의 정통성 회복 운동을 벌였습니다.
또 서울에 고암화숙을 개설해 학생들을 가르쳤고, 홍익대학교, 서라벌예술대학에 출강했으며 1956년에는 동양화 기초를 해설한 ‘동양화의 감상과 기법을 출판했습니다.
프랑스 평론가 자크 라센느의 초청을 받아 은 후 1958년 51세의 나이에 프랑스로 건너가 당시 프랑스 미술계의 흐름이었던 ‘앵포르멜(informel)’ 회화 양식을 전통 필묵과 결합해 동양적 감수성이 가미된 새로운 추상을 창작했습니다.
1967년 동백림 사건에 연루돼 2년 6개월간 수감됐는데 옥중에서도 쉬지 않고 300여점의 작품을 남겼습니다.
1969년 사면 된 후 프랑스에서 왕성한 작품활동을 하다가 1989년 1월 서울 호암갤러리에서 열리는 회고전을 앞두고 심장마비로 별세해 파리의 ‘페르 라 세즈’ 시립묘지에 안장되었습니다.
- 이응노 화백의 작품의 특징은 무엇인지.
제가 서두에 이화백의 고향을 언급한 것은 예술가에게 고향은 예술의 근원이자 원초적인 굴레이기 때문입니다.
옥고를 치르고 나온 고암은 수덕여관을 매입해 이곳에 바위를 쪼아 암각화를 조각합니다. 이 암각화는 문화적 가치는 물론 당시 시대 정신이 각인된 어쩌면 유일한 대형 조각 작품일 수도 있습니다.
전통적인 문인화에서 벗어나 사물을 사실주의적 시각에서 탐구한 현실적 풍경화가 주를 이루던 작품은 점차 구상에서 벗어나 반-추상과 추상 작품으로 옮겨가기 시작했고, 대상의 사실적 모방에서 벗어나 스스로 ‘반추상적 표현’이라고 언급한 양식을 발전시켰습니다.
파리에 정착한 후 당시 프랑스 미술계의 조류인 ‘앵포르멜(informel)’ 회화 양식을 전통 필묵과 결합해 동양적 감수성이 가미된 새로운 추상을 창작했고, 콜라주 기법을 사용한 추상 작품을 대거 선보여 호평을 받았습니다.
고얌 국제전시회 관람객들
- 이응노 미술관 개관 10주년 기념 국제전이 열리고 있는데.
지난해 ‘이응노와 유럽의 서체추상’전에 이어서 이응노를 중심으로 중국, 대만, 일본 등 아시아 각국의 작가를 초청해 동아시아 회화의 전개 양상과 서구 현대미술에 대한 반향과 모색을 돌아보는 ‘동아시아 회화의 현대화 : 기호와 오브제’전을 마련했습니다.
한국미술연구소 수석 연구원으로 대만 국립타이난 예술대 문정희 교수를 협력 큐레이터로 초빙해 량췐, 양스즈, 마쓰오 에이타로, 양광자 그리고 오윤석 등 5명의 작가들 초청했습니다.
이들은 모두 종이라는 오브제를 공통으로 사용하여 서로 다른 외적 혹은 내재적 기호의 세계를 보여줍니다.
유럽의 앵포르멜 속에서 서예 문자가 지닌 동양성을 생각해 볼 때, 동아시아의 역사와 문화가 지닌 ‘기호’는 작가들에게 내적 조형의 세계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기호와 오브제의 출발점은 이응노의 <콜라주>(1962) 작품에서 시작했습니다,
그의 작품에서 나타난 서체가 지닌 ‘기호’의 추상성과 ‘오브제’로서 종이라는 물성이 콜라주 기법을 통해 실현되었습니다.
이러한 조형 의식은 이응노가 현대성에 도전하고 실험에서 얻은 조형 세계였고, 이번 기획전에 참가한 작가들은 모두 종이라는 공통된 오브제를 바탕으로 각기 다른 표현 방식의 다양성을 보여줍니다.
- 이응노 미술관 자체가 대전을 대표하는 건축미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우리 미술관은 건축미학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감히 말씀을 드릴 수 있습니다. 건축물과 전시실의 내부 소품까지 디자인된 ‘뮤제오라피’인 우리 미술관 건축물은 동양과 서양의 가옥 문화를 동시에 품고 있으며, 고암의 예술과 그의 생각을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아울러 대전의 문화의 중심인 만년동 잔디광장 내에 예술의 전당과 시립미술관 그리고 수목원관 함께 자리잡고 있어 대전 시민들을 위한 ‘예술 힐링의 낙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려한 건축물과 자연 환경 뿐만 아니라 이응노미술관에는 박인경 명예관장님께서 기증해주신 1,204점의 고암 작품이 소장되어 있습니다.
누구나 알고 있는 고암의 문자추상과 군상은 물론이고, 그 동안 외부에 소개되지 않았던 고암의 품격 넘치는 다양한 작업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 미술관은 그의 아호 그대로(돌아볼 顧, 집 庵) 고암의 예술혼이 담긴 집입니다.
설계자 로랑 보두엥( Laurent Beaudouin )은 미술관은 전시 작품이 가장 돋보일 수 있도록 설계돼야 하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완벽한 예술작품이어야 한다며 이응노 선생의 작품 세계를 온전히 반영하는 미술관이 될 것을 확신했습니다.
절제된 건축 어휘로 찬사를 받는 로랑 보두엥 씨의 대표작으로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프랑스 브장송 대학 도서관과 낭시 미술관을 들 수 있으며, 이응노미술관은 그가 설계한 동양권 유일의 작품입니다.
이지호 관장
- 관장으로 시민께 하고픈 말씀이 있으면.
과학과 문화의 융합을 통한 새로운 창조사회를 추구하는 지금, 이응노 미술관은 대전뿐만 아니라 21세기 우리나라의 문화를 대표하는 기관으로서 재단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 국제적인 수준의 미술관으로 발돋음 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파리에 남아있는 작품과 자료들도 모두 기록화해 고암 연구 자료의 기본적인 DB를 구축하고, 그 결과물들이 반드시 출판과 전시로 이어나가겠습니다.
특히 지역의 공공 미술관으로서 지역 미술과의 소통을 위해 젊은 작가 발굴 및 양성에 힘쓰고, 지역 미술사와 작가군 연구 및 고증을 통해 고암의 예술적 업적에 역사적 의미를 부여토록 하겠습니다.
1958년 고암이 새로운 예술을 찾아 미지의 땅 유럽에 발을 디뎠듯이, 이응노미술관은 고암의 예술이 새로운 세대와 만나고 미래의 시대로 이어질 수 있도록 그역할에 충실할 것입니다.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smyouk@ilyodsc.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