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농구 대표팀 감독 부임 이후 평가전에서 작전 지시하는 허재 감독. 연합뉴스
[일요신문] 농구·배구 등 겨울 스포츠가 시즌을 마친 뒤 휴식기가 한창이다. 휴식기에는 프로 경기는 열리지 않지만 국가대표 일정이 이어진다. 대한민국 남녀 농구·배구 국가대표 선수들은 이미 각종 국제대회에 참가중이거나 대회 준비에 한창이다. 리그를 마치고 이어지는 국가대표 일정이 매년 반복되는 일이지만 올해만큼은 달라진 분위기가 감지된다. 감독직에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농구와 배구계는 감독이 국가대표팀에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전임감독제 정착에 힘쓰고 있다.
# 남자농구 대표팀, 허재 감독 체제로 2019년까지
남자 농구 대표팀은 지난해부터 전임감독제를 전격 도입했다. 전임감독제 도입 이후 첫 지휘봉은 ‘농구대통령’ 허재 감독에게 맡겨졌다. 허 감독의 임기는 2019년까지다.
허 감독의 대표팀 입성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09년과 2011년에 이어 세 번째다. 그동안 대표팀 감독직은 국가를 대표하는 명예로운 자리지만 주인을 찾기 어려웠다. 매번 국제대회마다 그해 우승을 차지한 프로팀 감독이 임시적으로 지휘봉을 잡는 것이 관례처럼 내려왔다. 그러나 이번의 허재 감독은 임시 지휘봉이 아닌 임기가 보장된 전임 감독이다.
여자 대표팀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올해까지 WKBL 5연패를 달성한 위성우 아산 우리은행 위비 감독은 비시즌마다 수차례 대표팀을 맡아야 했다. 그는 지난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기도 했지만 프로팀과 대표팀 감독 겸직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농구협회는 허 감독에 이어 여자 대표팀 사령탑으로 지난 5월 15일 서동철 감독을 선임했다.
허 감독은 지난 2일부터 2017 FIBA 아시아컵 동아시아 예선에 참가했다. 첫 경기인 일본전에서 패하며 우려를 낳기도 했지만 결승 진출이라는 성과를 냈다. 현재까지 순항중인 ‘허재 호’이지만 결승 진출이라는 결과를 놓고 섣불리 판단하기는 이르다. 이번 대회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참가국들이 유망주급 선수들을 내세웠다. 대표팀이 농구 월드컵, 아시안게임 등 대규모 대회를 치르지 않아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대한농구협회 관계자도 “아직까지 협회 내부에서 대표팀 성적을 두고 공식적으로 평가를 내린 적은 없다”고 말했다. 전임감독제 도입에 따른 실익 계산은 시간이 더 흐른 뒤에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남자 대표팀과 달리 여자 대표팀을 놓고는 이름만 전임감독제라는 비판이 오간다. 임기를 단 2개월로 제한했기 때문이다. 서동철 감독은 지난 5일부터 선수들을 소집해 7월 23일부터 인도에서 열리는 FIBA 월드컵 예선 대비에 돌입했다.
전임감독제 전격 도입에는 국제대회 진행 방식의 변화도 한몫했다. 농구월드컵 예선 홈앤어웨이 경기가 KBL 시즌 중에도 열리게 되자 불가피하게 전임감독을 임명하게 된 측면도 있다. 이 같은 사유가 없는 여자 대표팀은 여전히 불완전한 전임감독제가 계속되고 있다.
농구협회 관계자도 “월드컵 예선 경기 방식 변경이 전임감독제 도입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게 사실이다. 여자팀도 그런 변화가 있다면 정해진 절차에 따라 전임감독제가 도입될 것”이라고 말했다. 임기가 짧은 현재 여자 대표팀 감독에 대해서는 “남자팀 같은 임기는 보장할 수 없지만 이전처럼 프로팀 감독이 대표팀도 동시에 맡는 일은 최대한 지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남녀 배구 대표팀 감독은 모두 올해까지
남자 배구 대표팀도 국제대회가 진행되고 있다. 대표팀은 지난 2일부터 3일간 월드리그 서울시리즈에서 체코, 슬로베니아, 핀란드 등 유럽 강호를 상대로 2승 1패를 기록했다. 이번 결과는 문성민, 전광인, 한선수 등 V리그 대표 선수들이 빠진 상태로 이룬 성과라 더욱 값졌다.
지난 2일부터 열린 월드리그 서울시리즈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김호철 감독. 연합뉴스
배구계도 그동안 농구와 유사하게 대표팀에 ‘투잡’ 감독들이 많이 드나들었다. 대표팀과 소속팀 감독을 동시에 소화했던 이정철 IBK 기업은행 감독은 겸직에 대해 “소속팀 선수에게 ‘못할 짓’”이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대한배구협회 관계자는 “그동안 우수 지도자가 프로에 몰려있다보니 겸직이 많았다”며 “앞으로는 대한체육회 지침에 따라 공모절차를 거치기 때문에 그런 상황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여전히 남녀 배구대표팀은 ‘반쪽짜리’ 전임감독제가 시행중이다. 겸직은 하지 않지만 남녀 팀 모두 임기가 올해까지다. 장기적 계획 아래 팀을 운영하기가 어렵다.
# 전임감독제 전면도입 주저 이유는?
농구와 배구 모두 전임감독제 도입에 애를 먹은 이유 중 하나로 ‘돈’이 꼽힌다. 그간 1년 중 2개월에서 3개월 정도 운영되는 대표팀에 많은 돈이 투자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표팀에서 활약하는 선수나 코칭스태프는 소집 기간에만 수당 명목으로 보수를 받았다. 선수들은 각자 소속팀에서 연봉을 받지만 감독은 소집 기간을 제외하면 생계유지에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수당 외에 연봉 등을 챙겨주기 어려운 농구·배구협회의 주머니 사정이 전임감독제 도입을 막고 있었다.
남자 배구 대표팀은 지난해 대표팀을 맡고 있던 감독이 프로팀의 러브콜을 받고 소속을 옮기는 일이 있었다. 금전적으로 안정적인 직장을 택한 사례다. 이에 배구협회는 임시방편으로 대표팀 감독 계약서에 ‘임기 내 이적 금지’ 조항을 넣기도 했다.
농구협회 관계자도 “보수 지급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이를 일부 인정했다. 그럼에도 농구협회는 지난해부터 허재 감독을 전임으로 임명하는 결단을 내렸다. 감독 보수 문제를 어느 정도는 해결한 것으로 보인다. 농구협회는 허 감독 계약 조건을 묻는 질문에 “선임 당시에도 비공개로 했고 현재도 내용을 밝힐 수는 없다”고 답했다.
배구도 사정은 비슷했다. 배구협회 관계자는 “여러 차례 전임감독제 도입 시도가 있었지만 금전적 문제에 부딪혔다”고 설명했다. 배구협회는 서병문 전 회장이 지난해 12월 대의원총회에서 해임된 이후 비상대책위원회 체제가 이어지고 있다. 서 전 회장은 취임 당시 전임감독제를 주요 공약 중 하나로 내걸었지만 끝내 이루지 못하고 인사 시스템과 재정문제 등을 이유로 해임됐다. 배구 대표팀 전임감독제가 도입되려면 배구협회 정상화가 선결과제다. 협회 관계자도 이를 인정했다. 협회 관계자는 “전임감독제나 현 감독 재계약 논의 등은 새로운 집행부가 먼저 들어서야 논의될 수 있을 것 같다”면서 “현재 협회는 대표팀 성적을 위해 최대한 지원하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농구와 배구계가 전임감독제를 도입해 대표팀 성적 향상을 노리는 목적은 결국 리그 흥행에 있다. 지난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내고 국내 리그에서도 성공을 이어간 야구의 행보를 따라가려 하는 것이다.
야구계도 지난 3월 전임감독제 논의가 활발했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야구 국가대표팀이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내자 위기의식이 엄습했다. 일부에선 이를 타개할 대책으로 전임감독제 도입 목소리를 냈다. 단일 대회를 위한 ‘원포인트’ 감독보다는 장기적 계획을 가지고 국가대표 경쟁력을 올릴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