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국회의원이 되려고 하십니까?”
“왜 국회의원이 되려고 하냐구요? 보통사람이면 어떤 말을 해도 누가 들어줘요? 신문에 단 한 줄이라도 납니까? 안 나죠. 그런데 국회의원이 되어 의정단상에서 말을 하면 말의 가치가 전혀 달라져요. 그래서 난 나이를 먹었어도 국회의원이 되려고 해요. 그래야 남들이 날 깔보지 않는다구.”
얼마 후 국회의원이 된 그가 국방위원회에서 후배인 현역장군들을 향해 호통을 치는 모습이 방송에 흘러나왔다. 민망할 정도로 별이 번쩍거리는 장군들을 휘몰아치는 것 같았다. 변호사 출신으로 세 번째 도전해서 국회의원이 된 선배가 있었다. 그에게 왜 국회의원이 되려고 하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는 비아냥이 담긴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했다.
“4개월 고생하고 4년을 왕같이 지낼 수 있지. 책임지는 일도 없고 말이야. 그걸 왜 안 해?”
그는 솔직한 답변을 했다. 많은 동료나 후배 변호사들이 마치 나방이 불에 달려들 듯 정치권을 기웃거린다. 그런 사람들의 말을 듣고 있다 보면 벙글벙글 웃는 마네킹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영혼이나 철학이 없이 오직 금뱃지 그 하나를 위해 뛰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장관출신 국회의원후보와 밥을 먹는 자리였다. 그가 스마트폰을 들더니 즉석에서 나와 함께 있는 셀프사진을 찍었다. 매일 만나는 사람들마다 사진을 찍어둔다는 것이다. 나는 그의 스마트폰 갤러리 속에서 자신을 지지하는 잠재적인 표이거나 후원자로 분류될 것 같았다.
그가 내 앞에서 활짝 웃는 탈 같은 모습을 보면서 그 뒤의 진짜얼굴은 어떤 것일까 궁금했다. 한 달에 한 번씩 법조선후배들의 모임에 나간다. 지난날 정권의 핵심에서 일 한 화려한 정치경력을 가진 분들이 많다. 한 선배가 밥을 먹다가 이런 말을 했다.
“양 김씨가 야권을 지휘하던 전두환 시대에 말이야 야당지도부가 의원들을 데리고 국회를 떠나 거리로 나가면 언론은 그걸 민주화투쟁이라고 대단하게 보도했지. 전 국민들은 흥분을 해서 그들에게 박수를 치고 말이야.”
우리들은 신문에서 그럴 때면 정국이 경색되고 나라가 흔들린다는 언론의 보도를 보고 혀를 차고 걱정을 했었다. 그게 서민들이 가지는 의식이었다. 선배가 말을 계속했다.
“야당 지도자들이 국회를 떠나 거리투쟁을 전개하면 여당은 전부다 미소를 흐리면서 좋아했어. 여당이 과반수를 차지할 때니까 야당이 없을 때 그동안 밀린 법안을 전부 통과시켜 버리는 거지. 거리에서 야당지도자나 의원들은 날치기통화니 뭐니 하고 떠들면서 열심히 투쟁하는 모습을 신문에 내고 말이야. 법이 통과되고 국회가 정리되면 정권에서는 야당지도자에게 두둑하게 돈을 보냈어. 그러면 야당지도자들은 그 돈을 계파별로 나누어 주고 계파를 관리하게 했었어. 정치를 그때는 그렇게 했었지.”
야당은 투쟁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명분을 얻고 권력의 핵심과 여권은 실리를 얻는 다는 것이었다. 정치란 그렇게 합작해서 철저히 국민을 속이는 것이었던가 하는 실망감이 들었다. 국민이란 단어와 여론이라는 말은 숭고해 보이지만 현실에서는 별별 소리가 다 섞여서 흘러가는 혼탁한 물결 같은 존재다. 정치는 그런 물의 흐름을 파악하고 그 심연에서 올라오는 소리를 간파하는 사람들이 해야 하지 않을까.
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