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쇼핑 끊기’성공 노하우를 책으로 낸 주디스 레빈. | ||
그녀가 ‘쇼핑 없는 1년’을 시작하기로 마음 먹은 것은 지난 2003년 크리스마스 시즌 무렵이었다. 당시 으레 그랬던 것처럼 가족과 친구들에게 줄 선물을 한아름 사들고 거리를 걷고 있던 그녀는 쇼핑백을 진흙탕에 빠뜨리고는 망연자실한 채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게 도대체 다 뭐지. 소비가 내 인생에서 차지하는 역할은 무엇일까.”
순간 그녀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순식간에 1000달러(약 100만 원)를 펑펑 쓴 자신의 모습을 보고 허무함을 느꼈다. 마치 송유관에서 쉴 새 없이 석유를 퍼내는 것처럼 현금지급기의 버튼을 누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처량하게만 느껴졌던 것.
마침내 1년 동안 쇼핑을 하지 않기로 마음 먹은 그녀는 곧 실천에 들어갔다. 실천에 앞서 그녀가 가장 먼저 실시한 것은 앞서 말한 대로 필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는 일이었다. 함께 동거하고 있는 파트너 폴 칠로와 머리를 맞대고 쇼핑할 품목을 작성하는 일만 해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가령 집에서 만들어 먹기 위해 필요한 음식 재료는 아무리 값이 비싸더라도 반드시 필요한 것인 반면 밖에 나가서 사 먹는 음식이나 냉동 식품은 아무리 싸도 사치에 불과했다. 물론 옷을 사 입거나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는 일도 중단했다. 대신 집에서 만들어 마셨으며, 친구들과의 약속도 공원을 산책하거나 집으로 초대해서 식사를 대접하곤 했다.
생필품 중에서도 굳이 필요하지 않은 면봉과 같은 자질구레한 물품은 사지 않았다. 헬스 센터나 초고속 인터넷도 모조리 끊었다.
아무리 보고 싶은 영화가 있어도 극장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으며 도서관에서 볼 수 있는 무료 영화만 관람하면서 여가를 즐겼다.
부득이하게 친구들과 레스토랑에서 만나야 할 경우에는 친구들이 음식을 먹는 동안 멀뚱멀뚱 쳐다 보고만 있었다. 이런 모습을 본 몇몇 친구들은 화를 내기도 했다.
와인의 경우에는 레빈과 칠로의 의견이 팽팽히 대립됐다. 와인 없이는 살 수 없는 이탈리아 출신의 칠로와 달리 레빈에게 와인은 그저 사치스런 호사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결국 이들은 집에서 와인을 만들어 마시기 시작했으며, 지금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자 즐거움이 됐다.
물론 이런 생활이 즐거운 것만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힘이 들고 짜증도 났다. 어떨 때는 생활이 지루하고 의욕이 생기지 않았으며, 안절부절하지 못하거나 자신이 바보스럽게 느껴질 때도 많았다. 옷은 점점 누더기처럼 변해가고, 자신만 유행에 뒤처진 듯 촌스럽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렇게 보내기를 1년. 어느덧 이런 생활에 익숙해졌다고 말하는 레빈은 “이제는 레스토랑 자리를 잡기 위해서 혹은 영화를 보기 위해서 쓸데 없이 줄을 설 필요가 없어졌다. 길에서 시간을 허비하는 대신 칠로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아졌으며, 자연히 서로 대화할 기회도 많아졌다”고 말한다. 이로 인해 둘 사이가 더욱 돈독해진 것은 물론 도서관에서 무료 영화를 보면서 “우리의 시간이 정말 우리 것 같았다”는 느낌을 받아 뿌듯했다고 말했다. 또한 놀랍게도 둘은 쇼핑을 끊은 1년 동안 단 한 번도 돈 문제로 다투지 않았다.
변화는 비단 그뿐만이 아니었다. 과식을 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요 평소 즐겨 먹던 초콜릿도 끊자 몸무게도 현저히 줄어들었다. 가족이나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하는 일이 잦아지자 자연히 남을 위해 베푸는 너그러운 마음도 갖게 됐다.
소비 습관도 백팔십도 달라졌다. 그후로 단 한 번도 충동 구매란 것을 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그녀는 “우리 생활에서 소비자로서의 역할을 제외하면 보다 많은 시간과 열정을 주변 사람들에게 그리고 사회에 기여할 수 있게 된다”고 말한다. 가령 공공 도서관과 같은 공중 시설을 많이 이용하게 됨으로써 사회에 대한 책임감과 함께 고마움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현재 실험 기간에 비해서는 많이 여유로워졌지만 여전히 절제된 생활을 하고 있는 그녀는 뉴욕에서 ‘단순히 살기 운동’에 참여하고 있으며, 올바른 소비 문화가 가져다 주는 이로움에 대한 자문 역할을 하고 있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