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박 양의 3차 공판이 열린 인천지법의 법정
지난 17일 인천지법 제15형사부(부장판사 허준서) 심리로 열린 ‘인천 초등생 살인사건’의 공범 박 아무개 양(18·재수생, 구속기소)의 재판에서는 박 양의 혐의 확정이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다. 검찰은 사건의 주범인 김 아무개 양(16·구속 기소)이 지난달 23일 박 양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박 양이 범행을 교사했다”고 증언한 것을 토대로 살인교사 혐의에 대한 증거를 제시하고자 했다. 박 양과 김 양이 활동했던 캐릭터 커뮤니티 활동 내역을 확인하고, 박 양의 살인교사를 입증하기 위해 김 양의 진술조서를 제출하는 한편, 증인으로 다음 재판에 김 양을 소환할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다.
그러나 재판부의 뜻은 달랐다. 재판부는 “이 재판에서 현재 심판대상은 (박 양의)살인방조 혐의인데, 죄명 변경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변경을 예상한다’는 이유로 증인신청을 하는 건 이상하다. 심판대상을 먼저 확정해 달라”고 요구했다.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수사를 할 수 없으니 먼저 공소장 상의 혐의인 살인방조를 살인교사로 변경한 뒤에 이를 입증하라는 것이다.
검찰 측은 즉각 반박했다. 담당 검사는 “(살인교사 혐의 관련) 수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공소장부터 변경하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현재 김 양이 살인교사와 관련해 진술한 조서도 제출하지 못했기 때문에 차선으로 김 양을 증인으로 출석시켜 대질을 하자는 것”이라고 밝혔다.
재판부와 검찰의 의견 차가 좁혀지지 않는 상태에서 박 양의 변호인이 가세했다. 변호인 측은 “이 사건은 이미 공소장에 방조로 결정됐는데 이와 관련해서는 이미 이전 재판에서 충분히 소명했다. 검찰의 공소사실 변경 가능성은 모두 잠재적인 가능성일 뿐인데 그걸 현실적인 심판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될 것”이라고 반박했다. 공소장 변경 없이 ‘가능성’만으로 확정되지 않은 혐의에 대한 증인 신문을 하는 것은 형사소송절차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재판부도 동의했다. 재판부는 “이런 사례는 이제까지의 판례에서도 없다”라며 살인교사로 공소장을 변경하지 않는 이상 김 양의 증인신문이 이뤄질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 박 양의 재판은 검찰이 박 양에 대해 공소장을 변경해 살인교사 혐의를 확정할 것인지에 따라 진행 양상이 바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검찰은 박 양이 김 양과 캐릭터 커뮤니티 활동 이후 지속적으로 개인적인 대화를 나눴던 트위터 DM(다이렉트 메시지, 쪽지)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미 박 양이 DM을 전부 삭제했지만 미국 법무부에 수사 협조 요청을 보내 서버 상에 남아있는 DM과 비공개 대화 내용 복구를 요청한 것. 현재 미국 법무부에서 트위터 본사에 영장을 제시했고, FBI가 관련 자료를 넘겨받아 확인 후 우리 검찰 측에 제출하게 된다.
이들의 DM과 비공개 대화 내용에서 박 양이 김 양에게 살인을 교사하거나, 김 양에게 폭력적인 또 다른 인격이 있고 이를 범죄에 활용하라고 지시했다는 증거가 나올 경우 박 양의 살인교사 혐의로 공소사실이 변경될 가능성이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박 양이 지속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김 양과 나눈 대화는 모두 가상 세계(캐릭터 커뮤니티)상의 대화”라는 점이 받아들여질 지 여부다. 박 양은 이 사건과 관련한 김 양과의 대화를 가상으로 인식하고 있었고, 여느 때와 다름없는 역할극을 했을 뿐인데 김 양이 혼자서 이를 현실과 혼동해 범행을 했다는 요지로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다.
김 양과 박 양이 지난 1월부터 2월까지 활동했던 트위터 기반 캐릭터 커뮤니티의 로고
그런데 김 양이 이 캐릭터 커뮤니티 상의 역할극 놀이에만 심취해 범행에 이르게 됐다고 한다면 다소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이 생긴다. 이 커뮤니티에서 박 양은 마피아 조직의 중간보스, 김 양은 오른팔 격인 조직원 역할을 했는데, 이들은 상대 조직과의 세력전을 벌이는 방식으로 역할극을 진행했기 때문이다. 어디에도 “어린 아이를 살해”한다거나 “보스에게 살해한 시신의 일부를 바친다”라는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김 양의 캐릭터가 박 양의 캐릭터로부터 지시를 받는 입장이었다고 하더라도 이들이 이입한 캐릭터 설정과 범행 성격이 맞지 않아 교사 혐의를 입증하기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박 양의 캐릭터 그 자체에 접근을 하면 이번 사건과의 접점이 보인다. <일요신문>의 추가 취재 결과 박 양은 이 마피아 커뮤니티에서 사용한 캐릭터를 다른 캐릭터 커뮤니티에서도 사용했는데, 당시 이 캐릭터의 설정은 ‘사이비 종교’의 교주와 비슷한 지위에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박 양은 실제 이 캐릭터 설정을 구축하기 위해 “친구가 다니는 사이비 계열 교회를 다녀왔다”고 밝히는 등 구체적인 자료 수집에 까지 나섰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박 양이 자신의 트위터에 “XXX(박 양의 캐릭터)는 인육을 먹고 선호하는 특정 신체 부위가 있다”라고 글을 올린 것은 마피아 커뮤니티 내에서의 설정이 아니라 ‘사이비 종교 교주’라는 박 양 캐릭터의 또 다른 설정인 것이다. 김 양 역시 박 양의 이 같은 추가 설정을 지난 2월 2일 박 양으로부터 전해들은 것으로 확인됐다.
박 양이 개인 트위터 계정으로 게시한 자신의 캐릭터 설정.
박 양은 이미 김 양이 캐릭터 커뮤니티에 깊이 심취해 있었고, 자신에게도 정신적으로 매우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점이 재판 과정에서 드러났다. 그런 김 양에게 그가 심취한 자신의 캐릭터, 즉 살인을 교사하고 시신의 일부를 가져오도록 요구하는 설정을 계속 주입시켰다면 박 양에게 실질적인 교사의 책임을 물을 가능성이 높아질 수도 있다.
다만 이 같은 정황 증거 외에 박 양이 명확하게 교사했다는 증거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검찰 측은 교사 대신 살인 방조 혐의에서 박 양의 구체적인 역할에 대해 입증한다는 방침이다. 박 양이 범행을 어느 정도로 인지했는지, 범행을 인지한 상태에서 이를 적극적으로 방조한 것인지 여부를 살피겠다는 것이다.
검찰은 트위터 본사에서 사건 자료를 건네받는 대로 공소장 변경 여부를 확정해 박 양의 재판에 김 양을 증인 신청할 계획을 밝혔다. 트위터 본사 수사 협조에 따른 자료 수집이 늦어도 7월 말까지 완료될 것을 감안, 박 양의 다음 재판은 8월 10일 오후 2시에 열린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