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폴크스바겐 인사담당 페터 하르츠 회장(왼쪽)과 클라우스 폴커트 전 노조위원장. | ||
스캔들의 중심에 있는 인물은 폴크스바겐의 실질적 주인으로까지 불리며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던 전 노조위원장 클라우스 폴커트(63)다. 회사 이사회 감사직도 맡고 있던 그는 지난 15년간 폴크스바겐 노조를 이끌었으며, 주 4일 근무제 도입 등을 이루면서 독일 노동계의 거물로 존경받던 인물이다.
이처럼 노동자의 편에 서 있는 줄로만 알았던 그가 하루아침에 대형 비리 사건에 휘말려 퇴진한 사실은 실로 충격적이었다. 게다가 회사 간부들에게 막대한 금품과 함께 심지어 고급 접대부까지 정기적으로 제공받았다는 사실에는 그저 기가 막힐 따름이다.
사건의 발단은 엉뚱한 곳에서 시작됐다. 지난해 6월 독일의 은행인 ‘코메르츠방크’가 퇴사한 사원의 컴퓨터에서 기이한 문서를 발견했다. 이 문서는 이 사원이 어떤 기업의 합병 시도에 개입되어 있다는 내용이었으며, 여기에는 체코의 자동차 회사인 ‘스코다’의 인사 책임자 헬무트 슈스터와 폴크스바겐의 몇몇 인사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렇게 시작된 수사는 시작에 불과했다. 그 후 수사를 거듭할수록 어마어마한 비리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속속 드러났기 때문이다.
우선 조사 결과 슈스터가 ‘F-BEL’이라는 작은 회사의 경영에 깊이 관여되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회사는 ‘스코다’의 본사가 들어설 소규모 자동차 도시를 만드는 사업에 입찰한 상태였으며, 결국 슈스터가 사업권을 따내기 위해서 위장 회사를 차린 후 불법으로 수주 활동을 벌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결국 슈스터는 해고됐고, 폴크스바겐의 인사 담당자였던 클라우스 요아힘 게바우어 역시 이 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회사를 떠나야 했다. 폴커트도 마찬가지. ‘F-BEL’에 관여한 사실이 밝혀지자 그는 자진해서 은퇴를 선언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자신이 해고되자 앙심을 품은 게바우어가 폴크스바겐의 비리들을 하나둘 폭로하기 시작한 것. 폭로의 주된 내용은 “폴크스바겐의 간부진이 노조 대표들을 돈과 여자로 매수했다”는 것이었다. 검찰의 수사 방향은 급선회했으며, 수사 결과 드러난 비리 내용은 실로 놀라웠다.
전 세계 노조 대표 모임이 있을 때마다 노조 대표들은 비행기 1등석은 물론 회사 전용기를 제공받기도 했으며, 최고급 호텔에 묵거나 심지어 고급 창녀들을 접대받기도 했다. 또한 배우자들은 공짜 비행기 티켓은 물론, 귀금속이나 명품 옷, 혹은 수천 유로 상당의 상품권을 받아 쇼핑을 하기도 했다.
이런 모든 일을 도맡아 계획하고 주선한 장본인이 바로 노조 대표들 사이에서 ‘오락부장’으로 통하던 게바우어였다. 지난 10년 동안 노조 대표들의 여행과 모임을 주선했던 그는 회사 돈을 마구 뿌리고 다녔으며, 회사에 영수증을 제출할 때에는 자체적으로 영수증을 만들어 낼 정도로 이런 일에는 선수였다.
▲ 폴커트의 내연녀인 방송기자 바로스. | ||
이런 식으로 폴커트가 회사에서 부당하게 받은 특혜는 자신도 일일이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은퇴할 당시 그의 연봉은 약 36만 유로(약 4억 원)였으며, 여기에 매년 비밀리에 수십만 유로의 보너스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그의 후임인 베른트 오스테를로 현 노조위원장은 월 6500유로(약 800만 원), 즉 폴커트 연봉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7만 8000유로(약 9600만 원)의 연봉을 받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해외 출장 때마다 폴커트는 매춘 관광을 일삼았으며, 부인이나 정부에게 선물할 귀금속이나 옷을 살 때에도 전부 회사 공금을 사용했다.
특히 그는 자신의 오래된 정부인 브라질 출신의 방송 기자 아드리아나 바로스와 함께 회사 출장을 가장한 밀월 여행을 자주 즐겼다. 여러 차례 폴커트의 해외 출장에 동행했던 그녀는 명목상으로는 폴커트의 사적인 업무를 돕기 위해 동행하는 것이었다. 여행 경비는 게바우어가 모두 회사 공금으로 대주었으며, 이는 또한 폴커트의 부인 몰래 이루어진 외도이기도 했다.
특히 바로스는 지난 2000년 인사담당 회장인 페터 하르츠의 권유로 폴크스바겐 노조 위원들의 아동복지 자문을 맡아 회사로부터 분기별로 2만 3008유로(약 2800만 원)를 받았다. 별달리 하는 일은 없었지만 꼬박꼬박 지불된 그녀의 월급은 회사에는 잡비로 올라갔으며 사내에 이런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폴커트는 또한 출장을 다닐 때마다 부인 몰래 교묘하게 일정을 속이곤 했다. 게바우어에게 거짓 일정을 짜게 하고 비서진들에게는 노조원들이나 정치인들과의 회동이 있는 것처럼 꾸미도록 했다. 일정 중 ‘자유 시간’은 늘 ‘업무 회의’나 ‘회사 미팅’으로 바꿔 표시됐다.
탈선은 출장 때에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브라운슈바이크에 위치한 ‘게스트 하우스’는 폴크스바겐 노조 대표들이 정기적으로 접대부들과 만나는 접선 장소였다. 이 아파트는 사실 게바우어가 전 세계 폴크스바겐의 노조 대표들이 독일을 방문할 때 묵도록 하기 위해 임대한 것이었다.
3만 1000유로(약 4000만 원)의 돈을 들여 리모델링까지 마친 이 아파트는 하지만 전혀 다른 용도로 사용되었다. 폴커트와 게바우어는 매춘부들과 함께 성대한 개관 파티까지 열었으며 그후 몇 개월 동안 폴커트의 ‘은밀한 장소’로 이용되었다. 심지어 인사담당 하르츠 회장도 매춘부와 함께 이곳에 들른 적이 있을 정도. 검찰의 조사 결과 이곳에서 노조 대표들이 ‘정상적으로’ 묵고 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처럼 일파 만파로 퍼진 이번 비리 사건은 비단 폴크스바겐 한 회사의 문제로만 그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앞서 말한 독일의 노사 제도를 전반적으로 뜯어 고쳐야 한다는 개혁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부정 부패를 저지른 간부들과 노조 대표들은 처벌을 받아 마땅하지만 그 어느 나라보다 노동자의 목소리가 강한 독일의 노사 시스템이 위험에 처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많은 독일인들은 부와 권력 앞에서는 누구든 자유로울 수 없다는 생각에 씁쓸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