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축구 전문가 줄리앙 로랑이 이렇게 묘사한 파리 생제르망(PSG)의 공격수 우스만 뎀벨레(28)가 긴 침묵 끝에 마침내 빛을 발했다. 지난 9월 23일, 파리 샤틀레 극장에서 열린 발롱도르 시상식에서 최고의 선수에게 주어지는 발롱도르를 수상한 것. FC 바르셀로나의 라민 야말(18), PSG의 동료 선수인 비티냐(25) 등 쟁쟁한 경쟁자들을 제치고 그가 수상자로 선정되자 축구팬들과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놀랍다는 반응이 쏟아져 나왔다. 10대 시절 손꼽히는 유망주였던 그가 한동안 먹튀 논란과 인성 논란에 시달리면서 20대 대부분을 암흑기 속에서 보냈던 까닭이었다. 20대 후반의 비교적 늦은 나이에 만개한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마침내 때가 왔다’며 고개를 끄덕이는 한편, 늦게라도 제자리를 찾았다며 환호와 갈채를 보내고 있다.
한때 먹튀로 비판받던 우스만 뎀벨레가 9월 23일 발롱도르를 수상하며 유럽 최고의 축구선수로 우뚝 섰다. 사진=EPA/연합뉴스2024-2025 시즌 뎀벨레의 커리어는 그야말로 정점을 찍었다. 53경기에 출전해 35골 16도움을 기록해 프랑스 리그1 공동 득점왕에도 올랐다. 또한 팀이 전성기를 구가하는 데 있어서도 그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었다. PSG의 트레블, 즉 정규리그 우승, 프랑스컵(쿠프 드 프랑스) 우승, 유럽챔피언스리그(UEFA) 우승을 이끈 주역이었으며, 여기에 더해 프랑스 슈퍼컵(트로페 데 샹피옹)까지 안겼다. 특히 챔피언스리그 우승은 PSG 역사상 최초로 거둔 쾌거였기에 더욱 의미가 있었다.
팀의 핵심 공격수로서 혁혁한 공을 세운 뎀벨레가 발롱도르를 수상하자 파리의 축구팬들은 일제히 환호했다. 파리의 거리는 이제 네이마르나 킬리안 음바페 대신 뎀벨레 이름과 등번호 10이 새겨진 PSG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다. 더욱이 프랑스 출신 선수로서는 통산 여섯 번째(1958년 레이몽 코파, 1983·1984·1985년 미셸 플라티니, 1991년 장 피에르 파팽, 1998년 지네딘 지단, 2022년 카림 벤제마) 수상이라는 점에서 파리 시민들의 자부심은 하늘을 찔렀다. 지금까지 프랑스보다 발롱도르 수상자를 더 많이 배출한 나라는 없었다.
사실 뎀벨레의 발롱도르 수상이 화제가 되고 있는 이유는 단순히 그의 출중한 실력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유망주에서 퇴물 선수로 전락했다가 다시 극적으로 부활에 성공한 드라마틱한 사연이 있기 때문이다.
세네갈 출신 어머니와 말리 출신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뎀벨레는 프랑스 노르망디 베르농의 이민자 가정 출신이다. 아버지는 아마추어 축구선수였으며, 삼촌인 바두 삼바게 역시 프로 축구선수였기에 어릴 때부터 자연스레 축구선수 꿈을 키웠다.
2015년, 18세 때 프랑스 북서부 렌의 ‘스타드 렌’에서 프로로 데뷔했으며, 첫 시즌 29경기에 출전해 12골을 넣으면서 신인상을 수상했다. 당시 단장이었던 미카엘 실베스트르는 그를 가리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이후 가장 흥미로운 유망주”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듬해 프리미어리그의 제안을 거절하고 독일 분데스리가로 건너간 그는 도르트문트로 이적해 한 시즌을 뛰었고, 2017년 8월에는 꿈에 그리던 FC 바르셀로나로 이적하는 데 성공했다. 당시 그의 이적료는 1억 7500만 유로(약 2880억 원)였으며, 이는 2억 2200만 유로(약 3600억 원)의 이적료를 기록했던 네이마르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이적료였다. 당시 바르셀로나 감독이었던 사비 에르난데스는 “뎀벨레를 제대로만 활용한다면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내비쳤다.
뎀벨레는 2024-2025 시즌 35골을 몰아넣으며 PSG의 트레블을 이끌었다. 1월 29일 슈투트가르트와의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 골을 넣고 환호하는 뎀벨레. 사진=DPA/연합뉴스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바르셀로나에서 뛰었던 6시즌 내내 뎀벨레의 성적표는 초라하다 못해 참담하기 그지없었다. 총 185경기에 출전해 40골을 넣는 데 그쳤으며, 결장일은 총 784일에 달했다. 이유는 잦은 부상과 불성실한 태도 때문이었다. 햄스트링, 발목 등 부상이 끊이지 않았고, 근육 부상만 14차례 겪었다.
선수로서 임하는 태도 역시 불량했기에 종종 주전 명단에서 제외되기 일쑤였다. 플레이스테이션 게임을 하느라 밤을 지새우는 날이 많았고, 늦잠을 자느라 훈련에 지각하는 날도 부지기수였다. 자기관리가 안 되다 보니 식단을 챙기는 일 또한 소홀했으며, 이는 다시 잦은 부상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계속됐다.
이에 곧 그에게는 ‘먹튀’라는 꼬리표가 붙기 시작했다. 비싼 이적료를 지불하고 데려왔건만 그에 걸맞은 실력을 보여주지 않자 실망한 팬들은 그를 조롱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결국 그는 2023년 8월, PSG로 헐값에 팔려갔다. 당시 이적료는 바르셀로나로 이적할 때의 절반 수준인 5040만 유로(약 830억 원)였다. 하지만 당시 PSG 측은 되레 “아직 전성기에 도달하지 않은 선수를 저렴한 가격에 영입했다”고 밝히면서 흡족해 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프랑스 선수 비중을 늘리려던 구단의 방향성과도 맞아 떨어졌기에 괜찮은 거래였다.
PSG 유니폼을 입고 뛴 첫 번째 시즌에서 뎀벨레는 6골 14도움을 기록하긴 했지만 주전은 아니었다. 그에게 이렇다 할 기대를 거는 팬들도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이적 후 1년이 지나가면서 서서히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몇 가지 전환점이 되는 사건들이 하나둘 퍼즐처럼 맞춰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먼저 지난해 아스널과의 챔피언스리그 원정 경기 명단에서 자신의 이름이 제외되자 뎀벨레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당시 루이스 엔리케 감독은 “누군가 팀의 기대를 따르지 않거나 존중하지 않는다면, 경기를 뛸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뜻이다”라면서 뎀벨레를 데려가지 않았다.
이날의 치욕은 결과적으로 뎀벨레를 일으켜 세우는 약이 됐다. 로랑은 ‘데일리메일 스포츠’에 “엔리케 감독이 아스널 원정에서 그를 남겨두고 갔을 때 뎀벨레는 감독이 무엇을 원하고 기대하는지 깨닫고,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게 시즌의 첫 번째 전환점이었다. 뎀벨레에게 이것은 촉매제였다”라고 설명했다.
뎀벨레는 플레이스테이션 게임을 하느라 밤을 지새우는 날이 많았다. 사진=뎀벨레 인스타그램그리고 또 하나 아주 결정적인 퍼즐이 하나 있었다. 바로 음바페의 레알 마드리드 이적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뎀벨레는 음바페가 이적한 후 더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뎀벨레가 PSG에 합류했을 당시 음바페는 시즌 44골을 기록하면서 최고의 기량을 뽐내고 있었다. 하지만 음바페는 이 시즌을 끝으로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했고, 음바페의 빈자리는 곧 뎀벨레에게 돌아갔다. 당시 엔리케 감독은 뎀벨레에게 “이제 네가 더 많은 도움과 더 많은 골을 넣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이 주문을 기꺼이 받아들였고, 더 나아가 이 새로운 역할을 즐기며 차차 적응해 나갔다.
결정적인 전환점이 된 건 포지션 변화였다. 그 전까지만 해도 우측 윙에서 뛰었던 뎀벨레는 음바페의 빈자리, 즉 중앙으로 진출해 최전방 공격수 포지션을 차지했다. ‘가짜 9번’으로 중앙에 배치된 후 뎀벨레는 22경기에서 27골을 몰아치면서 놀라운 득점력을 발휘했다. 갑자기 전혀 다른 선수가 된 듯 경이로운 변화였다. 과거에는 화려한 드리블로 공을 몰아간 후 골을 넣거나 먼 거리에서 강력한 슛으로 득점하는 스타일이었다면, 이제는 골문 가까이에서 침착하게 슛을 마무리하는 진정한 스트라이커의 면모를 발휘했다.
이 밖에도 엔리케 감독의 역할이 컸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엔리케 감독은 “최고의 뎀벨레를 끌어내기 위해선 더 깊이 파고들어야 했다. 우리는 하기 어려운 말과 행동도 해야 했다”라고 말했다. 이에 뎀벨레는 발롱도르 수상 후 소감을 밝히면서 “2023년 나를 영입해준 PSG에 감사하다. 나세르 회장과 엔리케 감독은 내게 아버지 같은 분들이다”라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하지만 사실 이 모든 퍼즐에도 불구하고 변화를 만들어낸 건 결국 뎀벨레 자신이었다. 누구보다 이를 잘 알고 있는 뎀벨레 역시 “위대한 선수가 되고 싶다면 반드시 노력해야 한다. 재능만으로는 부족하다. 그걸 예전엔 몰랐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더욱이 축구선수에게 20대 후반은 재기하기엔 결코 이른 나이가 아니다. 하지만 뎀벨레는 그의 인스타그램 프로필의 “믿어라(Believe)”처럼 이를 믿었고, 그 믿음으로 부활에 성공해 결국 발롱도르를 들어 올렸다.
뎀벨레 재기 뒤엔 ‘내조의 여왕’이…
뎀벨레의 극적인 인생역전 스토리가 관심을 모으기 시작하자 ‘내조의 여왕’으로 알려진 그의 아내 리마 에드부슈(26)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모로코 출신인 리마는 언론에 거의 노출된 적이 없는 베일에 싸인 인물로 알려져 있다. 독실한 무슬림인 까닭에 늘 공개적인 자리에서 얼굴을 가리고 있어서 더 그렇다.
독실한 무슬림인 리마 에드뷰슈. 사진=리마 에드뷰슈 인스타그램뎀벨레와 리마는 바르셀로나 선수 시절인 2021년 12월 비밀리에 결혼식을 올렸으며, 이런 까닭에 당시 바르셀로나 팀 동료들 대부분은 그가 결혼했는지조차 몰랐다. 결혼식에는 양가 가족과 가까운 최측근들만 초대됐다. 그리고 이듬해 둘은 딸을 얻었다.
한때 틱톡 팔로어만 30만 명에 달했을 정도로 인기 있는 SNS(소셜미디어) 스타였던 리마는 세련되고 흥미로운 콘텐츠로 명성이 자자했다. 이를 통해 자신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라잘레(Razalae)’를 홍보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7월, PSG가 클럽 월드컵 결승전에서 첼시에 패하자 돌연 계정을 비공개 전환했고, 얼마 후에는 완전히 삭제해버렸다. 갑작스런 행동에 팔로어들은 어리둥절했지만 이유는 밝히지 않아서 그 배경은 알 수 없었다. 당시 함께 비공개 전환했던 인스타그램 계정은 최근 다시 재개됐으며, 현재 팔로어는 21만 7000명에 달하고 있다. 다만 가족사진은 일절 올리지 않은 채 일상 사진만 공유하고 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보수적이고 근면한 리마의 성격은 뎀벨레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에 뎀벨레를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은 그가 리마와 결혼한 후부터 서서히 달라지기 시작했다고 입을 모은다. 결혼생활을 통해 철부지 같던 모습에서 벗어나 한층 성숙해졌으며, 축구선수로 잠재력을 발휘하고 한 단계 성장했다. 무엇보다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은 뎀벨레로 하여금 직업에 대한 태도를 더 진지하게 바꾸도록 만들었다. 전담 영양사를 두고 몸 관리를 시작했고, 부상을 예방하기 위해 전문 치료를 받으러 정기적으로 프랑스로 직접 날아가는 등 노력을 기울였다.
한 측근은 “어릴 때부터 뎀벨레는 워낙 뛰어난 선수였기 때문에 축구에만 집중할 필요가 없었다. 새벽 2시까지 플레이스테이션을 하더라도 다음 날 여전히 잘 뛸 수 있다는 걸 알았다”라고 말하면서 “하지만 바르셀로나에서 힘든 생활을 보내면서 그는 자신이 프로답게 살고 있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결혼하고 아빠가 된 건 정말 큰 계기가 됐다. 책임감이 커졌고, 경기장 밖에서 어떻게 생활하느냐가 성공의 핵심이라는 걸 이해하기 시작했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