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인 문류드밀라씨가 수술 후 회복을 기다리고 있다.
[부산=일요신문] 송희숙 기자 = 온종합병원에 러시아 연해주에서 먼길을 떠나온 갑작스러운 손님이 방문했다. 러시아 크라스키노에 거주하고 있는 고려인 문류드밀라가 그 주인공이다.
문류드밀라가 온종합병원을 찾은 이유는 잦은 소화불량과 불면증으로 힘들어하던 도중 병원을 방문하고 직장암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의료기술이 부족한 크라스키노 지역에서는 더 이상 손 쓸방법이 없던 도중 온종합병원에서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크라스키노에 거주하는 고려인은 총 다섯 가정으로 가족처럼 지내던 도중 문류드밀라의 췌장암 소식을 듣고 안타까워하던 한국인 농업기업인 김토마스씨가 부산의 많은 병원에 의료지원을 요청한 끝에 온종합병원의 정근 병원장을 만나 문류드밀라의 수술을 지원받게 된 것이다.
외과로 입원 후 내시경 결과는 심각한 상태였다. 직장암 3기로 당장 수술이 필요했으며 문제는 돈, 건강보험 가입자가 아닌, 러시아국적의 류드밀라의 수술비는 거의 3천만 원에 가까웠다.
류드밀라도 김토마스씨도 몽땅 끌어 모아 부담할 수 있는 건 겨우 몇백만 원 정도. 류드밀라를 데려온 김토마스씨는 연신 도움을 청하면서 굳이 온종합병원을 찾아온 이유를 설명했다.
평소 외국인들을 초청해서 무료로 수술해주고 있다는 소문 듣고 무작정 왔단다. 온종합병원과 정근 병원장이 아픈 외국인들을 부산으로 초청해 치료해준 적이 한두 번 아니다.
백내장 걸려 앞을 제대로 못 보던 중국 신장위구르의 이슬람 지도자 아브라함, 지진에 얼굴이 녹아내린 중국여성 위홍, 수수깡에 눈을 잃은 히말라야의 네팔아이 디펜드라, 선천성 거대결장증으로 창자가 밖으로 나와 있는 필리핀 소년 허난, 갑상선질환으로 고통 받던 중국 따칭의 미용사 도해연씨. 그들 모두 정근 박사와 그린닥터스의 도움으로 온종합병원과 정근안과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새 삶을 누리고 있다.
하지만 아무 연식도 없는 문류드밀라에게 정근 병원장은 수술비용과 치료비용의 상당액을 지원해주겠다는 이야기는 상황을 모르는 사람들은 의아해 할 것이다.
고려인, 그들은 만주에 사는 조선족처럼, 단지 러시아 땅에 사는 한국교민들이 아니었다. 일제 때 가난 속에 노동으로 모은 한두 푼 돈으로 독립운동을 도운 항일 독립 운동가들과 다름없다.
문류드밀라가 거주하고 있는 크라스키노 지역 또한 일제시대 때 의병훈련소를 만들어 독립운동을 가장 활발히 한 곳으로 최재영 선생님이 독립운동을 위해 자신의 전 재산을 바친 곳이기도 하다.
이곳 크라스키노 지역의 고려인들은 바로 독립운동가들의 자손인 것이다. 우리나라의 통일에 힘쓰고 물심양면 도왔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잊혀갔던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정근 병원장이 먼저 손을 내민 것이다.
8월 7일 병원을 방문한 문류드밀라는 온종합병원 박성준 외과부장이 수술을 집도하게 되었다. 문류드밀라의 정확한 병명은 직장암으로 항문에서 5센치 정도 상방의 혹이 시작되어 항문의 재건 유무는 수술 후 결정될 것이다.
8일 수술에 들어가자 곳곳에 난관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탈장 수술을 받았던 문류드밀라는 대장에 당시에 생긴 것으로 보이는 커다란 수술흔적을 갖고 있었다. 게다가 직장 끝부터 장협착이 심해 복강경 진입이 힘들었으나 고비를 넘기고 수술은 순조롭게 진행 되었고 다행히 암세포는 다른 장기로 전이되지 않았다.
다섯 시간 반 만에 수술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중환자실에서 깨어난 문류드밀라의 첫마디는, 온종합병원에게 고맙다는 인사였다. 그녀는 앞으로 3주 정도 온종합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은후 연해주 하산으로 돌아간다.
평소 음식을 배설할 수 없어 먹는 것도 조심스러웠고, 잦은 불면증에 지속적으로 시달렸지만 온종합병원, 마음의 고향인 한국으로 돌아온 문류드밀라의 표정은 매우 밝고 평소보다 안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문류드밀라를 데려온 김토마스씨는 “오늘 하루 참으로 긴 시간이었습니다. 혼자 연해주로 돌아갈까 새벽부터 마음 졸였지만, 성공적으로 수술을 끝낼 수 있게 해주신 박성준 부장님과 온종합병원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고 전했다.
며칠 후 72주년 광복절을 맞아 온종합병원의 의료지원으로 문류드밀라를 통해 조국 독립에 애쓴 고려인들에게 마음의 빚을 좀 던 셈이다.
ilyo3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