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작품 옆에 선 김무화 화가
[대전=일요신문]육심무 기자 = 공예를 먼저 떠올리는 우리나라의 자개와 일본 마키에를 회화에 접목시킨 김무화 화가의 국내 첫 개인전이 대전 갤러리C에서 16일 개막해 오는 9월 5일까지 열린다.
김무화 작가는 2003년 일본에 건너가 2006년 동경쥰신여자대학 현대문화학부 예술문화학과 미술코스 학사과정을 졸업하고2009년 동경예술대학・대학원 미술연구과 박사전기과정(서양화전공)을 수료하고 일본 동경 긴자의 화랑가를 주 무대로 활동하고 있다.
마키에는 일본이 화려함을 자랑하는 기법으로 장식하고자 하는 면에 옻으로 문양을 그리고 그 위에 금·은·주석 가루나 색가루를 뿌려 굳히는 기법으로 보통 옻칠을 한 바탕 위에 장식을 하지만 칠하지 않은 바탕 등에도 응용된다.
칠바탕에 칠 퍼티(putty)와 백연, 유연, 분말, 장뇌, 금이나 은박을 섞은 혼합물로 부조 장식무늬를 넣는 다카마키에(高蒔繪) 기법과 작은 금이나 은 가루를 뿌려 넣은 칠을 쌓고 문질러 주로 황금색을 표현하는 나시지(梨地) 기법이 대표적이다.
나라(奈良) 시대의 맛킨루(末金鏤)가 마키에의 원초적인 형태로 여겨지며 마키에라는 명칭이 기록에 나타나고 작품을 남긴 것은 헤이안(平安) 시대부터로 귀족사회에서 사원건축이나 가구·문방구 등의 장식에 사용되다가 차츰 무가나 서민들도 애용하게 됐고, 현재는 인쇄기술 등을 응용한 다양한 새로운 기법의 마키에 작품들이 시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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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화 작가는 마키에 기법을 연구하던 중 회화 작품에 옻칠을 하여 자개를 접목시키는 독자적인 표현을 시작하게 되었단다.
김무화 작가는 “크레파스보다 더 작은 손가락으로 몇 장이고 그림을 그리면서 한 없이 행복했던 어린 시절. 색색의 선을 그으면서, 물감을 섞으면서 느꼈던 감동과 두근거림을 간직한 채 지금까지 그림을 그리고 있다”면서 “사람을 모티브로 작업을 하고는 있지만 ‘인물화’ 라고는 생각하지 않으며, 작품 속 인물은 작가의 사념과 관객의 관념이 소통하고 공감하는 매개체의 이미지”라고 설명했다.
또 “누구나 한번은 반드시 거쳐 지나가는 어린 시절의 시간을 통해, 관객은 자기 자신의 어떤, 기억과 같은 것을 불러일킨다”며 “물론 거기에는 작가의 모습도 투영되어 있으며, 따라서 제 작업의 목적은 그림 속 아이와, 관객과 작가가 서로 내부 깊은 곳에서 부터의 소통을 하는 게이트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에도 의미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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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작가는 “구체적인 계획이나 연고가 없이 막연한 상황 속에 21살에 동경의 대학에 들어갔는데 작품을 본 교수가 대학원 진학을 권유했고, 국적을 떠나 진심으로 도와준 많은 분들 덕에 무엇보다 꿈꿔오던 화가의 길을 걸을 수 있게 되었다”며 “대학 1,2학년 때 대부분의 강의를 수강하고 3학년 때는 새벽부터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통해 마련한 돈으로 재료를 사서 오후에는 그림을 그렸고, 지금도 하루 한두시간의 수면으로 작업실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고 웃으며 말했다.
“당시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일본어 실력도 늘었고, 일본 사회에 대한 이해도 넓어졌으며, 일상 속에서 많은 그림의 소재를 발견할 수 있었다”는 작가는 “대학교 4학년 때 지도 교수가 대학원 진학을 강력히 권유했지만 동경예술대 대학원은 경쟁이 치열해 오랫동안 미술을 공부한 일본 학생들도 입학이 어려워 응시에 의미를 두고 시험을 보았는데 합격해 지금의 화가의 길을 걷게된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대학원에 진학해 서양화를 공부하면서 옻칠과에 가 따로 옻칠을 배우기 시작해 결국 옻칠과 금가루를 입히는 마키에 기법을 배우는데 3년이 걸렸고, 자개를 회화에 안정적으로 접목하기 위한 연구와 시도에 3년이 걸렸는데 그 과정에서 온 몸에 옻이 올라 고생을 하기도 했다”며 “한번 결정하면 몰입하는 성격 덕택에 이제는 조금씩 인정받는 화가로 자리잡는 것 같다”며 “누구든지 스스로의 열정이 있다면 일본에서 도전해 볼 분야도 많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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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개를 회화에 접목하게된 계기에 대해 “대학에서 전공분야인 서양화 연구와 더불어 옻칠과 마키에를 배우는 과정에서 자신에 대해 돌아보는 계기가 있어 한국의 자개에 시점을 맞추었고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자개를 회화에 접목시킨 표현을 하게 되었다”며 “지금까지 없던 방식이기 때문에 그림에 안정적으로 정착시키기 까지 시간이 많이 필요했고, 이제는 한지와 양가죽,기모노 천 등에 그린 작품속의 표현에 사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나만의 독창적이면서, 한국의 예술 혼이 담긴, 제가 꾸준히 앞장서 개척해 나갈 만한 분야를 사유하는 과정에서 우리나라 자개를 떠올리게 됐고 이제 독자적으로 한국의 자개를 회화에 접목시킨 방법을 더욱 안정적이고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도록 연구를 계속하고 싶다”며 ““자개작업은 한편으로는 약 15년의 도쿄생활을 통해 제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하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발전해 나가기 위해 쉬지 않고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림의 대상이 어린 아이나 소녀의 이미지가 강한 이유에 대해 “어린아이라는 매체는 과거에만 한정되지 않고 미래로 이어지는 기대와 꿈을 연상시켜주는 만큼, 미지의 우주와 생명이 시작되는 물. 어릴 적 낙서 속 두근거림과도 같은 심장의 고동을 제 그림 앞에 선 여러분도 느끼셨으면 하는 바램”이라며 “현재, AI등을 세부 주제로 하고 있는 시점에서 모국에서의 첫 개인전이 과학과 교육의 도시인 대전이라는 점도 다시 한 번 커다란 기대와 가능성을 느끼고 있다”고 피력했다.
이미지와 과학을 투영한 작품
“제 그림에서 작가의 이미지를 느깐다는 관객도 적지 않다”면서 “그림에 모델이 있고, 모델에 자기 투영을 한 부분도 있지만 작가가 일방적으로 전달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모델과 작가 및 보는 사람 사이의 커뮤니케니션이 제 작품의 목적이며 모델이 어린이라서 누가 봐도 자기 기억과 자기 회상을 자유롭게 볼 수 있는 것이 가능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김 작가는 “이번 개인전을 위해 온 것이 대전을 두 번째 방문하는 것으로 처음 방문은 초등학생이었던 1993년 대전세계엑스포 당시 였다”면서 “어린 눈에 비친 다양한 과학과 우주를 소개했던 엑스포장에서의 감동이 지금의 제 작품에 투영이 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밝혔다.
김무화 화가의 작품 속에는 화면의 한켠, 혹은 작품속 인물의 신체 일부에 컴퓨터 칩을 형상화한 표현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것은 김무화 작가만의 독특한 서명이다.
이 반도체 형상의 서명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작가는 “동경에서 작품 활동을 하면서 통역일을 병행하고 있는데 인공지능과 로봇 등 반도체와 관련된 설계 분야 전문 회사와 일을 할 기회가 있었다”면서 “이러한 경험을 통해 새로운 정보와 전문지식을 습득 할 수 있었고, 어릴 적부터 관심을 가져왔던 인공지능 등 과학에 대한 이해가 넓어지면서 작품에 반영함은 물론 서명도 이 것으로 채택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김무화 작가
김 작가는 “일본에 전혀 연고등이 없는 상황에서 홀로 일본에 가게됐고, 입시미술을 결심한 것도 고등학교 졸업이 가까워서야 였다”면서 “완벽한 계획과 준비를 하고 일본에 오는 것도 좋지만 준비가 부족하더라도 자신의 뜻한 바가 있으면 먼저 그 길을 시도해 보기를 바란다”고 권했다.
15년간의 일본에서의 시간 동안 현재 동경 긴자를 중심으로 정기적인 개인전과 다수의 기획전, 그룹전 등 활발 한 아트 활동을 하고 있는데 “일본은 최근 미인도를 그리는 것이 열풍처럼 번지고 있고 콜렉터의 반응도 좋아 제의를 받는 경우도 많지만 자신만의 표현의 신념과 중요한 부분을 지켜나가고 싶다”며 “일본에서 인정을 받기 시작하면서 자신의 루트인 한국 진출에 대한 결심이 더욱 굳어지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김무화 작가는 “시간이 흐르고, 장소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소중한 한 가지를, 한 곳에 머물지 않고 진화를 거듭하는 표현으로 전달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라며 “ 더욱 많은 사람들의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의 대화의 창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다면 하는 바램이며, 이러한 문을 열어 준 갤러리측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smyouk@ilyodsc.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