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란체스카(상),육영수(중),이순자(하) | ||
역대 영부인들은 때때로 의상과 핸드백 등 패션으로 인해 세상의 이목을 끌어왔다. 영부인이라는 위치는 행동거지, 말 한마디뿐 아니라 옷차림 하나하나까지 대중의 관심을 끌 수밖에 없는 자리다. 그런 까닭에 청와대 생활 중 스스로를 단속한 영부인이 있는가 하면 튀는 옷차림을 선호한 영부인도 있었다. 과연 역대 영부인들이 선보인 패션에는 어떤 사연과 비밀이 숨겨져 있을까. 성격도 개성도 제각각이었던 역대 영부인들의 패션을 비교·해부해봤다.
우리나라의 역대 영부인 중 패션으로 인해 가장 큰 관심을 받았던 이는 아마도 전두환 전 대통령의 부인 이순자 여사일 것이다. 이순자 여사는 화려하고 튀는 옷차림을 선호해 구설수에 오르는 일이 많았고 이 점은 ‘대통령 전두환’의 이미지에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스무 살의 어린 나이에 결혼한 이순자 여사는 학업의 꿈을 포기하고 집안 살림을 이끌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또 마흔 하나의 젊은 나이에 퍼스트레이디의 자리에 오른 뒤에는 다른 퍼스트레이디에 비해 적극적이고 ‘당당한’ 면모를 보여주었다. 이는 옷차림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취임식 때 이 여사는 화려한 문양이 들어간 한복을 입었는데 이 모습은 당시 가뜩이나 군사정권에 반감을 갖고 있던 국민들에게 적잖은 ‘비호감’ 정서를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공식석상에서 ‘당의’(여성들이 저고리 위에 덧입는 한복의 하나)를 입고 나와 비난을 받기도 했다. 당시 이순자 여사의 한복은 일반 한복 시가의 열 배 정도 되는 옷들이었다고 한다. 이 여사의 한복을 디자인했던 한복 디자이너 이리자 씨는 한 인터뷰에서 “이 여사가 화려한 옷을 좋아해서 금박 문양을 개발하고 치마도 풍성하게 만들어주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이순자 여사는 육영수 여사를 자신의 ‘역할모델’로 삼았으나 국민들 눈에 비친 모습은 그와는 정반대였다. ‘사치하는’ 영부인이라는 이미지로 역대 퍼스트레이디 중 가장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것. 옷차림뿐 아니라 과하게 부풀린 헤어스타일로 주목을 끌었는가 하면, 외국 순방길에 금박 두른 한복을 입어 구설수에 오른 일도 있었다. 이순자 여사의 패션은 그의 왕성한 대외 활동력과도 맞물려 있는데 ‘빨간 바지’라는 별명이 붙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이순자 여사는 영부인이 되고 나서 옷차림에도 매우 신경을 썼던 것으로 알려진다. 남들에게 주목받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 옷차림을 통해서도 드러났던 것으로 보인다”고 평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도 옷으로 인해 구설수에 오른 대표적 인물이다. 1999년의 ‘옷로비 사건’은 이희호 여사의 이미지에도 큰 타격을 주었고 뜨거운 정치 공세를 불러왔다. 그러나 실제로 이희호 여사는 소박하고 편한 옷차림을 즐겨 입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여사가 한복보다 양장을 좋아했던 것도 실용적인 스타일을 선호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여사의 옷을 디자인했던 디자이너 노라 조 씨는 “이희호 여사는 체형이 날씬한 편이라 66사이즈에 치마만 약간 길게 입었다”고 설명한 바 있다.
양장을 주로 입었던 이희호 여사는 한복을 입을 경우 편한 개량식 한복을 선호했다고 한다. 이 여사는 청와대에 들어가면서 개량한복을 주문해 가져갔는데 “청와대에서는 불편하게 긴 한복 치마를 입어야 하느냐”고 디자이너에게 물어보기도 했다는 것. 청와대 생활을 하면서는 한복디자이너 이리자 씨의 옷을 대부분 입었는데 특히 무궁화 자수를 좋아했다고 한다. 다른 나라에 나갈 때는 옷 색깔에 맞춰 흰색, 분홍색, 보라색 등의 무궁화를 수놓아 입었다고.
▲ 김옥숙(상),이희호(하) | ||
역대 영부인 중 가장 비정치적인 내조를 했던 것으로 평가받는 손 여사는 옷으로 인해 세간의 관심을 끄는 일도 거의 없었다. 혹시나 구설수에 오를까봐 옷의 라벨도 다 떼고 입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임기 초반과 달리 후반에는 양장을 주로 입었는데 옷을 맞출 때에는 꼭 ‘칼라와 소매단을 길게 해 달라’는 주문을 덧붙였다고 한다. 이때 입었던 옷 중에는 옷깃이 목까지 올라오는 차이나 칼라가 많은데 화려해 보이지 않도록 신경을 쓴 것이었다. 손 여사가 ‘주력 의상’을 양장으로 바꾼 것은 영부인으로서 다소 사치품으로 비칠 수 있는 고급 한복을 입으면 여론이 좋지 않을 수 있다는 조언 때문이었다고 한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부인 김옥숙 여사는 특히 한복이 잘 어울리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전문가들은 육영수 여사 이후 가장 옷을 잘 입었던 영부인으로 김옥숙 여사를 꼽는다. 디자이너 이영희 씨가 “내 옷을 가장 잘 소화한 모델은 김옥숙 여사”라고 평했을 정도다. 김옥숙 여사는 적당한 키에 목이 길고 어깨선이 아름다워 한복을 잘 소화할 수 있는 체형을 갖고 있었다는 평가다.
김 여사 역시 다른 영부인들처럼 육영수 여사 스타일을 모델로 해서 따라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는 한복의 색감과 디자인도 직접 고를 정도로 패션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장소와 만나는 사람에 따라 컬러와 디자인을 바꿀 정도로 센스도 뛰어났다는 것.
하지만 ‘보통사람’을 강조한 노태우 정부였던 만큼 김옥숙 여사도 화려한 의상은 피해야만 했다. 한복 옷감으로도 주로 은은한 미색이나 옥색을 선호했고 디자인이 화려하지 않으며 기품 있는 스타일을 좋아했다고 한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도 외국인이었지만 누구보다 한복을 ‘사랑했던’ 영부인이다. 당시 1950년대는 옷고름 대신 브로치를 달거나 짧은 통치마를 입는 등 전통적인 한복 스타일이 아닌 개량한복이 유행했다. 프란체스카 여사가 입었던 한복 중에도 개량한복이 많았는데 특히 보라색과 와인색 계열을 좋아했다고 한다. 또 프란체스카 여사는 옷을 만들어준 디자이너에게 답례로 노리개나 이승만 전 대통령이 쓰던 조그마한 물품 등을 주기도 했다고.
훗날 프란체스카 여사가 고인이 된 뒤 입관될 때에도 한복을 입었는데 이 한복에는 남다른 사연이 담겨 있다. 디자이너 이리자 씨의 작품인 이 한복에는 ‘목숨 수’자가 수놓아져 있다고 한다. 이 옷은 프란체스카 여사가 좋아해 평생 간직하며 입었던 것이라고 한다.
역대 영부인 중 가장 옷을 잘 입었다고 평가받는 이는 육영수 여사다. 육 여사의 패션은 여느 영부인들이 모델로 삼았을 만큼 ‘영부인 패션의 교과서’로 불리고 있다. 육 여사의 패션 스타일을 이어가고 있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역시 뛰어난 패션 감각을 가진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 권양숙(상),김윤옥(하) | ||
권양숙 여사 역시 영부인 시절에는 화려한 패션을 선보였다. 권 여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재임시절 해외 방문을 여러 차례 했는데 방문 국가를 연구해 그에 맞는 한복 색감을 골랐다고 한다. 패션 전문가들은 권양숙 여사에 대해 양장과 한복이 모두 잘 어울리며 진한 색이나 연한 색 모두 잘 소화하는 스타일이라고 평한다. 하지만 근래에는 ‘박연차 리스트’ 수사 파문으로 인한 맘고생을 드러내듯 얼마 전 ‘몸빼 바지’ 차림의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돼 세간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부인 김윤옥 여사도 패션에 남다른 관심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명박 대통령의 후보 시절 김 여사는 패션 전문가와 함께 매일같이 옷과 넥타이를 직접 고르는 열의를 보이기도 했다. 이화여대 사범대학을 졸업한 김 여사는 대학 시절 메이퀸으로 뽑힐 만큼 미모가 대단했다고 한다. 또한 지난 2006년에는 서울시장 부인 자격으로 ‘북한 어린이 돕기 자선패션쇼’에 모델로 섰을 만큼 패션에 남다른 관심을 갖고 있다.
김 여사는 영부인이 된 이후에도 본인이 적극적으로 의상을 고른다고 한다. 지난 4월 초 영국에서 열린 G20 금융정상회의에 참석했을 당시 김 여사는 한복뿐 아니라 다양한 양장 차림을 선보이는 패션 센스를 발휘했다. 당시 언론에는 정상회의에 대한 소식뿐 아니라 김 여사의 다양한 옷차림이 보도되며 화제를 모았을 정도.
패션 전문가들에 따르면 얼굴이 동그랗고 통통한 편인 김 여사는 칼라 모양과 상의 디자인에 따라 인상이 달라질 수 있다고 한다. 또한 허리가 가는 편이어서 허리를 강조하는 디자인도 잘 소화한다는 분석이다. 반면 다소 강해보일 수 있는 인상도 풍기고 있어 너무 단정하고 딱딱한 기본 정장 차림은 피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김 여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이미지가 달라 보일 수도 있을 터. 때론 옷이 말을 하는 셈이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