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 재판관의 임기는 6년으로 하며,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연임할 수 있다. 헌법재판소의 장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재판관 중에서 대통령이 임명한다. (헌법 제6장 제112조 1항, 제111조 5항 중)
대법원장과 헌법재판소장의 임기에 대해 헌법에 명시된 조항이다. 대법관이나 헌재 재판관에 대해 6년의 임기를 보장한다고 적혀 있는 것을 보면 언뜻 ‘대법원이나 헌재가 별 차이가 없다’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자세히 보면 큰 차이가 있다. 바로 장(대법원장과 헌법재판소장)의 임기를 구체적으로 명시했느냐, 하지 않았느냐다. 이 차이를 알아야 지금 불거지고 있는 헌재 소장 논란을 정확히 볼 수 있다.
대법원장의 경우 ‘대법원장의 임기를 6년으로 한다’고 구체적으로 적혀 있다. 명시됐다는 것 자체가 매우 중요하다. 대법관으로 근무 중에 대법원장이 되더라도 새롭게 6년 임기를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 반면 헌법재판소장은 명시된 문장이 없다. 특히 헌재 소장의 경우 임기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재판관의 임기를 6년으로 한다는 게 전부다.
논란은 그 ‘빈틈’에서 시작됐다. ‘헌재 소장은 임명 시점이 아닌, 재판관 근무 시작 시점부터 6년으로 한다’고도 적혀 있지는 않지만, 법에서 ‘된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통상 ‘안 된다’고 해석해 임기를 적용해 온 것. 헌법재판소 재판관으로 임기와 소장의 임기를 합쳐 6년으로 말이다.
전임 대법원장과 헌재소장의 사례를 비교해보면 더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경우 대법관으로 임명된 것은 2005년 2월이었다. 부산지방법원장·특허법원장으로 재직하다가 2005년 2월 대법관이 됐고, 임기를 마친 뒤 대법원장으로 임명돼 다시 6년을 채우고 지난 9월 25일 퇴임했다.
반면 검사장 출신의 박한철 전 소장은 지난 2011년 2월 헌법재판소 재판관으로 임명됐고, 재판관으로 재임 중이던 2013년 4월 소장으로 지명됐다. 소장으로 국회 인준을 받은 것은 지난 2013년이었지만, 박 소장의 임기는 올해 1월까지였다. 재판관으로 임명된 시점(2011년)부터 6년으로 임명 기한을 해석했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헌재 소장 임명 시점부터 임기 6년 보장은 헌재의 ‘꿈‘이 됐다. 장의 임기 6년이 보장되는 대법원과 같은 위상이기 때문에 헌재 소장도 6년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것. 실제 ’헌법재판소장은 대우와 보수를 대법원장의 예로 따른다‘고 헌법재판소법 제15조에 명시돼 있다. 임기에 대해서도 헌재가 대법원장의 기준을 갖추려는 이유기도 하다.
2017년 1월 3일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박한철 헌재소장을 포함한 재판관 9명 전원이 참석한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첫 변론기일이 열리고 있다. 고성준 기자
지난해 초 헌재는 이를 놓고 적극적으로 나섰다. 헌재 관계자가 “헌재 소장 임기는 하지 말라고 적힌 것은 아니지 않느냐”며 “6년을 해도 되지만 과거 전례를 따르다보니 탄핵을 놓고 재판관 1명이 중요한 상황에서도 소장 자리를 비우고 가야만 했었다, 임기 6년이 보장됐다면 달랐을 것”이라고 말했을 정도.
실제 꿈을 이룰 법한 순간도 있었다. 헌재는 지난 박근혜 정권 시절 박한철 소장의 연임을 추진했다. 박 소장을 임명한 청와대와 국회(당시 여당인 새누리당)의 동의를 얻어, 박한철 소장이 연임하면서 소장 임기 6년 보장 문제를 명확하게 하려 했던 것. 이를 위해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려 했고, 실제 국회 법사위에서 통과 직전까지 갔었다. 당시 상황을 잘 아는 법조인은 “공안검사 출신의 박한철 소장이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하는 등 박근혜 정권으로부터 상당히 점수를 딴 측면이 있다”며 “이를 통해 국회에 소장 임기 6년을 보장하는 개정안 통과를 추진했지만, 대법원이 반대 의견을 내서 실패했다”고 귀띔했다.
유남석 신임 재판관
하지만 상황이 바뀌면서 임기 보장을 놓고 손발을 맞췄던 박근혜 정권을 자신의 손으로 심판하게 된 헌재는 빠르게 태세를 바꿨다. 재판관 전원 일치 판결로 탄핵을 결정한 것. 당시 헌재 관계자는 “사회적으로 혼란이 만들어지지 않게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가야 한다는 조언이 재판관들에게 올라갔고 이를 재판관들이 받아들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재판관 전원 일치 탄핵 결정 덕분(?)에 문재인 정부는 정당성 부분에서 더욱 힘을 받고 출범할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검찰이나 법원에 대한 개혁 얘기가 나오는 상황에서도 항상 헌재는 예외였다. 청와대가 헌재를 바라보는 분위기가 한없이 긍정적이었다. 그리고 청와대는 헌재의 오랜 꿈을 해결해주겠다며 나섰다. ’김이수 소장 임명‘과 함께 임기 6년을 보장받으려 한 것. 하지만 국회 인준이 불발되면서 틀어졌다. 하지만 청와대의 의지는 강력했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인준 불발 후 “대통령이 재판관 중 소장을 임명하면 다시 소장의 임기 문제가 불거질 것”이라며 “국회에서 소장의 임기를 명확히 하는 입법을 마치면 대통령은 소장을 바로 임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번에는 헌재 재판관들이 반발했다. 재판관 정족수를 맞춰야 한다며, 소장대행 체제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청와대에 전달한 것. 결국 청와대는 한 발 양보해 9명 정원을 맞추기 위해 유남석 광주 고등법원장을 재판관으로 임명하고, 임기가 10개월 남은 이진성 재판관(2012년 9월 재판관 임명)을 소장 후보자로 임명했다. 일단 자리를 채운 뒤, 헌재 소장의 임기 6년 보장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임기 10개월의 헌재 소장 후보자로 지명된 이진성 재판관.
국회 통과 가능성도 높다. 현재 이춘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헌법재판소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따르면 헌재소장 임기를 ’대통령 임명을 받은 날부터 6년‘으로 명시하고 소장으로 임명되면 재판관 임기는 연임하도록 되어 있다. 대법원도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로 바뀐 뒤, 헌재 소장 임기 보장 부분에 대해 별다른 반대 의견을 내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마지막 남은 문제는 이에 찬성했었던 야당의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점이다. 진보적인 성향의 재판소장이 6년을 보장받게 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인데, 국민의당이 헌재 소장 임기 보장에 대해서는 긍정적이라서 개정안 국회 무사 통과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서환한 기자 brigh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