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결정이 난 뒤의 태극기 집회 현장. 일요신문DB
헌재와 청와대 주변 등엔 아침 일찍부터 대규모 경찰 병력이 집중 배치됐다. 경찰은 이날 최상위 비상령인 갑(甲)호 비상을 발령해 271개 중대 2만 1600여 명의 경비 병력을 투입했다. 안국역 일대는 경찰 버스로 차벽이 길게 늘어섰고 차량 통행 또한 차단됐다.
헌재 관계자와 취재진 등을 제외하곤 헌재 진입이 전면 통제됐다. 경찰은 관계자 신원을 일일이 확인한 뒤 들어갈 수 있게 길을 터줬다. 심판 시간인 11시가 다가올수록 함성 소리는 더욱 거세졌다.
헌재 내부는 긴장감이 맴돌았다. 대심판정 앞엔 역사적인 순간을 기록하기 위한 취재진들의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다. 외신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탄핵 심판이 시작되자 한 외신 기자는 일본어로 이정미 재판관 판결문을 동시통역하기도 했다.
헌재 앞에선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탄핵 찬성 집회와 반대 집회가 열렸다. 탄핵을 찬성하는 ‘촛불 집회’ 측은 이날 오전 9시부터, 탄핵을 반대하는 ‘태극기 집회’ 측은 오전 10시부터 단체 행동에 들어갔다.
이정미 재판관이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고 발표하자 헌재 앞은 환호성과 탄식이 뒤섞였다. 생중계를 확인하지 못한 시민들은 “결과가 나왔느냐” “어떻게 됐느냐”면서 서로 묻기도 했다.
촛불 집회 진영은 그야말로 ‘축제’의 현장이었다. 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은 서로 얼싸 안고 “민주주의 만세”라며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집회에 참석한 김 아무개 씨는 “새벽부터 나와 있었다. 역사적인 순간이 왔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고 흐느꼈다. 또 다른 시민은 “만장일치까진 기대하지 않았는데 경이롭다. 민주주의가 살아있다”고 했다. 곳곳에선 “민주주의 승리했다” “민주주의 만세” “박근혜 구속하라”가 울려 퍼졌다.
‘박근혜 탄핵 기념 촛불시민 포토 존’도 마련됐다. 많은 시민들이 포토 존에서 사진을 찍으려고 했다. 이밖에도 헌재나 집회를 배경으로 사진 찍는 시민들로 가득 찼다. 박근혜 전 대통령 사진을 포승줄로 묶고 다니거나 노래를 부르는 등 퍼포먼스도 펼쳐졌다.
반면, 태극기 집회 진영에선 이 재판관 주문이 끝나자 잠시 동안 정적이 일었다. 곳곳에선 “말도 안 된다”며 고함을 지르거나 오열하는 모습도 보였다. 주저앉아 흐느끼는 참석자들도 상당수 볼 수 있었다.
판결이 끝나자 망연자실해 하며 조용히 집에 가는 참석자들도 보였다. 이들은 “역사상 치욕이다”라며 안타까워했다. 집회 한편에선 “5월에 승리하자” “태극기 대통령을 만들자”는 말도 나왔다. 조기 대선에서 이기자는 취지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집회 분위기는 과열됐다. 탄핵 심판 결과에 불복한 일부 태극기 집회 참석자들이 무대 맨 앞에서 거세게 항의했다. 이들은 “계엄령을 선포해 다 쓸어버리자”고 주장했다. 태극기 집회 관계자는 “폭력 행동할 시기가 아니다”라면서도 “헌재가 헌법을 어겼다. 헌정질서가 무너졌다”고 했다. 그러자 참석자들이 “옳소” “맞습니다”라며 점차 동요하기 시작했다.
또 다른 태극기 집회 관계자가 “목숨이 날아가도 헌재를 박살내자”고 소리쳤다. 이어 “태극기를 들고 비폭력적 방법을 포기할 순간이 왔다. 국회, 언론, 헌재와 검찰에 대항하는 폭력이 발생될 것이다. 이를 피하기 위해 헌재에 기각이나 각하를 요구한 것”이라고 외쳤다. 집회 현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뒤바뀌었다.
이 관계자는 참석자들에게 무대 뒤에 있는 차벽을 밀고 헌재로 진입하자고 외쳤고, 이 말에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 중 일부가 돌진해 차벽을 허물었다. 이 과정에서 참석자 김 아무개 씨(72)가 머리를 다쳐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참석자 가운데 한 명도 숨진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정확한 사망 경위를 확인할 계획이다.
김경민 기자 mercur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