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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녀오겠습니다” 중국 방문을 앞둔 한나라당 이회창 대 통령 후보가 2일 수재민돕기 일일찻집에 들러 헌금을하고 인사를 하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한나라당 최고 정보통인 정형근 의원은 김정일 위원장의 답방을 기정사실화했다. 대북문제에 정통한 당내 고위관계자도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북한방문과 김정일 북한국방위원장의 답방설에 대해 “신북풍이 구체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회창 후보의 한 핵심측근도 “저쪽이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대선에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상한 짓을 할 것으로 본다”며 병풍 이후 새롭게 불어닥칠 신북풍에 대해 강한 의구심을 드러냈다.
북•일관계 정상화가 한반도 평화구축에 도움이 됨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 관계자들이 이런 시각을 보이는 데는 바로 12월 대선 때문이다. 최근 북한은 한반도 정세변화에 핵심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 북한이 대선을 앞두고 과연 어떤 변수로 다가올지 한나라당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김정일 위원장 답방’으로 햇볕정책을 마무리하려는 김대중 대통령과 민주당, 이에 맞서 ‘신북풍’이라며 정권 탈환에 안간힘을 쓰고 있는 한나라당의 처절한 한판 승부가 펼쳐질 것으로 예상된다. 고이즈미 총리의 북한방문과 ‘김정일 10월 부산방문설’이 알려진 지난달 30일 한나라당은 이를 확인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날 남경필 대변인은 북•일 정상회담에 대해 “의미있는 성과가 나오길 바란다”며 짧은 논평을 냈다. 이낙연 민주당 대변인이 “역사적인 사건으로 한국 국민과 함께 이를 환영한다”며 한반도 평화정착에 큰 역할이 있을 것으로 기대한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한나라당이 이 같은 반응을 보이는 데는 북•일 정상회담보다 김정일 위원장 답방이 가져올 정치권의 태풍 이른바 ‘신북풍’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고이즈미 총리의 방북이 그동안 실타래처럼 얽혀있는 북•일 관계의 정상화와 북한의 경제발전과 나아가 동북아 정세 안정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한나라당이 모를 리 없다.
하지만 최근 북한을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이 대선구도를 바꾸려는 정권차원의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하고 있다. 이 후보측 한 인사는 “북한과 일본이 만나는 것은 좋지만 왜 하필 대선을 3개월 앞둔 시점이냐”면서 “김정일 위원장의 부산답방설이 일본 외무성 고위관계자의 입에서 나온 것도 이상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일본의 언론들은 이번 북•일 정상회담 성사에 김대중 대통령의 물밑 역할설을 제기했다.
〈마이니치신문〉과 〈아사히신문〉은 지난 3월22일 서울에서 열린 한일정상회담과 지난 4월 평양을 방문한 임동원 특사의 활동을 예로 들며 이같이 보도했다. 북•일 정상회담을 보도한 국내 일부 언론도 김정일 위원장의 10월 답방설에 무게를 두고 있다. 〈중앙일보〉는 북한사정에 밝은 한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남북간 평화체제 구축방안에 대한 물밑 의견교환이 진행중인 것으로 안다. 답방시기는 아시안게임 개막식이 열리는 9월 말께로 예상하고 육로 또는 항공로를 통해 답방할 것이다.
장소는 부산 또는 제주도가 될 것으로 본다”고 보도했다. 물론 청와대는 이를 부인하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국제신문〉과의 창간50주년 기념회견에서 “답방을 위한 구체적인 연락이나 상의는 없는 상태”라고 일축했다. 그러나 김 대통령은 “답방이 지금까지 이뤄지지 않은 것은 참 유감이며 김 위원장도 상당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을 것”이라고 말해 묘한 여운을 남겼다. 요동치는 한반도 정세에 대해 이 후보측은 애써 태연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한 특보는 “김정일 답방설은 이미 우리가 주장한 것”이라며 “이제 그것을 구체화하려 하지만 실제로 답방은 힘들 것”이라며 그 근거로 답방을 위한 ‘분위기 미성숙’을 제시했다. 그러나 내심 이 후보측의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권철현 후보비서실장은 “답방에 반대하면 반통일세력으로 몰릴 것이 뻔하기 때문에 뭐라 말할 수가 없다”면서도 “위험한 일이 벌어질까 걱정이 앞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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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일 | ||
이 후보측은 한반도의 급속한 기류변화에 예의주시하고 있다. 동해선•경의선 착공, 쌀 40만t•비료 10만t 지원, 9월 경평축구, 10월 아시안게임 대규모 북한 선수단 파견 등 남북한 당국간 합의사항 외에, 김정일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에 이은 북•일 정상회담과 미국의 대북특사 파견 등 굵직한 사안들이 줄줄이 예정돼 있다. 이른바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신데탕트 시대가 열리고 있는 셈이다.
이런 분위기라면 한나라당의 고립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후보측은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 그동안 나름대로 대책을 강구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21일 이 후보의 전문가 그룹인 희망포럼 세미나에서 발표된 ‘이회창의 평화정책’도 같은 차원에서 나왔다. 당시 이 후보는 남북한 평화정착을 전제조건으로 달긴 했지만 북한에 대한 적극적 지원 가능성을 정책으로 선보였다. 평화정책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지만 이 정책의 핵심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는 게 이 후보측의 설명이다.
한 관계자는 “사실 평화정책은 김정일 위원장에게 보내는 직접적인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면서 “북한이 대선에서 중립만 지켜준다면 DJ정권 때보다 더 많은 것을 줄 수 있다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이 후보의 중국 방문도 북한문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 후보는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 등을 만나 남북문제와 동북아 현안에 대해 심도있는 대화를 할 예정이다. 특히 중국 내 북한전문가인 리수정 전 대외협력부장도 만난다. 중국방문 일정을 담당했던 이세기 전 의원은 “이번 중국방문을 통해 주변4강 외교의 틀을 마무리하는 것”이라면서 “북한이 중국식 개혁개방처럼 본질적인 변화가 있을 때 현 정부보다 더 많은 지원이 있을 것이라는 뜻을 중국측에 전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권의 한 인사는 “DJ정부와 긴밀한 협조체제를 보이고 있는 북한이 이회창 후보의 친일문제를 꾸준히 거론하고 있다는 점도 유심히 봐야한다”면서 “이 후보가 중국을 통해 이러한 북한의 입장을 바꾸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이 후보 부친의 친일행적 논란은 대선정국에서 또다시 터져 나올 가능성이 높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부친 이홍규씨가 창씨개명했고 일본천황 앞에서 만세를 부른 사진이 곧 공개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북한도 이와 비슷한 내용으로 〈로동신문〉 조선중앙방송 평양방송〉 등을 통해 이 후보를 비방하는 보도를 연속해서 내보내고 있다. 실제로 이 후보는 지난달 21일 대구의 성서공단을 방문한 자리에서 북한을 다녀온 정신대 할머니 2명으로부터 “북한사람들이 이 후보 부친을 일제의 앞잡이라고 욕하더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우발적인 일이긴 하나 대선가도에서 친일논란이 심상치 않음을 예견한 사례였다. 한나라당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는 DJ의 한 핵심측근이 북한을 방문해 북측으로부터 이 후보 부친과 관련한 자료를 건네받았다는 얘기가 오가기도 했다.
이들의 주장은 현 정권과 북한이 친일문제를 함께 거론하면서 이 후보를 협공할 것이라는 게 주요 골자다. 이 후보측이 긴장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최근의 한반도 평화기류가 대선정국에서 이 후보를 불리하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나름대로 대비책을 세웠다고는 하지만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현재 한나라당은 북한과 비밀 대화채널을 확보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후보측의 한 인사는 “밀사역할을 자청하고 나서는 외부인사들이 없지 않다”면서 “현재로서는 (채널확보가) 필요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역대 대통령 선거에서 여야 후보들이 북한쪽과 비밀통로를 개설해온 점을 염두에 둔다면 앞으로 한나라당도 채널을 뚫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 대선을 앞둔 한나라당과 민주당 그리고 체제유지에 급박한 북한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남북문제. 햇볕정책이든 신북풍이든 국민들이 바라는 것은 남북문제를 정권유지나 획득을 위해 악용하지 말라는 것만은 주지의 사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