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오 전 최고위원. 임영무 기자 namoo@ilyo.co.kr | ||
정치권에서는 이 전 최고의 이런 ‘센’ 발언은 스스로를 은둔에서 해방시키면서 향후 여권의 권력재편 과정에서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임을 암시한 것으로 본다. 특히 이 전 최고는 최근 들어 박근혜 전 대표가 조기에 당권을 접수할 움직임을 보인 것에 대해 절박한 심정으로 ‘당을 지켜내자’는 메시지를 측근 의원들에게 보낸 것으로 알려진다.
특히 당내 일각에서는 “이 전 최고가 올해 롤백을 하지 못할 경우 향후 여권의 권력 구도 변화에 따라 영원히 정권 핵심에 진입하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우려가 그를 서둘러 정치행장을 꾸리게 하는 배경이 됐다고 보고 있다. 이재오 전 최고위원의 조기 당권접수 플랜의 가동 내막을 추적해봤다.
“그런데 아직도 (이재오 전 최고위원이) 자신을 여당의 실세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죠?”
최근 여당 핵심부의 한 최측근은 기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그는 또한 “이재오 전 최고의 정치적 영향력은 지난해 총선 공천이 최정점이었고 지금은 그 어떤 정치적 장래도 보장받지 못하는, 기울어져가는 소 계파의 수장일 뿐”이라며 이 전 최고의 정치적 위상을 낮게 평가하고 있다. 사실 최근 들어 한나라당 내에서는 이 전 최고의 위상이 예전만 같지 못하다는 이야기가 계속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은 오는 7월 말 시도당 위원장을 선출하기로 돼 있다. 그런데 이번 선거전에서 이 전 최고의 정치적 위상에 대한 말들이 많다. 특히 호남지역의 경우 이 전 최고의 영향력이 축소되고 있다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호남지역 정가에서는 “이 전 최고가 지난해 미국 유학생활 이후 지금까지 계속 중앙권력에서 소외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지방권력 장악에서도 밀리고 있다”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또한 당 일각에서는 지난 2007년 전당대회 때 이 전 최고가 표를 얻는 과정에서 지역 위원장들에게 공약했던 약속들이 그의 정치적 위상 추락으로 ‘공수표’가 되면서 신뢰를 잃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그런데 이런 지방에서의 정치적 파워 감소가 자신의 텃밭인 수도권으로 확대돼 가는 도미노 권력 누수 현상도 일어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 전 최고는 한때 당내에서 수도권을 중심으로 하는 20여 명 이상의 현역 의원들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 수가 대폭 줄어들었다는 게 당내의 일반적 평가다(박스 기사 참조).
하지만 이 전 최고에 대한 정치적 위상 평가는 시기상조이며 그가 곧 여권의 핵심 포스트로 복귀할 것이라고 예측하는 당 관계자들도 적지 않다. 이들은 하나같이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 당선 1등 공신인 이 전 최고에게 무한대 부채의식을 느끼고 있고, 언젠가는 크게 기회를 한번 줘 그 부담을 덜려고 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 전 최고는 미국 유학생활 기간에도 이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극비로 ‘호텔 회동’을 가진 바 있다. 그리고 귀국해서도 직·간접 채널을 통해 이 대통령과 수시로 정국 운영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조언도 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 지난달 국회 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가진 여의포럼 창립 1주년 세미나에 참석한 박근혜 전 대표(왼쪽)와 박희태 대표.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
사실 이 전 최고의 정치적 위상에 대한 평가는 앞서 살펴본 대로 보는 관점에 따라 그 차이가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여전히 권력에 대해 현재진행형이라거나 또는 이제 한물간 과거완료형이라는 평가 사이의 극단을 달리고 있다. 그런데 이런 양 극단의 평가는 최근의 당내 권력 구도 변화와 맞물리면서 그가 점차 권력의 핵심에서 멀어지고 있는 쪽으로 정리되는 분위기다.
이는 최근의 박근혜 전 대표 세력의 약진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현재 여당은 그가 지난해 미국으로 떠날 때와 비교해 상당부분의 세력이 박 전 대표의 수중에 들어갔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박 전 대표의 ‘작업’에 의해서가 아니라 친이그룹의 자연스런 계파 와해에 따른 결과다. 최근 당의 쇄신논의 과정에서 ‘민본21’의 주장에 반대해 ‘선초회’가 이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선언하는 등 친이그룹은 상당부분 세분화되었고 와해된 측면이 강하다. 일각에서는 친이그룹에 대한 대표성이 없는 박희태 대표도, 정치 2선에서 물러나겠다고 선언한 이상득 의원도 빠진 여권의 권력 공백을 컨트롤하는 사령탑이 없어지면서 친이그룹도 자연스럽게 와해되고 있다고 분석한다.
반면 친박계 내부는 ‘월박’ ‘주이야박’ 등의 표현을 넘어 요즘 들어선 ‘올박’(오리지널 친박), ‘붙박’(한몸처럼 붙어있는 친박) 등의 신조어가 등장할 정도로 내부 충성심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특히 박 전 대표가 이런 여세를 몰아 내년 지방선거 이후 일선에 부상하는 계획을 바꿔 내년 1월 조기전당대회를 통해 화려하게 나설 것이라는 시나리오도 설득력 있게 나오고 있다. 정치적 상황이 이렇게 급변해지자 최근 이 전 최고는 크게 당황해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한 측근이 그에게 “이러다가 손 한번 못써보고 당을 통째로 친박에게 넘기게 생겼다”라는 우려의 말을 전했다는 후문도 있다.
한나라당의 한 전략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이 전 최고가 여전히 이 대통령의 절대적 신임을 받고 있지만 당이 완전히 친박세력에게 넘어갈 경우 문제는 달라진다. 이 대통령이 그를 신뢰해 중용하고 싶어도 당이 친박세력 중심으로 재편될 경우 그럴 수 없는 부분이 생기기 때문이다. 어차피 당심은 차기 권력으로 몰린다는 점에서 이 대통령도 정권 후반기로 넘어갈 경우 이 전 최고를 쓰고 싶어도 못 쓰는 상황이 올 수 있다. 이 전 최고의 정계 복귀는 사실상 올해가 마지노선일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최근 문국현 의원에 대한 대법원 판결 일정이 연기되면서 사실상 이 전 최고의 지역구인 은평을은 오는 10월 재보궐 선거에 포함되기 어려운 점도 그가 더욱 조기전대 개최에 집착하는 배경이 되고 있다.
박 전 대표의 당 장악과 10월 국회 입성 계획 무산 등은 이 전 최고의 마음을 더욱 다급하게 만들고 있다. 그래서 그는 결국 9월 정기국회 이전인 8월에 조기전당대회를 열자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측근인 진수희 의원은 이에 대해 “정부나 청와대는 쇄신이 이뤄지는데 당은 그대로 가겠다는 건 맞지 않다”라며 조기전당대회 개최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진 의원은 특히 “가급적 9월 정기국회가 시작되기 전에 당·정·청의 전면쇄신이 이뤄져 면모 일신된 모습으로 10월 재보궐 선거를 치러야 한다”며 사실상 ‘8월 조기전대’ 주장을 펴고 있다. 친 이재오계는 그동안 9월 전당대회를 주장하다가 점차 그 시기를 앞당기고 있다.
그렇다면 이 전 최고 바람대로 조기전당대회의 개최 가능성은 있을까. 이것은 박희태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와 정몽준 최고위원 등의 ‘손’에 달려 있다. 조기 전대를 실현하기 위해선 현 지도부의 사퇴가 필연적이다. 하지만 1차 관문인 박 대표의 경우 10월 재보궐 선거에 출마할 경우 자연스레 해결될 수 있다(여기에는 안상수 원내대표의 권한대행 체제 등 다양한 방법론이 나오고 있음). 대표최고위원의 다음 승계자는 정몽준 최고위원이다. 만약 그가 사퇴를 하지 않고 버틸 경우 조기전대 가능성은 더욱 난망해진다.
그래서 최근 일각에서는 이 전 최고측이 정 최고에게 ‘사퇴를 종용했다’는 말도 나온다. 이 과정에서 ‘정몽준 대권-이재오 당권 밀약설’ 소문까지 나왔다. 당의 한 정보 관련 관계자는 이에 대해 “정 최고는 애초 조기전대를 주장했지만 박 대표만 물러난다고 할 경우 2위인 자신이 대표직을 이어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차라리 내년까지 대표직을 유지하면서 당내 세력을 확장해나가는 것이 현실적인 방법이라며 조기 사퇴를 반대하는 쪽으로 선회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이 전 최고 측에서 그에게 사퇴를 강하게 요구하자 그 조건으로 대권-당권 연대론까지 거론되고 있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당 일각에서는 “정몽준 최고가 차기 서울시장 후보로 밀어준다면 최고위원직을 내놓을 수 있다고 이재오 전 최고에게 제안했다”는 소문도 나오고 있다.
그런데 이 전 최고가 내년 지방선거 전에 어떻게든 당에 복귀하려는 것은 선거 공천권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 전 최고는 공천=권력이라는 점에서 박 전 대표가 당을 접수한다면 내년 지방선거 공천에서 자파 세력이 완전 배제돼 정치적 구심력이 급속도로 약화되고 그것은 곧 이재오 계파의 와해로 이어질 것이라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전 최고의 복귀 바람이 쉽게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일단 이명박 대통령이 국정 2기 기조를 중도론과 함께 당내 화합이라는 운전대로 정국을 운행할 경우 계파갈등의 진앙지인 이 전 최고를 쉽게 권력에 동행시킬 수 있을지가 의문이다. 그리고 8월 개최는 휴가철과 맞물리고 준비 기간이 많지 않다는 점에서, 9월 개최도 정기국회가 열려 당권 놀음에만 빠져 있다는 비판을 들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비현실적이다. 박희태 대표도 ‘9월 조기전당대회는 이미 끝난 얘기’라며 선을 확실히 긋고 있다.
그리고 당내의 대체적 분위기도 10월 재보궐 선거를 본 뒤 지도부 공백이 생기는 내년 1월에 전당대회를 실시하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쪽으로 모아진다. 이 전 최고 측의 8~9월 전대 개최론은 여러 가지 정치 상황을 볼 때 ‘합리적인’ 주장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 전 최고가 측근 의원들을 총동원해 조기전당대회 발차를 부르짖는 것은, 한번 놓친 버스는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는 여의도 정치의 상식 때문이다. 과연 이 전 최고는 정치 입문 사상 최대의 역전 드라마를 펼칠 수 있게 될까.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