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령포에 위치한 단종어가. 숙부에 의해 폐위된단종이 유배생활을 하던 곳이다. | ||
제천을 지나 동쪽으로 달려가면 어느새 어린 단종의 목을 죄이던 청령포에 이르고 그의 시신이 모셔진 장릉에 마주선다. 별자리를 찾으러 갔다가 단종의 넋을 위로하고 돌아서는 영월에 다녀왔다.
단종 흔적 따라가는 길 제천에서 영월로 뻗은 38번국도를 따라 가니 영월의 들머리로 손색이 없는 소나기재다. 이 지역의 산세를 가늠하기 안성맞춤인 소나기재에서는 단양팔경에서나 볼 수 있음직한 거대한 수직절벽인 선돌과 첫 인사를 나눈다.
아스라한 절벽 아래 단양천으로 이어지는 강줄기 서강이 살얼음을 헤치고 흘러가니 여정이 한결 활기차다. 서강은 영월의 동편을 에돌아 내려오는 동강과 만나 단양으로 흘러가며 남한강을 이루는 지천이다. 영월은 목마름이 없는 곳이다.
동강과 서강 큰 물줄기가 영월을 두루 적셔주고 첩첩이 솟아오른 산들이 맑은 공기를 뿜어내기 때문이다. 그 좋은 천혜의 공간이 ‘단종의 유배지’이던 당시는 아직 북쪽을 에워싼 산줄기에 길이 없고, 남쪽을 에두른 강줄기에 다리가 없던 때라 세상과의 단절이 용이한 곳이기도 했다.
영월 별마로천문대로 가는 길은 사극 드라마에 흔히 나오던 단종의 유적지들을 지나쳐간다. 단종의 묘가 있는 장릉과 단종의 유배지였던 청령포 등이 모두 영월을 관통하는 38번국도변에 위치한 것이다. 12세의 어린 나이에 임금에 올랐으나 숙부(세조)에 의해 3년 만에 폐위되어 이곳으로 유배를 당했다.
▲ 선돌은 서강변에 우뚝 솟은 거대한 수직절벽이 다. 아래는 단종이 묻힌 장릉. 이곳의 단종역사 관에 가면 어린 임금의 한많은 삶을 이해할 수 있다. | ||
엄흥도라는 영월 호장이 야밤에 몰래 업어다 양지바른 자리에 묻어드렸으니 지금은 어엿이 왕릉으로 모셔지고 있는 장릉이 그곳이다. 영월 한복판, 장릉에 위치한 단종역사관을 미리 둘러보면 쉽게 단종의 삶을 이해할 수 있다.
청령포는 장릉에서 10분 거리도 채 되지 않는다. 선돌 아래로 흐르던 서강이 다시 청령포를 한바퀴 휘감고 지나가는 곳이다. 삼면이 강이고 뒤로는 깎아지른 절벽이 병풍을 쳐놓고 있어 그림 좋은 감옥이 따로 없다. 이곳에서 단종은 동서로 90m, 남북으로 1백17m로 거동이 제한된 채 지내야 했다.
울창한 솔숲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것은 6백 년 수령의 관음송이다. 기괴하게 가지를 뻗고는 한껏 뒤틀린 모양새가 꼭 어린 단종의 비통한 생애를 표현하는 퍼포먼스라도 벌인 듯하다. 절벽 뒤쪽으로는 어린 단종이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쌓았다는 망향탑과 한양을 바라보며 시름에 잠겼던 노산대가 남아있다.
청령포는 원래는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지만 겨우내 얼음이 녹기전까지는 물 위로 걸어들어갈 수 있어 봄, 가을에 보지 못하는 운치를 느낄 수 있다.
굽이굽이 별마로천문대 겨울이 도심 한가운데를 지나가고 있다. 유난히 맑은 하늘 혹은 대낮의 이글거리는 태양이나 무수히 자리를 바꿔 앉는 별자리를 들여다본 적이 있었던가. 있다면 언제쯤이었던가.
봉래산(799.8m) 산마루에 자리잡은 영월 별마로천문대는 크게 한번 쉼호흡을 하고 떠날 일이다. 일반인들을 위한 천문대로는 최고의 시설이라 그 규모에서도 놀라움이 크지만 이 겨울 굽이굽이 산허리를 돌아가는 길이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밤이 길고 별자리가 가장 잘 보인다(화려하다)는 겨울철이고 보니 찾아오는 사람은 많고 올라가는 일은 더디기만 하다. 중턱에서부터는 체인을 감지 않고는 오르지 못하는 날이 더 많다.
별마로는 별(star)과 마(정상을 뜻하는 마루)와 로(고요할 로)가 합쳐진 이름이다. 조용한 봉래산 정상에서 별을 보고자 하는 소망을 나타낸 것이라고. 눈이 쌓여 아슬아슬한 길인데도 아이들과 함께 오는 가족들이 대부분이다. 하늘 끝 모르고 치솟는 과외열기만큼이나 아이들의 정서교육에 열성인 부모도 많다는 뜻이리라.
▲ 별마로천문대 | ||
한쪽에는 태양의 내부구조 모형부터 태양계 행성 모형, 입체영상 코너까지 아이들이 줄을 지었다. 일반인들은 주로 전시실-천체투영실-관측실의 순서를 거치는 것이 좋다. 4층 보조관측실은 다양한 천체 망원경이 여러 대 설치돼 있어 많은 관람객을 한꺼번에 수용할 수 있다. 특성이 다른 여러 망원경을 비교해가며 관측해 볼 수도 있다.
겨울철 대표적 별자리는 오리온의 일등성(육각형모양)이며 많은 별이 좁은 범위에 모여 있는 성단(星團), 태양계의 행성 중 모습이 독특한 토성 등도 관측한다. 이에 비해 주관측실에서는 구경 800mm 국내 최대 직경을 가진 반사망원경이 있어서 성단, 성운, 은하의 화려한 모습을 관측하게 된다.
별 관측보다 관측장비에 더 놀라워하고 관심을 갖는 아이들도 많다. 갑자기 기상이 악화되어 하늘을 볼 수 없다면? 물론 천문대를 찾는 날이라면 미리 날씨를 알아보고 올 일이지만 도착후 갑자기 흐려지거나 눈비가 오는 날은 천체투영실에 설치된 8m 돔 스크린에 투영된 별빛 찬란한 천체영상을 대신 감상할 수 있다.
별이 아직 뜨지 않은 낮 시간에도 볼거리가 있다. 태양에서 타오르는 가스가 분출되면서 나타나는 홍염과 태양의 표면에서 주변보다 온도가 낮아 어둡게 보인다는 흑점 등의 모습이다. 밤이 길고 하늘이 맑은 겨울밤이야말로 별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계절이다.
불빛이 없는 시골 어느 곳에서 밤하늘을 봐도 좋고, 보다 가까이서 별을 보고 싶다면 영월 여행을 한번 서둘러보기를 권한다.
▲가는 길: 중앙고속도로-제천IC-38번국도-소나기재-영월. 38번국도 따라 계속 직진하면 장릉-청령포 입구를 지나게 된다. 영월역을 지난 사거리에서 삼옥(혹은 동강어라연)방면으로 좌회전하면 별마로천문대 표지를 만나게 된다.
▲대중교통: 동서울터미널에서 영월행 직행버스(2시간30분)-영월읍에서 청령포 방면 시내버스 수시 운행. 글•사진=박수운 프리랜서 tou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