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정치에너지> | ||
최근 자전적 정치에세이집 <정치에너지>(후마니타스)를 펴낸 그는 민주당 대표로서 바쁜 나날을 보내면서도 “민주주의에서 정치인은 말을 함으로써 자신을 뽑아준 시민과 소통한다”는 생각에 책을 쓰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
정 대표는 이 책에서 “이명박 정부에서 민주주의에 빨간불이 켜졌다”며 뒷걸음치고 있는 남북 화해협력기조와 친부자 정책 등에 대해 비판하는 한편 가까이에서 지켜본 이명박 대통령 및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소회도 털어놓았다. 책의 주요 내용을 간추려봤다.
정세균 대표는 기업의 CEO 출신인 이명박 대통령이 ‘여의도 정치’와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평했다. ‘정권을 잡았는데 내가 아쉬울 게 뭐 있느냐’는 식이라는 것. 집권당이 과반 의석까지 차지했기 때문에 정부안을 한 치 물러섬 없이 관철하려고 하며 비타협적이라고 평했다. 이 대통령은 성과를 내면 그만이지 절차를 밟아 토론하는 것을 낭비라 여긴다는 것.
정 대표는 “(이명박 대통령은) 회사처럼 일사불란하게 결정하고 실행하는 조직을 선호하는 것 같다”며 “CEO 출신이라서 문제가 아니라, 정치를 모르는 게 문제”라고 비판했다.
그는 2008년 9월 영수회담 당시의 일화를 소개했다. 당시 이 대통령은 야당이 무슨 이유로 방송법, 집시법 등에 대해 반대하는지 잘 모르고 있었다는 것. 국회에서 그렇게 격렬한 갈등이 빚어지고 있었지만 자신이 보기에 이 대통령은 너무도 사정에 어두웠다고 한다. 정 대표는 “라디오로 세상사를 접하는 택시 기사도 훤하게 아는데 가장 중요하고 많은 정보를 접하는 대통령이 모른다는 건 놀라운 일이었다. 청와대를 나오며 야당이 무슨 주장을 하는지도 보고를 받으라고 권고했다. 고개를 끄덕였지만 정말 그랬는지는 모르겠다”고 밝혔다.
정세균 대표는 이 대통령에 대해 ‘인간적으로 교활한 사람은 못되는 것 같다’고 평하기도 했다. ‘수도 서울을 하나님께 봉헌한다’는 발언이나 대선 경선 과정에서 있었던 ‘마사지 걸’ 농담, ‘애를 낳아봐야 보육을 이야기할 자격이 있다’는 발언 등 이 대통령이 간혹 안쓰러울 정도로 말에 품위가 없고 꼬투리 잡힐 말을 생각 없이 내뱉지만, 자기에게 손해가 되는지도 모르고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사심이 없다고 볼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정 대표는 “내가 만나본 대통령은 지나치게 솔직했고 주도면밀함과는 거리가 멀었다”며 “여야로 갈라서 만나지 않았다면 괜찮은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6월 광우병 쇠고기 사태 당시 ‘촛불 정국’을 겪으며 느꼈던 바도 털어놓았다. 정 대표의 생각은 이 대통령과 참모들이 촛불을 보며 시민 여론에 대해 강한 경계 의식을 갖게 된 것으로 보인다는 것. 그는 “(대통령은) 거리에서 표출된 주장보다 거리에 운집하고 목소리를 내고 있는 현실 자체를 문제로 삼았다. 시민들이 가리키는 달은 보지 않고 손가락만 보았던 것”이라며 “이후 정부와 여당의 대응을 보면 광장에 모인 힘이 일상으로 돌아간 뒤 하나하나 응징하겠다고 다짐한 듯하다. 인터넷상의 의사 표현에 제한을 가하고 시위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며 방송의 자율성을 옥죄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고 말했다.
▲ 이명박 대통령 | ||
1997년 김대중 대통령이 김종필 자민련 총재와의 DJP연합을 통해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당시 김종필 총재 측에서 연합 조건으로 내건 것 중 한 가지가 박정희 기념관이었다고 한다.
정 대표는 “김대중 대통령 본인이 박정희의 최대 정적으로 큰 희생을 치렀으므로 (박정희 기념관 건립은) 아주 고약한 요구였지만,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였고 대선공약이 되었다”고 밝혔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박정희 기념사업회’ 명예회장까지 맡았고 대구를 방문해 지원의사를 공식화했다. 이 사업은 관련 예산이 200억 원에 달하는 큰 사업이었는데, 당시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여당 간사였던 정세균 대표 역시 이 예산안이 통과되도록 힘써야 했다고 한다. 정 대표는 “민주당만이 아니라 한나라당에서도 반대 의견이 분출했다. …박정희 기념관이 시기상조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우리가 짓게 되면 오히려 공과를 균형 있게 다룰 수 있을 성싶었다”고 당시 상황을 밝혔다.
어렵게 예산이 통과되고 서울시가 부지 제공을 약속했지만 박정희 기념관 건립은 결국 무산되었다. 반대여론 때문이 아니라 기념사업회에서 약속한 모금액을 채우지 못했기 때문이었다고. 정 대표는 “관련 예산은 도로 국고로 환수되었고 얼마 전 기념사업회가 국고 환수처분에 대한 소송을 내 승소했지만 건립이 어떻게 될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라고 밝혔다.
정세균 대표는 근래 정치권에서 활발히 논의 중인 개헌론에 대한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가 민주적 기본권과 언론 자유를 제약하려는 온갖 노력을 기울여도 호응은 없고 반대만 빗발치는 것은 1987년에 이룬 민주주의에 대해 국민들의 공감대가 그만큼 넓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정 대표는 “나 또한 우리 헌법이 완벽하다고는 생각지 않지만 1987년 민주 헌법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그것을 이룩한 국민들과 운동가들에게 감사한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이 헌법을 처음부터 끝까지 뜯어고치자고 한다. …우리 정치와 사회가 완전한 헌법을 찾아 나서기보다 지금 우리의 현실에서 가능한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제아무리 좋은 헌법도 완전한 자유와 질서를 제공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자신이 개헌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개헌이란 짧은 시간 안에 일사천리로 진행할 사안이 아니라 충분한 토의와 공론화가 필요하다는 것. 정 대표는 지난 정부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소위 ‘원포인트 개헌’을 제의했을 때도 그 시점이나 동기에 있어서 동의하기 어려웠다고 밝혔다. 그는 “개헌안은 수긍이 가는 내용이었지만 의제 추동력이 떨어진 집권 말에 개헌을 추진하는 게 가망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 고 노무현 전 대통령 | ||
정 대표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서도 회고했다.
처음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함께 일하게 된 사연, 대통령 시절과 퇴임 이후 그를 보며 느꼈던 바 등에 대
해 서술한 것.
그가 처음 노 전 대통령과 일하게 된 것은 2002년 민주당 경선 직후였다고 한다. 당시 어느 캠프에도 속해있지 않았던 그는 지방선거에서 전북지사로 출마하려고 준비 중이었다고 한다. 그 즈음에 대통령 후보가 된 노무현에게서 직접 전화가 왔다고. 정 대표는 “단순한 인사치레일 줄 알고 덕담을 했는데 그는 후보 캠프에 들어와 정책팀을 맡아 달라고 요청했다. 나는 도지사 경선 때문에 어렵겠다고 말했는데 그는 ‘뭐 그런 자리를 위해서 뛰느냐?’고 핀잔하듯이 되물었다”고 밝혔다.
또 그는 “딴은 열심히 준비 중인데 깎아내리는 말투에 기분이 상했다. 그래도 당의 대선 후보에게 기분 나쁜 기색을 보일 수는 없어 정중히 사양하고 말았다”고 덧붙였다.
결국 정 대표는 도지사 선거에서 패배한 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제안으로 캠프에 들어가 일하게 된다.
노 전 대통령은 후보 시절에도 열띤 토론을 즐겼는데 한번은 토론이 너무 길어졌다. 결론을 내리는 쪽이 아니라 자꾸 새로운 발상들이 제시되기에 정 대표는 정색을 하고 “이제는 자꾸 새로운 걸 만들 게 아니라 만든 정책을 홍보하고 다닐 시점입니다. 아니 세일즈(판매)를 한창 할 때에 알앤디(R&D·연구개발) 하면 어쩌자는 겁니까”라고 말했다고. 노 후보는 머쓱해 하며 “이제 잔말 말고 그냥 가자는 거지요?”라고 응수했는데 속으로 썩 내키지 않는 표정이었지만 책임자인 정 대표의 뜻을 존중해 주었다고 한다.
정 대표는 “나중에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된 ‘검사와의 대화’를 보며 ‘이제 막가자는 거지요?”라는 그의 격앙된 어조에서 (당시 일이 생각나) 설핏 웃음이 났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또 그는 “대통령이 된 뒤로 노무현은 나를 볼 때마다 ‘(어떤 정책에 대해) 어떻게 세일즈하면 될는지 방안을 내보쇼!’라고 농반 진반으로 말을 걸곤 했다”고 밝혔다.
퇴임 후 봉하마을로 내려간 노무현 전 대통령은 언제나 싱글벙글이었다고 한다. 대통령 임기 말 사석에서 직무를 수행하기 힘들다고 토로하곤 했던 그를 보며 정 대표는 “역사적·정치적 공과를 떠나 인간적으로 지친 모습이 역력했다. 그를 보며 현행 대통령제에 대해 일정한 회의를 품게 되었다. 대통령제를 둘러싼 학문적 논의를 떠나 대통령직을 담당하는 사람에게 가혹하다고 생각되었다”고 밝혔다.
정 대표는 처음 지도부와 함께 노무현 전 대통령을 방문했을 때 그는 정치적으로 자신과 거리를 둔 데 대해 서운함을 표현했다고 한다. 오는 길에 지도부 몇 사람과 시간이 좀 지나면 복당 요청을 하자고 입을 모았고, 노 전 대통령만이 아니라 당 밖의 많은 인사들을 다시 통합하는 작업을 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대통령을 마지막으로 본 것은 2009년 2월 봉하마을에서였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무척 반가워했지만 검찰 수사와 언론보도에 시달리던 터라 얼굴에 그늘이 져 있었다고 한다.
정 대표는 “복당해 달라고 미처 말을 건네지 못한 게 못내 아쉽다. 그를 생각할 때마다 미안한 마음에 가슴이 저민다. 우리가 좀 더 고민하고 좀 더 열심히 일했더라면 그렇게 무너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저들이 이렇게 업수이 보지는 못했을 것이다. 민주당이 더 많은 국민들의 지지를 받고 더 강했더라면, 그래서 노무현도 민주당의 일원이 되어 말하고 행동했더라면 이런 취급을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